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감빵생활3] 어느 겨울날의 일기

그런 일쯤으로 좋아질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나 알게 됐다. 김석봉 전 녹색당 운영위원장l승인2018.02.12l수정2018.02.1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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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겨울, 청송교도소 강당에선 종무식을 앞두고 있었다. 교도소장 표창을 받는 직원들의 수상예행연습이 진행되고 있었다. “작업! 긴급작업에 자원할 직원 없나.” 뒤쪽 출입구에서 배치부장①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이런 형식의 행사에 참석해서 줄 서고 박수치는 일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기회다 싶어 얼른 뒷문으로 뛰쳐나갔다.

“니가 나올 줄 알았다.” 배치부장은 한마디 툭 던지더니 앞장 서 보안과로 향했다. 보안과 앞 현관에 평소 농장일을 나가는 다섯 명의 재소자가 모여 있었고 세 명의 경비교도대원②이 총을 메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뭔 일인데요.” 보안과로 뒤따라 들어가며 물었지만 배치부장은 아무 말 없이 무기고로 향했다. 권총을 받았다.

▲ 김석봉 전 녹색당 운영위원장

“어제 안동 병원에 나간 도둑놈③이 죽었다. 무연고자다. 초소에 나가 대기하고 있으면 의무과 구급차가 싣고 올 거다. 무연고자 묘역에 묻으면 된다.”는 보안계장의 작업지시였다. 이런 일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한 터였다. 그러나 이내 ‘재수 없다’는 생각은 ‘한 해 마지막 날 이런 일은 좋은 일’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아침 직원휴게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었다. 이틀 전에 한 재소자가 의무과에 나왔는데 병사④에서 하룻밤을 자고 상태가 좋지 않아 곧바로 안동병원으로 실려 갔고, 그날 밤 죽었다고 했다. 그가 며칠 전부터 많이 아파 외진을 요청했는데 의무과와 보안과에서 들어주지 않았다는 거였다. 그러나 외진은 아무에게나 허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병명보다는 배경이 결정하는 권리였다.

외정문⑤을 벗어나자 황량한 들판 위로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멀리 철조망 너머 반변천은 허옇게 얼어붙어있었다. 농장작업 재소자 수송용 버스를 타고 교도소 초입 초소에 내렸다. 다리 건너 진보면 소재지 교회당 종탑이 눈보라 속에 어렴풋이 보였다. 추웠다. 초소근무 직원과 경비교도대원은 아예 초소 안에서 근무를 서고 있었다. 우리는 곡괭이와 삽을 손수레에 싣고 농장창고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청송보호감호소는 어마어마한 면적을 가지고 있었다. 서쪽과 북쪽은 반변천이 휘돌아 흐르고, 남쪽 경계는 제법 널따란 개천이 일직선으로 쭉 뻗어 흘러 물길이 ‘ㄷ’자를 이루었다. 동쪽방향에서 이어져 온 얕은 구릉이 전체 면적의 한복판으로 흘러든 지형이었다. 그 얕은 구릉의 정상에 커다란 감시초소가 위압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서 있고, 구릉이 끝나는 지점에서 반변천 경계점까지 비옥한 농토가 펼쳐져 농장을 형성하고 있었다.

초입 초소에서 북쪽으로 구릉과 농장의 경계선을 따라 2km 직선도로를 달리면 직원아파트가 있고, 아파트 지나자마자 외정문이 있고, 외정문을 지나면 청송제2보호감호소, 제1보호감호소, 청송교도소, 경비교도대 건물이 즐비하게 웅장한 모습으로 건설되어 있었다. 세계에서도 역대급 구금시설일 거였다.

화덕용 토막드럼통에 놓은 화톳불이 거의 다 타들어갈 무렵에야 의무과 구급차가 초소에 도착하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연장 실은 손수레를 끌고 서둘러 초소를 향했다. 평소 가끔 보던 용도과⑥ 부장은 먼저 내려 구급차 뒷문 앞에 웅크리고 서있었다. 눈보라와 추위에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야, 들어내!” 용도과 부장이 엉거주춤 서있는 재소자들을 향해 짜증 섞인 말투로 외쳤다. 뒷문을 열자 들것 위에 담요로 둘둘 말은 시신이 보였다. 재소자들이 들것을 들어내 땅바닥에 놓았다. 말은 담요가 세찬 눈보라에 한 꺼풀 벗겨져 날렸다. 그 사이 일요일이면 강당에서 예배를 주관하는 담당목사가 도착하였다.

“사람을 이렇게 묻으라고?” 나는 구급차 쪽으로 몸을 돌리는 부장의 등에 대고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럼 어째.” 부장이 몸을 돌리며 시큰둥하게 답했다. 그도 내가 누구란 것은 조금은 알고 있을 터였다. 웬만한 일에는 눈감고 넘어가 줄 수도 있으련만 사사건건 따지고 대드는 버르장머리 없는 교도관을 모르는 직원은 별로 없었고, 그래서 뭔가 켕기기도 했을 거였다.

“보소. 사람이 죽으면 처리하는데 비용이 책정되어 있을 거 아니요.” 내가 따졌다. “무슨 비용.” 부장은 딴청을 부렸다. “잔말 말고 관과 광목과 광목노끈, 삼베 한 조각, 막걸리 한 말, 사과, 배, 명태포, 떡과 향은 구해 오소.” 나는 구급차에 기댄 채 다리를 꼬고 팔짱을 꼈다. 부장은 급히 초소로 들어갔다.

경운⑦부장과 담판을 지으려는 거였다. 경운부장은 나와 함께 농장작업을 나오는 터여서 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마음먹으면 보안계장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경운부장은 알고 있었다. 부장이 다시 나왔다. 돌 씹은 표정이 역력했다. “조금 기다려 봐.” 그는 구급차를 타고 진보면소재지를 향해 밖으로 나갔다.

무연고자가 죽으면 곧바로 매장을 하고, 연고자가 있는 재소자가 죽으면 연고자에게 연락해서 하루가 지나도 오지 않으면 가매장을 하는 것이 규정이었다. 당연히 매장에 드는 기본 경비가 책정되어 있을 거였다. 이렇게 대충 묻으면 그 비용을 누군가 가져갈 것은 뻔할 뻔자 였다.

시신을 말은 담요에 눈이 얇게 쌓여갈 무렵 용도과 부장이 돌아왔다. 내가 요구했던 모든 것을 구급차에서 내렸다. 추위에 떨고 있던 재소자들 표정이 확 달라졌다. 재소자들의 시선은 막걸리 통에 고정되어 있었다.

담요를 걷어내자 푸른 수의를 입은 시신이 나왔다. 죽어서도 수의를 입고 있었다. 수의를 벗기고 새하얀 광목으로 몸을 말았다. 관은 얇고 조악했다. 값싼 송판관일 거였다. 입관을 하고 광목 끈으로 관을 묶어 들었다. 나는 앞쪽 왼편을 들었고 재소자 다섯이 각자 자리를 차지하고 관을 들었다. 조그만 꼬챙이에 삼베조각을 매단 경비교도대원을 앞세웠다. 조촐한 만장이었다. 무거웠다. 다 내려놓지 못한 억울한 인생이 겹을 이루었을 거였다.

언 땅을 팠다. 화덕에 불꽃이 숨가쁘게 피어올랐다. 이제 겨우 삽날이 묻힐 만큼 팠는데 경운부장은 대충 묻고 가자며 얼굴을 찌푸렸다. 빙 둘러 철조망이 조밀하게 쳐졌으니 짐승이 파내지는 않을 거라고도 했다. 눈보라는 더 거세졌다. 삽 한 자루 깊이는 파야 한다며 재소자를 다그쳤다. 괭이질을 하는 재소자들 목덜미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발끝이 얼어오는 듯 아렸다.

하관을 하고 나지막한 봉분을 만들었다. 푸석푸석한 흙 위에 제물을 차렸다. 경비교도대원을 시켜 멀리 초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목사를 불렀다. 목사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언덕을 올라와 볼품없는 봉분 앞에서 혼잣소리로 기도문을 읊조렸다.

“저어, 목사님. 그 성경책을 좀 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서둘려 내려가는 목사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목사는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이었다. “아, 저... 저 봉분 앞에 성경책을 놓아주고 싶어서...” 나도 말을 더듬고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목사는 성경책을 흔쾌히 건네주고 자리를 떴다. 아주 잠시 ‘나도 교회에나 다녀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책을 봉분 앞에 놓았다. 재소자를 시켜 막걸리를 따르게 하고 절을 시켰다. 재소자들은 자신의 집안 제사를 지내는 모습으로 절을 하고 있었다. “한 잔씩만 마셔라.” 나는 많이 머뭇거리다 결단을 내려 재소자들에게 막걸리 잔을 건네주었다. 경비교도대원들과 재소자들이 어울려 막걸리 잔을 나누었다. 잘 가라, 잘 가라고 나머지 막걸리는 봉분 주위에 흠뻑 부어주었다.

화톳불이 까무룩해지고 있었다. 못 본 체 돌아앉아 있던 경운부장이 저만치 먼저 비탈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이 먼 곳으로 와 주인 없이 묻힌 이들의 봉분이 차가운 눈보라 속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몇이 어떻게 죽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모두들 수의를 입고, 수번을 달고, 버려지듯 묻혔을 거였다. 연장을 챙기는 재소자들의 시선이 그들 봉분에 머물고 있었다.

이 억울한 죽음 앞에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이곳에서 ‘책임’ 따위는 아예 존재하는 가치가 아니었다. ‘책임’이라는 용어가 허용되지 않는 시대였다. 불량한 목적으로 탄생한 교도소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겐 더욱 먹물 같은 시대였다.

그의 죽음과 책임을 밝혀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에는 나의 인권에 대한 수준이 전무한 상태였다. 그 죽음을 정성껏 장사지내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했을 거였다. 그의 영혼을 위해 잠시나마 기도한 것으로 사람의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했을 거였다.

나는 그렇게 세상과 만나고 있었다. 부장에게 화풀이라도 하듯 투정을 부리고, 그럴 듯하게 장사를 지낸 것으로 정의감을 확인했던 나는 아직은 미숙한 사회초년생일 뿐이었다. 그런 일쯤으로 좋아질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세월이 한참이나 흐른 뒤였다.

 

주:

① 배치부장 : 보안과 평직원을 대표하는 직책, 평직원들의 근무지 배치를 관장하여 붙여진 명칭. 간수부장으로 불리기도 함.

② 경비교도대 : 경찰의 전투경찰과 같은 기능을 하는 부대.

③ 도둑놈 : 모든 재소자를 통칭해서 부르는 직원들 사이의 은어.

④ 병사 : 환자들을 수용하는 사동.

⑤ 외정문 : 교도소 외벽을 경계로 설치되어 있는 주 출입문.

⑥ 용도과 : 교도소 내 모든 물품의 출납을 관장하는 부서.

⑦ 경운 : 농장작업.

 


김석봉 전 녹색당 운영위원장  ksb@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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