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영 내려놓지 못 할 인생의 짐짝, 가난

요즘 들어 부쩍 돈을 생각한다. 지금껏 적게 벌어 적게 쓰는 것이 가장 편안하게 사는 것이라고 여겨왔으면서도 겨울 문턱에 들어서면 괜한 걱정들이 생긴다. 돈 때문이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그런 대로 민박손님도 들고, 계절별로 적게나마 농사지은 것도 팔아 장날이면 어렵잖게 장바구니를 채웠었다.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 쓰면 되지만 겨울엔 써야할 곳이 더 많이 생긴다. 지난 달에도 조문 두 곳에 결혼축의금을 네 곳에 내었다. 날씨가 들쭉날쭉해 화목보일러를 늦게까지 켜는 통에 난방기름도 제법 들었다. 시제음식도 우리 집에서 만들어 적자폭이 더 컸다. 300평 고구마농사로 감당하기엔 어림없는 노릇이다. 곶감도 깎아 팔고, 김장도 몇몇 집에서 가져가지만 언제나 간당간당하다.

▲ 김석봉 농부(전 녹색당 대표)

‘농촌에 살아도 둘 중 하나는 월급을 받아야 산다.’고 했던 고참 귀농자의 말이 떠오른다. ‘연금을 받거나 부동산 임대수입 등 일정한 수입이 있어야 산다.’는 귀농 조언자의 말...이 떠오른다. 이 산촌으로 들어온 지 십년이 되기까지 나는 그런 말은 귀담아 듣지 않았었다. 그저 적게 벌어 적게 쓰면 될 일이라는 생각도 했지만 월급도 연금도 우리 가족에게는 다 꿈같은 얘기였었다.

"나 어쩌면 멀리 돈 벌러 갈지도 몰라..." 며칠 전 진주에 다녀온 날 저녁 밥상머리에서 그동안 숨겨왔던 말머리를 꺼냈다. "뭐? 돈 벌러? 무슨 돈?" 아내가 깜짝 놀랐다. "전복양식장에... 하루 한두 번 전복에게 미역 던져주는 일이라는데..." "어디로?" 아내가 무릎걸음으로 다가앉으며 관심을 보였다. "완도... 전복양식장인데 어려운 일은 아니래... 내가 힘쓰는 일은 잘하니까..." "당신은 운전면허증도 없는데... 그래도 되나..."

사실 나는 이 일을 제안 받고 조금도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었는데 아내에게 말하기는 쉽지 않았다. 언젠가 "한 서너 해 도시에 돈 벌러 나가야겠다."는 농담조의 말에도 아내는 화들짝 놀라며 "이 나이에 서로 떨어져 살면 안 된다."고 했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 하지 말라면서 지금처럼만 살면 된다던 아내였다. 아내도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일정한 수입은 없는데 일정하게 쓰일 곳은 많아 쓰이는 것을 줄이든 수입을 늘려야할 일이다. 수입을 늘릴 수가 없으니 당연히 쓰이는 것을 줄여야 한다. 무엇을 줄일까. 전기통신요금을? 부식비나 난방비를? 경조사에 가지 말까? 강아지와 마당에 냥이들을 내쫓아? 하나 넣는 보험을 끊어? 마시는 술을 줄여? 여기저기 기부금만 해도 월 이십만 원은 되는데?
그래, 그러면 되겠다. 쓰지도 않는 유선전화 해지하고, 시장에 가는 횟수를 줄이고, 화목을 더 열심히 해 나르고, 동창회는 잊고, 마당에 부어주던 사료도 끊고, 기부금도 죄다 끊어버리고, 마시는 술을 이틀에 소주 한 병으로 줄이면 되겠다. 아, 그런다고 정말 될까? 그렇게 살아도 되는 일인가? 그렇게 우리 가족만을 생각하며 우리끼리만 살아도 되는 일인가? 허전하고 쓸쓸하고 외로워지겠지? 바깥날씨만큼이나 몸과 마음이 추워지겠지? 아마도 많이 슬플거야.

월 사십만 원 남짓한 국민연금을 받으려면 아직 몇 년 남았다. 기초노령연금 까지도 다섯 해가 남았다. 칠팔 년 뒤 아내가 받을 몫까지 다 합쳐도 월 백만 원이 안 된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 걱정은 끝없이 이어질 거라는 예감이 든다. 완도 전복양식장에서 몇 년을 보내고 돌아온다 해도 그 걱정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아니, 영영 내려놓지 못할 인생의 짐짝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낮에 햇살이 퍼지고 바람이 자면 조와 기장을 손질해야겠다. 이웃집에서 농사지은 조와 수수와 기장을 몇 가마 사 어제 산청 생초 방앗간까지 가서 도정을 해왔는데 조와 기장은 선풍기바람으로 겨를 날려 손질을 해야 한다. 조금씩 담아 포장해서 팔면 조금은 돈이 남으니 살림에 도움이 되겠지.

"나 당첨되었다... 상품이 금일봉이래..." 어젯밤 서울을 다니러 간 아내가 카톡을 보내왔다. 아내는 음식모임이 있어 매달 한번은 일박이일 서울나들이를 한다. "무슨 당첨? 상금은 얼마래?" "모임에 개근한 사람을 대상으로 추첨을 했는데 내가 되었어... 상금이 삼십만 원..." "어머니, 그 돈으로 맛있는 거 많이 사 드시고, 옷도 사시고..." 며느리가 카톡에 끼어들었다. 아직도 철이 덜 든 나는 여전히 어리광을 부리며 카톡에 이런 문자를 넣고 있었다. "홍어 묵고 잡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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