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세계도 정치요, 권력이라는 사실을..

아내는 또 찹쌀을 담갔다. 해마다 설날을 앞둔 이맘 때면 찹쌀유과를 만들었다. 이런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내의 취미로 시작했으나 이 또한 궁핍한 살림살이가 추궁하는 일로 변해버렸다. 찹쌀유과를 만들어 몇 상자 팔면 설 쇨 돈은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올해는 몸도 안 좋으면서..." 찹쌀을 챙기는 모습이 못 마땅해 퉁명스런 목소리를 던졌으나 아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찹쌀을 불려 녹말을 빼고, 빻고, 찌고, 절구질로 풀떡을 만들고, 뜨거운 방바닥에 말리고, 튀기고, 쌀조청을 준비해서 눈부시게 하얀 튀밥가루를 입혀야 비로소 찹쌀유과가 탄생한다. 그 과정이 너무 힘들고 어려운지라 올해는 만들지 않기를 바랐다. 하는 일과 드는 재료비를 따지면 결코 남는 장사도 아니었다. "안 만들기 시작하면 만드는 방법도 잊어버린다."면서 아내는 해마다 찹쌀유과 만들기를 고집해왔다.

아내의 찹쌀유과는 정말 맛있었다. 입에 넣으면 스르르 녹아버리는 부드러움은 장독에 쌓인 첫눈 한 움큼을 입속에 넣는 느낌이었다. 설날 이 찹쌀유과 한 상자를 들고 부산 큰집에 갈 때는 어깨가 절로 으쓱거렸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불잉걸에 구워 만들던 그 유과맛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뭐라도 해야 하는데 몸은 말을 안 듣고.." 밥상머리에서 아내가 포옥 한숨을 쉬었다. "뭘 한다고. 그냥 이리 살면 되지..." "그래도 뭐라도 해야 살지..."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시락국이 식고 있었다. ‘"어찌 되겠지... 몸이나 잘 간수하소." 이쯤에서 말머리를 틀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시락국을 후루룩 소리 내어 마셨다.

▲ 김석봉 농부(전 녹색당 대표)

겨울에 접어들면서 걱정이 하나 더 늘었다. 아들놈도 일을 그만둘 것 같아서였다. 아내와 며느리의 걱정만큼이나 나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늘었다. 말은 항상 그렇게 잘 되겠거니 하지만 돈을 써야할 일은 내게 더 많이 생기고, 씀씀이도 내가 더 커서 면목 없는 처지인 것만은 확실했다. 그래서 작심한 일이 전복양식장 일이었는데 그나마도 일이 틀어져버렸다.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는 아내였다. 며느리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 우리 도라지정과 만들어 팔아요." 하루는 밥상머리에서 며느리가 뜬금없이 이런 제안을 해왔다. "도라지정과? 어찌 팔게?" 아내가 물끄러미 며느리를 쳐다보았고 "우리 카페에서 팔면 되지요."라며 자신 있다는 강단진 어조로 며느리가 대꾸했고, 비로소 아내와 며느리는 도라지정과를 만들었었다.

찾아오는 사람도 드문 산골 외진 카페에서 팔면 얼마나 팔 거라고 또 저렇게 일을 벌이나 싶어 못마땅했지만 도리가 없었다. 도라지정과는 잘 만들어졌다. 아내는 사흘을 불 앞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만큼 공이 들어가는 음식이었다. 며느리는 인터넷으로 이런저런 포장지를 주문해 보기 좋게 포장했고, 급기야 상품이 탄생했는데 가격을 책정하기가 어려웠다. 도라지정과 다섯 뿌리를 낱개로 포장해 조그만 상자에 담았는데 단가를 따지자면 일만오천 원은 받아야 했다. "그래, 봐라. 이걸 누가 쉽게 사 먹겠노..." 난감해 하는 며느리와 아내 앞에 한마디 툭 던지고 일어서는데 갑자기 등이 시렸다.

며칠 전 아내는 약과 만드는 방법을 배우러 간다며 길을 나섰다. 경기도 광주, 먼 거리였다. 거기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약과 명장이 있는데 초대를 받았다고 했다. 아내는 그곳을 다녀오자마자 약과를 만들었다. 맛있었다. 입에 들어가자마자 화한 향기가 온몸에 퍼지면서 스르르 녹아드는 것이었다.

"맛있네, 이거..." 조심스레 반응을 살피는 아내를 돌아보며 부러 눈을 크게 떴다. "정말? 근데 이거 우리 밀로 해서 이렇지 그냥 밀가루로 만들면 더 맛있거든..." 말꼬리를 내리는 아내의 얼굴에 살짝 걱정스런 빛이 스쳐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지난번 도라지정과 만들었을 때와 비슷한 표정이었다. 이렇듯 잘 만들었으면서도, 맛있게 만들었으면서도, 정직하게 만들었으면서도 어디 드러내기를 꺼려하는 자신의 성격을 드러내는 표정이었다.

좋은 재료로 정성을 다 해 만들었어도 막상 상품으로 내놓을라치면 한없이 오므려드는 모습을 보인 아내였다. 정녕 맛있어서 맛있다 해도 곧이 들어주지 않는 아내였다. 잘 만들어서 잘 만들었다고 해도, 감칠맛이 나서 감칠맛이 난다고 해도 핀잔을 주며 돌아서버리는 아내였다. 스스로 무수리일 뿐이라는 아내였다.

음식 세계도 정치요 권력이라는 사실을 일찍이 깨달은 아내였다. 먹방의 시대, 알량한 손재주와 현란한 말주변으로 치장한 요리사들이 판치는 세상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아내였다. 그래서 요리책 출판제의가 들어왔을 때도, 요리방송 출연제의를 받고서도 손사래를 쳤었다. 가끔 집에서 작은 요리교실이라도 열면 도움이 될 거라는 주변의 제안마저도 거절한 아내였다.

요리대회나 음식전시에서 받은 이런저런 상장 걸어놓고 조그맣게 식당을 내면 먹고 살고 돈도 벌 수 있을 법도 하건만 그런 조언에 꿈쩍도 않는 아내였다. 그게 음식에 대한 아내만의 예의며 철학인지, 하찮은 고집인지 나는 모른다. 그들만의 경계를 넘어설 자신이 없어서였는지, 티 안 내고 살아서 더 편안한 심사를 가질 수 있어서 그랬는지 나는 모른다.

아, 무정한 듯 보였어도 내가 어찌 모르겠는가. 못 가진 것이 죄가 되고, 없는 배경이 멍에가 되는 세상을 저리 힘겹게 헤쳐 나온 당신의 닳고 문드러진 가슴속을. 그리고 또 어찌 모르겠는가. 당신의 음식은 감미로우나 그 속에 깊이깊이 가라앉은 소태 같은 눈물을.

아내가 약과도 도라지정과도 만들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쯤에서 찹쌀유과도 포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허니버터칩 한 봉지를 사려고 장사진을 치는 세상에서 정과 약과는 뭐며, 찹쌀유과는 또 뭐란 말인가. 이 산골에서 참한 며느리도 보고, 손녀 재롱도 껴안으며 십년을 다복하게 살고 있으니 나머지 세월 또한 그렇게 흘러가지 않겠는가.

몸도 성치 않은 아내는 하루에도 몇 번씩 담가둔 찹쌀 녹말 빠지는 것을 확인하러 창고방을 들락거린다. 다음 장날 읍내 한마음병원 앞 의료기기상점에서 새 부항기를 하나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 저녁부터는 뜸쑥연기가 매캐하게 방을 가득 채워도 결코 창을 열지 않을 것이라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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