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찢겼지만 오늘은 따사로운 햇살이...

그 아지매는 많이 외로워보였다. 마을에서 가장 부자로 살고 있는 그 아지매는 또 따돌림을 받은 듯했다. 겨울이면 가끔 저런 모습을 보였는데 올해도 마찬가지다. 겨울이면 홀로 된 아지매들이 모이는 사랑방이 있는데 그 사랑방에서 또 무슨 사단이 일어난 게 분명하다. 필경 재물자랑을 하였거나 남의 험담을 늘어놓다 사이가 틀어졌을 것이다.

며칠 전부터 앞집 유씨는 경로당에 가지 않는다. 골목에 눈이 쌓여 미끄럽지만 지팡이에 의지해서라도 기를 쓰고 경로당을 다녔었다. 경로당에 가면 점심 한 끼를 때울 수 있고, 민화투판을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였다. 경로당에서 무슨 사단이 일어난 게 분명하다. 회비를 안 내어 핀잔을 들었거나 옆지기들이 늘어놓는 자식자랑이 듣기 싫었을 것이다.

나는 계절 가운데 겨울을 가장 좋아하면서도 마을에 겨울이 오는 것이 싫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농삿일로 바빠 이웃들이 모일 겨를이 없지만 겨울이면 여기저기 모여서 세월을 난다. 홀로 된 할머니들은 노모당에 모이고, 홀로 된 아지매들은 사랑방에 모이고, 부부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은 경로당에 모인다. 노모당에서도 사랑방에서도 경로당에서도 하릴없이 이야기가 넘쳐나는데 대개 치사보다는 험담이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로 옥신각신하며 하루를 보낸다.

▲ 김석봉 농부(전 녹색당 대표)

‘아버지, 요 아래 집 일억에 내놓았는데 사려는 사람이 금방 나왔대요.’ 며느리가 말을 건네 왔다. 들뜬 목소리였다. ‘일억이나?’ 나도 놀랐다. 자동차도 들어갈 수 없는 골목 안집이고, 집마저 낡은 시멘트집이고, 대지 백여 평에 마당도 없다시피한 집이었다. ‘아버지, 우리 집 팔고 구례나 하동으로 이사 갈까요? 우리 집은 그 집에 비하면 오억은 훨씬 더 받을 수 있을 건데...’ ‘그래볼까?’ 나는 빙그레 웃으며 건성으로 말을 받았지만 그래도 좋겠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우리가 이 마을로 들어오고부터 지리산둘레길이 생겨났고, 마을방문자가 하나둘 늘어나더니 다랑이논 여기저기에 별장 같은 집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마을을 빙 둘러 열 채가 넘는 새 집이 지어졌고,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드나들었다. 사람이 안 사는 것 같은 집인데 밤이면 들창에 불이 밝았다.

처음엔 ‘어째 사람들이 저리 외롭게 사냐.’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라면 마을에서 이웃을 이루며 우리처럼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마을 복판에 있는 이 집을 선택했고, 이웃들과 어우러져 살기를 바랐었다. 마을 사람들과는 관계하지 않으면서 산 너머에 있는 같은 귀농인의 집으로 마실을 다니는 귀농자들을 비아냥거리기도 했었다. 내 살아온 삶의 역정을 반추하면서 농촌과 농민과 농업에 대한 고민과 성찰과 행동을 하지 않는 귀농인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진심은 통한다는 믿음은 순박했다. 나는 많은 마을사람들과 터놓고 지내게 된 귀농5년차를 넘기면서부터 마을일을 시작했었다. 이웃들과 함께 공동사업에 대한 교육장을 찾았고, 영농조합을 결성해 마을기업을 설립했다. 농촌체험휴양마을로 지정받았고 마을사업 3년차에 기천만 원의 흑자를 냈었다. 그러나 나는 ‘좌빨’이었다. ‘환경운동 지리산댐 반대하는 놈에게 마을일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토박이 정치똘만이 말 한마디는 나를 ‘빨갱이’로 만들어버렸다.

내가 하던 마을기업은 이제 망했다. 내가 하던 농촌체험마을사업도 망했다. 내가 하던 산촌6차산업육성마을도, 문화마을사업도 다 망했다. 마을공동사업장은 폐허가 되어버렸고, 일생을 이 골짜기 이 마을에서 서럽게 살아온 사람들과 함께 무궁화호 꼬리칸을 달고 기차여행을 꿈꾸던 마을일은 이제 뿌리까지 뽑혀버렸다. 겨울, 경로당 혹은 사랑방에 모인 사람들에 의해 내 꿈은 찢겨지고 짓밟혔다.

이 마을에 들어온 지 십년이 지났건만 나는 여전히 이웃이 아닌 이방인으로 남았다. 마을에 들어온 지 이십년 삼십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들은 주민의 권한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마을을 들쑤셨고, 들어온 사람이 집을 지어 마을 수도관을 연결할 때 오백만원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박수갈채를 받는 이 겨울 경로당이 넌더리나게 싫었다.

‘정말 그래볼까’하는 생각을 한다. ‘이 집을 팔고 이 마을을 떠나볼까’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가도 문득 겨울 경로당 혹은 사랑방에 모인 사람들의 탓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거친 세월 모질게 살아온 이웃들의 삶에 스며들지 못한 지난한 나의 욕심을 탓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햇살이 따사로울 것이라고 하니 경로당 가는 길도 녹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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