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봉의 산촌일기] 많은 것 가지려 쫓아다닌 내 삶

" ‘자만’과 ‘욕심’을 끌어내다 엄천강 센 물살에 홱 집어던져 버려야" 김석봉 농부l승인2018.02.13l수정2018.02.13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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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프다. 퇴행성관절염이라고 한다. 지난 해 너무 많은 노동을 한 결과인 듯하다. 지난 해에는 밭이랑을 온통 괭이질로 만들었었다. 전에는 관리기 빌어 이랑도 내고, 비닐멀칭도 자동으로 씌웠는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고 시간도 많이 남아돌아 농사일을 혼자서 괭이질로 했었다. 밭 천 평이었으니 결코 적은 면적도 아니었다. 괭이자루를 손으로 단단히 부여잡고 힘을 쓰는 일이니 당연히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다 가까운 숲에 간벌작업을 해서 화목 해 나르느라 몸을 많이도 썼다. 화목작업은 괭이질 못지 않게 손아귀의 힘이 많이 들었다. 엔진톱을 힘들여 부여잡아야하고, 무거운 나무등걸을 굴려 내려야 한다. 한 골짜기서만 백 짐을 넘게 지게로 져날랐으니 골병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을 거였다.

▲ 김석봉 농부

엊그제 주문한 농협부산물퇴비 200포대가 왔는데 그것을 쌓기조차 어려웠다. 포대를 거머잡으면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려서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계속 일을 해 왔더라면 아파도 크게 통증을 느끼지 못했으련만 겨우내 쉬었다 일을 하려니 통증을 견디기 쉽지 않았다.

“손가락 관절 그대로 두면 손가락이 비틀어진대요. 병원에라도 가 봐야지...” 손가락을 주무르는 내게 아내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쇠무릎 술 담가놓은 것도 좀 마시고...” 겨울에 들면서 쇠무릎 뿌리를 캐서 술을 담갔었다. 아내의 허리와 무릎이 좋지 않아서 먹일 요량이었다. 술에 약한 아내는 좀처럼 그 술을 마시지 않았다.

담근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쇠무릎 술을 담가놓고 쳐다보지도 않았었다. 아내가 아픈 허리에 부항을 뜨고 아픈 다리에 쑥뜸을 할 때마다 그 술이 생각나 “당신 마시라고 담근 건데. 자기 전에 한 잔씩 마시면 좋대. 한의사가.”라며 권했지만 아내도 술항아리를 열지 않았었다.

찌릿찌릿 아린 손가락을 바라보는데 왈칵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가끔 무거운 나뭇짐을 져나르고 돌아오면 무릎도 욱신거리는데 이러다 정말 온몸이 망가지는 것 아닌가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난간을 부여잡고 힘겹게 계단을 오르내리는 노인네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의 깊고 거친 들숨날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대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었다. 아내는 아내대로 골병이 들었고, 나는 나대로 앓고 있으니 이게 좋게 살자고 하는 일인가 싶었다. 이대로라면 농삿일도 거의 포기해야 할 처지가 되어버렸다.

유기농자재 유박퇴비 30포대와 닭똥거름도 200포대나 주문했으니 그 많은 퇴비를 져 날라 뿌려야 하고, 힘든 괭이질로 이랑을 만들어야하고, 비닐멀칭도 해야 하고, 김 매기에 벌레 잡기에 밭두렁 제초작업까지 할 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수확과 갈무리까지 그 많은 일을 다 하고 나면 필경 내 몸은 너덜너덜해질 것이다.

며칠 전 지인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면서 약간의 토론이 있었다. 친환경농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도무지 뭐가 친환경농사인지 구분이 안 돼요.” 농사는 친환경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에 나는 어떤 억울함에 북받친 듯 벌컥 말했다. “농약 안 하고, 화학비료 안 하면 그게 친환경인가... 누군 비닐멀칭도 하면 안 된다는데... 그럼 그 많은 농삿일을 어찌 하나. 시골에 품앗이라도 할 만한 인력이 있나... 돈이 많아 일이백 평 밭뙈기에 자기 먹을 것만 한다면 몰라도...” 나는 말끝마다 한숨을 몰아쉬었다.

"내가 한 해 농사를 위해 퇴비 500포대 정도를 뿌리는 일천 평의 밭뙈기에 화학비료를 쓴다면 연간 20포대면 충분할 것이다. 거의 매일 밭에 나가 김을 매고, 밭두렁 제초작업을 하는데 그 밭에 제초제를 뿌린다면 연간 서너 번이면 충분할 것이다. 그 많은 퇴비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데 소요되는 에너지의 환경용량은 화학비료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밭일을 할 때면 몇 개월 동안 하루 두서너 번씩은 몸을 씻고 옷을 버려 세탁을 해야 한다. 제초제를 뿌려서 농사를 하면 그럴 일이 연간 며칠이면 된다. 그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그때마다 쓰이는 물과 세제를 계산하면 제초제를 쓰는 편이 환경부하가 훨씬 덜하다."

이런 이유를 들이대는 것이 참 궁색하고, 괴롭고, 서글펐다. 몸이 아프니 핑계처럼 내뱉은 궤변이었으니 마주 앉은 사람들은 당연히 어리둥절해 하였다. 속으로는 "나이 들으니 망령이 든 건가" 라며 혀를 끌끌 찼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고 화학비료 써 가며 지을 농사도 아니지 않은가. 제초제 살충제 뿌리며 가꿀 무배추도 아니지 않은가. 따지고 보면 농삿돈이 적게 드는 것도 내 주장의 중요한 근거였을 것이었다.

횃대에 매달린 메주를 풀어내리는데 손아귀의 힘이 풀려 하마터면 메주를 떨어뜨릴 뻔하였다. 화목덩이를 보일러실로 옮기다 스르르 힘이 풀려 떨어뜨린 나무덩이에 발등을 찍혔다. 무거운 것 앞에서는 머뭇거리게 되고, 무엇이든 거머잡기가 쉽지 않다.

많은 것을 가지려 쫓아다닌 내 삶의 굽이굽이가 이 통증을 가져온 것 같다. 헛물만 들이켠 듯한 인생이건만 돌아보면 뒤로 참 많은 것들이 쌓여 있다. 설날이 다가온다. 새로운 갑자를 시작하는 해이니 보낼 것은 보내고, 버릴 것은 버려야겠다. 어렵겠지만 ‘자만’과 ‘욕심’은 끌어내다 엄천강 센 물살에 홱 집어던져 버려야겠다.


김석봉 농부  ksb@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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