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딩 아들과 평화롭게 공존하기

광활한 우주공간에서 지구라는 푸른 티끌 위에 살아가는 인간은 극히 미미하고 미세한 존재일 것이다. 어딘가에 인간을 능가하는 또 다른 생명체가 살고 있을 거라 여기며 바라본 하늘엔 흔적을 남기지 않는 바람만이 지나다닐 뿐. 대기권 밖에서 우월한 어떤 존재가 우리를 지켜보았다면 분명 잔소리를 참기 어려웠을텐데. 혹시 미개하고 아둔한 인간들이 복잡한 외계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존재에 대한 의구심과 성찰로 뒤엉킨 머릿속을 말끔히 풀어준 것은 당장 오늘 저녁엔 뭘 해먹지? 라는 본질적인 질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현실세계로 소환된 나는 비로소 목격하였다. 외계 언어를 쓰면서 어이없는 행동으로 지구인의 속을 하루에도 스물 네 번 뒤집어놓는 한 생명체가 우리 집에 살고 있음을. 지구 생존 나이 만 14세. 현재 중학교 1학년이며 성별은 남성. 평화를 사랑하는 지구인으로서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중딩 생명체와 공존하기 위한 방안으로 오늘부터 관찰 일지를 작성한다.

먼저 언어를 살펴보자. 이 중딩 생명체는 정체불명의 언어를 사용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아들, 오늘 김치찌개 맛 어때? 엄마가 고기 듬뿍 넣었다~”

“개이득!”

‘뭐지? 모자간의 대화를 이만 끝내자는 명사형 종결어미인가?’

그러고 보니 저들은 모든 명사에 ‘개’자를 붙이는 특징이 있다. 개이득, 개꿀잼, 개손해.

2018년 무술년 개띠 해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개’의 사용법은 따로 원칙이 있는 것 같진 않고 단어 본래의 뜻을 더 강조하는 의미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이밖에도 나를 당황스럽게 한 용어로 ‘밥도둑’이 있다. 이전까지 내가 알던 ‘밥도둑’의 쓰임은 간장게장이나 낙지젓갈처럼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울 수 있는 맛있는 반찬을 의미했다. 그러나 중딩 생명체가 아끼는 ‘밥도둑’은 식용이 아니다.

“아들, 아빠가 니 지갑에 용돈 넣어 놨다”

“밥도둑!”

“아들, 숙제 다 했어? 이제 자유시간이야. 좀 쉬어”

“레알 밥도둑!”

아들의 밥도둑은 이처럼 일상생활 도처에서 기쁘고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인다.

중딩 생명체의 두 번째 특징은 ‘모순 덩어리’라는 것이다. 어쩌면 저들의 뇌 시상하부 중간 어디쯤에 모순구역이 따로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유행에 민감하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을 중시한다.

“아들, 요즘 롱패딩이 유행이래. 날씨도 추운데 하나 사줄까?”

“싫어요! 길에 가면 사람들이 다 똑같이 롱패딩 입고 다니잖아. 나는 내 스타일이 있어요”

그러면서도 남들보다 튀는 색상의 옷은 절대 입지 않는다.

“아들, 이 빨간 티셔츠 진짜 예쁘지 않아? 너랑 잘 어울리는데?”

“엄마! 내가 무슨 초딩인 줄 아세요?”

아들의 옷장에는 회색분자 일색이다. 이처럼 개성을 추구하는 듯 싶다가도 유행을 맹추종하는 모순된 특징은 특히 게임할 때 가장 두드러진다. 친구들이 하는 게임에는 반드시 끼어야 직성이 풀린다. 한때 ‘스타 크래프트’를 해야되는데 우리 집 컴퓨터는 사양이 느려서 답답하다고, 새로 사자고 난리더니 중간에 잠깐 ‘롤’을 하다가 요즘은 뭐라더라? ‘배틀 그라운드?’

“아들, 그게 뭐야? 배틀 뭐?”

“엄마! 이거 우리 반 애들이 다 하는 거라고. 배틀 안하면 애들하고 못놀아요!”

반 아이들과 유희왕 게임을 한참 할 때는 교실 곳곳에 카드를 숨겨놓고 보물찾기 한다고 일부러 30분이나 일찍 학교에 등교하기도 했다. 아들아, 공부를 그렇게 좀 해주면 안되겠니? 또 얼마 전에는 ‘플스, 플스’ 노래를 부르기에 물었다.

“플스? 플스가 뭔데?”

“플레이 스테이션요. 친구들이 우리 집에 그거 사면 놀러 온댔는데. 사주면 안돼요?”

“그래? 얼만데?”

“음.. 50만원요!”

“......”

내가 조선시대 사람처럼 누구 집 애 이름을 잘못 들었나 싶어 입을 다문 것은 아니었다. 다만 거금 50만원이면 한 달 학원비와 맞먹는 수준으로, 이걸 나 혼자 부담할 수 없다는 계산이 스치고 지나갔음을 인정.

“아들! 근데 너 50만원이 얼마나 큰돈인지 알아?”

“네. 좀 비싸긴 하죠. 그래도 너무 하고 싶어요. 친구 집 가서 해봤는데 진짜 재밌던데”

“그러면 엄마하고 약속하자. 니가 2학년 올라가서 중간고사, 기말고사 성적이 평균 95점 이상 되면 사주기로. 어때?”

아들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아.. 95점? 너무 심하다. 엄마! 93점은 안돼요?”

기회는 잡으라고 있는 거다.

“그래, 니가 정 그렇다면 93점으로 하지 뭐. 평균 93점이 넘어야 사주는 거다. 오케이?”

“아.. 내가 할 수 있을까?”

“당연하지, 아들~ 용기를 내. 넌 할 수 있어!”

그날 이후 아들의 책상 앞에는 ‘평균 93점, 플레이 스테이션’이라는 문구가 붙었다. 암스트롱이 달나라에 도착하기 전 심정이 이러했을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평균 93점 성역에 도전을 앞둔 아들의 표정엔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짙어 보였다. 나는 어느 쪽이라도 손해 볼 것이 없었다. 아들의 성적이 오르면 올라서 좋고, 안되면 돈이 굳어서 좋고. ‘밥도둑’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였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날수록 아들의 얼굴이 편안해졌다. 도전이나 약속 따위 잊은 지 오래라는 듯. 그러고 보니 책상 앞에 붙어있던 문구도 어느 새 사라지고 없다. 문 닫고 들어가는 날이 부쩍 많아졌다.

“(똑똑~) 아들, 뭐해? 숙제는?”

“엄마! 나 지금 친구랑 프리 파이어 해야 되니까 부르지 마세요. 이거 연합이에요. 아싸, 우리 편이 이겼다, 개이득~!”

아무래도 새해에는 돈을 아낄 수 있을 거 같은 예감이 아주 강하게 든다. 그렇다고 내가 ‘개이득’이라고 하지는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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