는 진주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을 소개하는 기획을 하고 있다. 큰 유명세를 떨치고 있지는 않아도 지역에서 묵묵히 문화예술활동을 하는 사람을 찾아 작품 세계와 생각을 듣는 것이 기획의도이다. 이번에는 공예 분야이다. 목공예 기법은 '짜임'이 전부라며, 우리 인생도 짜맞춤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젊은 목공예가 박민철 씨를 만났다. ▲젊은 목공예가로 소개받았다. 시작이 궁금하다.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어릴 때부터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아버지께서 조경 일을 하셔서 나무 작업 하시는 걸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프다. 퇴행성관절염이라고 한다. 지난 해 너무 많은 노동을 한 결과인 듯하다. 지난 해에는 밭이랑을 온통 괭이질로 만들었었다. 전에는 관리기 빌어 이랑도 내고, 비닐멀칭도 자동으로 씌웠는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고 시간도 많이 남아돌아 농사일을 혼자서 괭이질로 했었다. 밭 천 평이었으니 결코 적은 면적도 아니었다. 괭이자루를 손으로 단단히 부여잡고 힘을 쓰는 일이니 당연히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거기에다 가까운 숲에 간벌작업을 해서 화목 해 나르느라 몸을 많이도 썼다. 화목작업은 괭이질 못지 않게
그새 봄방학이다. 반가웠다. 꽃샘추위라고 하기엔 너무도 기세등등한 한파 속에 아침마다 등짐 같은 가방을 메고 학교 가는 아이들을 보면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방학동안 그래도 따뜻한 방안에서 뒹굴뒹굴 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다만 뒹굴거리는 두 손에 스마트폰이 없다면 더욱 다행일 텐데. 지난 겨울방학은 하루에 스마트폰을 5분이라도 더 보려는 자와 그것을 막으려는 자의 쫓고 쫓기는 싸움이었다.방학을 맞은 아들의 하루일과는 대강 이렇다. 오전 10시쯤 느지막이 눈을 뜬다. 이때는 알람시계도 소용없다. 육성으로 감정을 실어서 깨워야
1985년(?) 겨울, 청송교도소 강당에선 종무식을 앞두고 있었다. 교도소장 표창을 받는 직원들의 수상예행연습이 진행되고 있었다. “작업! 긴급작업에 자원할 직원 없나.” 뒤쪽 출입구에서 배치부장①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이런 형식의 행사에 참석해서 줄 서고 박수치는 일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기회다 싶어 얼른 뒷문으로 뛰쳐나갔다.“니가 나올 줄 알았다.” 배치부장은 한마디 툭 던지더니 앞장 서 보안과로 향했다. 보안과 앞 현관에 평소 농장일을 나가는 다섯 명의 재소자가 모여 있었고 세 명의 경비교도대원②이 총을 메고 그들을 둘러싸고
1. 소년이 네 살로 접어들던 1960년, 정초에 소년의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죽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본처와, 두 아이와 함께 들어온 후처와, 후처와의 사이에 태어난 3남매와 아직 뱃속에 유복자를 남겨둔 채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하동군 옥종면 정수리, 논 열댓 마지기와 밭 두어 뙈기를 남겼다. 본처와 후처는 여섯 아이들과 함께 한 집에 모여서 억척스럽게 살았다.2. 대대로 자식이 귀한 집안이었다. 소년의 어머니는 자식을 도시로 보내는 것이 두려웠다. 외삼촌이 살고 있는 전남 순천으로 큰아들을 유학 보냈다. 진주가 가까웠지만
“올해는 면허증이라도 좀 따소.”해가 바뀔 때마다 아내가 하는 소리다. 나는 아직 면허증을 가지지 못했다. 군대 수송부 복무할 때 운전면허증을 땄었고, 제대해서 일반면허증으로 바꾸지 못했다. 마흔 즈음에 자동차운전학원에 등록하고 필기시험에 합격한 적이 있었는데 일이 바빠 포기해 버렸었다. 그 뒤로 지금껏 운전면허증 딸 생각은 없이 살았다. 어딜 가나 버스를 탔고, 간혹은 기차가 나의 자가용이었다. 그것도 어느새 습관으로 굳어 이제는 승용차 앞좌석에 앉아 가면 그 속도감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아들놈 차를 얻어 타고 읍내로 나갈라
TV 화면 속에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5, 4, 3, 2, 1, 0! 순간 굉음을 울리며 로켓이 하늘로 비스듬히 솟구쳐 올랐다. 소리보다 빠르게 날아가는 본체가 화면에 잡힌다. 잠시 후 보조장치가 떨어져 나간다. “성공적으로 분리되었습니다!” 환호하는 사람들. 화면 밖에서 어린 나는 궁금했다. 로켓이 우주를 향해 날아오를 때, 대기권을 벗어나기 직전 분리되어 떨어져나간 장치는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그 장치는 애초부터 분리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가. 장렬히 산화하기 위해 고안된 수천, 수만의 부품들. 그들의 역할은 다만 거기까
아내와 며느리는 ‘슬기로운 감빵생활’이라는 드라마를 놓치지 않고 본다. 나는 곁눈질로 그 드라마를 보다가 슬그머니 자리를 뜨곤 한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제는 잘 기억나지도 않는 과거가 슬퍼서였다.나는 1983년 7월1일부터 1988년 11월 중순경까지 교도관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었다. 청송교도소 교도관으로 첫 발령이 났을 때 차라리 그만둘까 하고 망설이기도 했다. ‘교정보도직’ 공무원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면접시험 직전까지 나는 ‘교정보도직’이 '교도관'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었다. ‘교정보도직’은 국가공무원이었
며칠째 화목보일러가 고장이다. 불을 넣는 화실 천정에서 물이 줄줄 샌다. 이 화목보일러는 들여오고 3년이 지나면서부터 나를 괴롭혔었다. 상판이 부식되어 한 방울씩 샌 물이 화실 안쪽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대리점의 안내에 따라 겉 철판을 뜯어내고 상판에서 겨우겨우 그 조그만 구멍을 찾아내 용접을 했다. 다행히 새는 물을 잡았고, 보일러는 정상적으로 돌아갔다.다시 2년이 지나자 이번에는 아예 물이 줄줄 샜다. 다시 상판을 뜯고 보니 바늘구멍만한 구멍이 대여섯 개나 나 있었다. 용접으로도 될 일이 아니었다. 다시 대리점에 전화를 했고,
지난 해 중딩 1학년 아들의 용돈은 일주일에 5천 원이었다. 주 5일 수업제에 기반을 두고 하루 천 원씩의 소비를 권장하는, 나름으로 합리적인 용돈 수준이라고 자부한다. 점심은 급식으로 해결하고 책값은 별도로 지급하며 차비는 교통카드를 따로 충전해 주었기에 용돈의 지출항목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오직 간식비용. 그렇다면 매주 5천 원도 충분하다는 것이 나의 계획이고 심산이었다.그러나 인생이 어디 계획대로 되던가. 월요일마다 5천 원을 받아간 아들은 수요일이나 목요일쯤 되면 가엾은 눈빛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너 용돈 벌써 다 썼
술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오랜 시간 함께 하며 발전, 변형되어 왔다.술은 언제나 인간의 곁에 있었고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도 있었으며 세상의 모든 종교, 역사서에도 빠짐없이 등장한다.밥을 먹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게 마셔온 음식이기에 그 존재의 시작을 궁금해하거나 알아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었다.발명은 인간의 삶을 발전시키고 삶의 질이나 방향을 광범위하게 바꾸어 놓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한편 발견은 일상에서 소소하게 깨우치며 알아 가는 것으로 삶을 기쁘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지구상에 존재하는
10일 진주에 첫눈이 내렸다. 이날 아침 진주성 풍경
처가집이 산청 덕산이다. 그쪽 동네와 관련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곶감에 대한 아주 특별한 감정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가을 단풍놀이는 언감생심일 것이고 11월부터는 겨우내 온 집안이 비상사태 수준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결혼 전 연애시절부터 십수년 동안 같은 마음으로 보낸 시간 탓일까? 나는 "곶감에 관한 그 처음과 끝을 다 안다" 자부할 수준에 이르렀다. 감을 깎는 시간을 왜 딱 한 달 내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는지? 곶감으로 만들 수 있는 감의 종류와 맛의 차이? 곶감의 생산원가와 유통과정의 후진성? 건
아내는 또 찹쌀을 담갔다. 해마다 설날을 앞둔 이맘 때면 찹쌀유과를 만들었다. 이런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내의 취미로 시작했으나 이 또한 궁핍한 살림살이가 추궁하는 일로 변해버렸다. 찹쌀유과를 만들어 몇 상자 팔면 설 쇨 돈은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올해는 몸도 안 좋으면서..." 찹쌀을 챙기는 모습이 못 마땅해 퉁명스런 목소리를 던졌으나 아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찹쌀을 불려 녹말을 빼고, 빻고, 찌고, 절구질로 풀떡을 만들고, 뜨거운 방바닥에 말리고, 튀기고, 쌀조청을 준비해서 눈부시게 하얀 튀밥가루를 입혀야 비로
광활한 우주공간에서 지구라는 푸른 티끌 위에 살아가는 인간은 극히 미미하고 미세한 존재일 것이다. 어딘가에 인간을 능가하는 또 다른 생명체가 살고 있을 거라 여기며 바라본 하늘엔 흔적을 남기지 않는 바람만이 지나다닐 뿐. 대기권 밖에서 우월한 어떤 존재가 우리를 지켜보았다면 분명 잔소리를 참기 어려웠을텐데. 혹시 미개하고 아둔한 인간들이 복잡한 외계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존재에 대한 의구심과 성찰로 뒤엉킨 머릿속을 말끔히 풀어준 것은 당장 오늘 저녁엔 뭘 해먹지? 라는 본질적인 질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현실세계로 소환
그 아지매는 많이 외로워보였다. 마을에서 가장 부자로 살고 있는 그 아지매는 또 따돌림을 받은 듯했다. 겨울이면 가끔 저런 모습을 보였는데 올해도 마찬가지다. 겨울이면 홀로 된 아지매들이 모이는 사랑방이 있는데 그 사랑방에서 또 무슨 사단이 일어난 게 분명하다. 필경 재물자랑을 하였거나 남의 험담을 늘어놓다 사이가 틀어졌을 것이다.며칠 전부터 앞집 유씨는 경로당에 가지 않는다. 골목에 눈이 쌓여 미끄럽지만 지팡이에 의지해서라도 기를 쓰고 경로당을 다녔었다. 경로당에 가면 점심 한 끼를 때울 수 있고, 민화투판을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
며칠 전 눈폭풍이 몰아치는 날이었다. ‘저 눈보라 속을 걸어 금계마을 식육식당에 가서 한잔 하고 오면 좋겠다.’ 커피를 앞에 놓고 아내와 나란히 앉아 창밖 눈 내리는 풍경을 보며 말을 건넸다. 금계마을까지는 오릿길이 더되는 제법 먼 거리다. ‘아이구야... 무슨 낭만으로...’ 아내가 생뚱맞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래... 춥겠다... 좀 청승스럽겠고...’ 생각을 접으면서도 꼭 한번 가고 싶다는 마음은 하루 종일 떠나지 않았었다.산골살이 10년이 지나자 주변이 많이 정리되는 듯하다. 지난 해까지는 그래도 다사다난한 삶이어서 우리가
요즘 들어 부쩍 돈을 생각한다. 지금껏 적게 벌어 적게 쓰는 것이 가장 편안하게 사는 것이라고 여겨왔으면서도 겨울 문턱에 들어서면 괜한 걱정들이 생긴다. 돈 때문이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그런 대로 민박손님도 들고, 계절별로 적게나마 농사지은 것도 팔아 장날이면 어렵잖게 장바구니를 채웠었다.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 쓰면 되지만 겨울엔 써야할 곳이 더 많이 생긴다. 지난 달에도 조문 두 곳에 결혼축의금을 네 곳에 내었다. 날씨가 들쭉날쭉해 화목보일러를 늦게까지 켜는 통에 난방기름도 제법 들었다. 시제음식도 우리 집에서 만들어 적자폭이 더
'죽향차 문화 갤러리'에서 현재 정진혜 서양화가 작품전이 열리고 있다. 작품전은 이달 30일 오후 6시까지 열린다. 정 화가는 지금까지 18번의 개인전을 가졌고, 국내외 여러 아트페어에 참여하였다. 지역 화가로는 드물게 외연을 확장해 대내외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정 화가는 현재 이반성면 정수예술촌에서 꾸준히 창작활동에 전념하고 있다.정 화가는 이번 전시회의 주제를 ‘상처와 욕망’으로 정하고 14점의 작품을 전시했다. 정 화가를 직접 만나 작품세계, 예술, 그리고 그녀의 인생에 대해 들어봤다.
이웃 할머니 김장김치는 정말 맛이 없었다. 김장을 할 때마다 도와준답시고 가서 거들면 맛보라고 김치를 싸 주는데 가져오긴 하지만 우리 밥상 위에서는 천덕꾸러기로 떠돌다 영락없이 버려진다. 그 맛없는 김장을 할 때면 도시에 사는 늙수구레한 아들과 딸들이 다 모여든다.아들과 딸들은 문간에 차를 세워놓고 김치통을 내린다. 김장을 하는 마당가에 김치통이 산처럼 쌓인다. 할머니가 품앗이로 벌어놓은 이웃 할머니들이 김치 속을 넣는 사이 할머니의 아들과 딸들은 마당가에 걸린 가마솥에서 삶은 돼지고기를 꺼내와 저들끼리 왁자하게 판을 벌인다.‘배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