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많이 닮았다는 첼로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첼로로 연주한 음악들을 참 좋아한다.예전에는 "클래식 음악을 처음 들을 때 첼로 곡은 첼로의 구약 성서라고 말하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어야 해! 그리고 그 다음은 첼로의 신약이라 일컫는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를 들어야 해!"와 같이 약간의 고압적인 자세로 음악 감상을 강요하는 느낌이 있었다. 두 곡의 아름다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이런 식의 강압(?)이 어쩌면 클래식 음악을 빨리 질리게 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클래식 음악이란 우연히 듣
코로나(Covid-19)는 유령이 아니다. '변이'로 개명한 그것은 여전히 우리 주위를 맴도는 엄연한 실존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전과 달리 만날 수 있고 모일 수 있다 해도 실내에서 마스크는 지금도 벗을 수 없다. 코로나는 우리에게서 많은 걸 앗아갔고 계속 앗아가고 있다.누구에게나 그랬듯 국악과 헤비메탈을 접목해 세계적인 밴드로 우뚝 선 잠비나이에게도 코로나는 악재였다. 2019년 세 번째 앨범 '온다(ONDA)'를 내고 이듬해 80회 공연 월드 투어를 계획 중이었던 그들은 전대미문의 역병 앞에서 끝내 모든 걸 내려놓아야 했
우리집은 남향 양철 지붕이었다. 그 이전에는 이엉을 엮어 얹은 초가였고 두 칸짜리 방과 고방과 소마구간이 있는 아래채도 양철 지붕이었다. 새마을운동으로 후다닥 시멘트 칠을 한 담벼락 안에 백년쯤 되었을 감나무가 양 옆에 있어 바람부는 날에는 감 떨어지는 소리에 화들짝 꿈에서 깨곤 했다. 감이 떨어지고 혹은 감을 다 따고 난 쌀쌀한 새벽, 아버진 마당에 멍석을 깔고 장대를 걸고 삼베천인지 광목천인지로 막을 쳤다. 내 기억엔 아침이지만 아마 전날 타작할 준비를 다 해놓았을 것이다.홀깨(발로 밟는 탈곡기)를 대고 왼쪽에 볏단을 미리 갖다
농민들에게 햇빛은 최고의 은혜이지만 동시에 고통이기도 합니다. 작물을 자라게도 하면서 얼굴을 태우니까요. 우리는 밝은 얼굴빛을 선호하는 문화적 추세가 있습니다. 그러니 너도나도 챙넓은 모자로 햇빛을 가립니다. 그런데 일할 때 굳이 모자를 챙겨 쓰지 않고, 농사일할 때 맨손으로 일하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마을마다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얼추 비슷합니다. 손이 빠르고 일머리도 좋고, 일 앞에서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고, 주변적인 요소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해야 할 일은 꼭 해내고 마는 고집스러움을 가졌다고나 할까요?최근에
화물연대가 24일 전국 16개 지역본부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파업에 돌입했다. 철도노조와 지하철노조는 파업을 예고하며 준법투쟁에 돌입했으며,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서울대병원·보라매병원 등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윤석열 정권과의 통력 투쟁을 선포했다.그러자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연합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6단체는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최근 우리 경제는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복합 위기를 맞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수출경쟁력을 악화시키는 일방적인 운송거부를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찬바람이 분다. 굴 철이다.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서포에 굴구이 먹으러 가자는 연락을 받았다. 벌써 서포 바닷가 가게들은 굴구이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손님을 맞고 있었다.굴은 우리만 즐겨 먹는 음식이 아니다. 서양 사람들이 오히려 더 유난을 떠는 편이다. 나폴레옹이 전쟁 중에도 매 끼니 굴을 먹었다거나 굴 확보를 위해 로마군이 해외 원정을 떠났다는 것 등이 그런 것이다.로마시대, 이탈리아 최대 굴 산지 나폴리만 일대에서 생산되는 자연산 굴만으로는 인근 도시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기원전 1세기 인류 최초 인공 굴
공법학을 공부했고 또 사회 선생으로 평생을 살아온 내가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단어의 뜻을 새기며 이야기를 시작하지는 않겠다. 이미 잘 알고 있는 단어가 바로 ‘자유’다. 하지만 ‘자유’라고 해서 모두 같은 의미는 아니다. 우리말은 당연히 의미의 차이가 문장 속에서 드러나니 문장을 살펴보아야 하고 한자는 글자가 딱 정해져 있다.새롭게 바뀌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의 교과서 총론에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는 문제에 대하여 내 생각은 다음과 같다.어제 뉴스를 보니 교육부 차관은 헌법을 이야기
우크라이나 전쟁은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다. 무엇보다 에너지 문제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러시아와 인접한 핀란드에서는 최근 전력회사 '카후 보이마 오이'가 급등한 전기 가격을 견디지 못하고 파산하였고, 독일은 공적자금 40조원을 투입해 전력기업 ‘유니퍼’를 국유화하기로 결정했다. 체코에서는 프라하 도심에서 에너지 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7만 명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으며, 영국에서는 런던을 비롯해 전국 50개 도시에서 지난해보다 3배 이상 급등한 에너지 요금 등 고물가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독일 정부는 가계와 기업 에너지
가을이 오지만 마음은 무거운 날들이다.이번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위해 위안을 줄 음악을 생각해봤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미사 음악인 '레퀴엠'을 들어본다. 그 중 가장 대표적으로는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들 수 있겠다. 여러 작곡가들의 교향곡들 중 느린 악장의 곡도 골라본다.우선 베토벤 교향곡 7번의 제2악장 ‘Allegretto’를 들어보면 어떨까 싶다. 가끔 라디오에서 위안의 음악으로 이 곡을 신청하는 분들이 있다. 레퀴엠 대신 이 음악을 듣는 것도 깊은 위로가 될 것 같다.다음으로 구스타프 말러의 5번 교향곡 제4
우리 할머니는 꼬부랑 할머니였다.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몇 걸음 가다가 왼손을 허리에 대고 한 번 쭉 펴고 또 구부정한 몸으로 걸으셨다. 마을 타작마당에서 쉬고 모랭이 논으로 가는 길까지 숨을 쌕쌕거리며 걷는 모습을 기억하는 내 마음 속 사진 장면은 그리 많지는 않다.그런 꼬부랑할머니를 따라 이웃집 원평띠기 할매집에 놀러간 적 있다. 날이 저물어 할매는 저녁을 먹고 가라 했다. 며느리 평강띠기 아지매랑 같이 살았는데 그 집에는 남자 어른이 없었다. 아마 있었다면 밥을 같이 먹고 올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옛 기와집에 양철을 덮은
가을 가뭄에 농사일이 일찍 마무리되었습니다. 또 한 번의 가을을 어찌 맞을까 걱정이 앞섰는데, 어찌어찌 가을이 넘어갑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봄가을 농번기가 훨씬 정신이 없었는데, 작년 다르고 올해는 또 다르게 느껴집니다. 어느새 집 앞으로 경운기가 3단 기어를 넣고 전속으로 달리던 풍경이 사라지고, 마을 분들의 나이와 반비례해서 농기계들의 속도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당연히 농사일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또 자주 보이던 분이 잘 보이지 않아서 안부를 여쭈면 낙상사고가 일어났다거나 가벼운 시술을 하러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
“현실을 인정하라.”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 분열되지 않고는 제대로 살아가기 힘든 지금, (이 지금은 계속된다) 숱한 조언들이 차고 넘친다. ‘적극적으로 하라’ 와 ‘적극적으로 하지 마라’가 극단적으로 나뉘며 자기계발의 지침들은 그때그때 입맛에 맞춰 조립된다. 누구, 또는 무엇을 믿을 것인가! 영화 (이하 에브리씽)은 “아무도 믿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한다.은 이른바 ‘다니엘스’라 불리는 다니엘 콴과 다니엘 쉐이너트 두 사람의 감독이 만든 영화다. 다른 우주에 또 다른 나의 존재(
1. SNS 세계에 계시는 현인, 의인, 명인, 도사, 자유인…출근해서 아이들을 맞이하고, 선생님들 계시는 교무실에 가서 인사하고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눈 뒤 내 방으로 돌아와 그 전날 올라온 결재 서류와 오늘 일과를 확인하면 하루가 시작된다.해야 할 일은 참 많다. 월말까지 보내야 되는 공모 서류와 다음 달 초까지 보내야 되는 공모 서류가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어제 했던 철학 수업 내용을 정리해 놓고 다음 주 수업할 내용을 조금 고쳐야 한다. 아이들이 너무 어려워한다. 사실 어려운 과정이다.본격적으로 문서 작업을 하기 전에 몇 개
육회의 대중화를 가로막는 어려움 중 일부가 극복되는 곳이 우시장과 도축장이 있는 지역이었다. 서울 함평 익산 영천 대구 함안 진주 등지가 그런 곳이다. 하지만 이런 지역에서도 육회는 잡자마자 바로 소비해야 하는 시간적 한계에 묶여 있었다. 그것을 극복시켜 준 것이 냉장기술의 발달이었다.우리나라에 얼음공장이 생기고 냉장기술이 도입된 것은 1910년대 이후이다. 겨울철에 먹던 평안도의 메밀국수가 서울에서 여름철 대중 음식 '평양냉면'이 된 것도 당시 도입되기 시작한 냉장기술과 얼음공장 설립 그리고 아지노모토(MSG) 덕분이라고 한다.
겨울이 춥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지수 마을에서 친척 오빠랑 언니가 우리 집에 왔다. 하룻밤을 자고 한벌 이모집(나에겐 고모)에 간다고 했다.나무하러 가야 하는데 그날은 그 언니 오빠를 따라나섰다.모랭이 논을 지나 삼장으로 이어진 신작로를 따라 아이 넷이 걸어갔다. 지수 고모집 오빠는 중학생이었을 것이다.두 여동생과 함께 외가인 우리 집에 왔으니 오빠가 우리들 인솔자인 셈이었다. 신작로에 다니는 차는 버스 몇 대뿐이었을 것이다. 돌을 튕기며 다녔던 시골버스는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걸어가는 동안에는 지나가지 않았다. 보안마을을 지나 더
2001년 4월 4일, 난 모스크바 시내에서 열린 '다닐 샤프란 추모음악제'에 갔었다.오늘은 그날 듣고 더 큰 감동을 받은 음악을 소개하려 한다.스산한 바람이 부는 이 가을에 첼로 소리가 더 짙은 스산함을 데려오는가.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삼중주 '위대한 예술가를 기리며'를 실연으론 처음으로 들은 날이다.이 곡은 차이코프스키가 동료 교수이자 모스크바 음악원의 원장인 친구 니콜라이 루빈슈떼인을 추모하며 만든 음악이다.니콜라이 루빈슈떼인은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협주곡 제1번을 연주불능이라 혹평하며 사이가 틀어지기도 했었는데 후에 이 곡의
본격적인 가을농사철이 다가왔습니다. 이제 진짜 바빠서 여우가 애를 업고 가도 모를 철이지만, 요새는 애가 없어서 뺏길 일도 없겠습니다. 어쨌건 이렇게 한 바쁨이 있기 전에 농가에서는 서로 간에, 지난여름에 수확한 깨나 고추가 남은 것이 있냐고들 연락을 하고는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지난여름에는 가뭄과 폭염, 폭우 3종 세트가 겹쳐 ‘기후위기란 이런 것이다.’ 라고 대놓고 경고를 하는 셈이었지요. 그러니 전국적으로 밭곡식이 흉작이었습니다. 어쩌다 잘 된 집도 있지만, 시쳇말로 그것은 재수가 좋았던 것이고 대부분은 평년에 못 미치는 형국
비상구 천지경 밤안개가 아파트 계단까지 스며있다야근의 피로가 누적된 다리로한 층 계단을 오를 때마다지친 눈 깨워주는 사람환한 세상 향해 비상을 꿈꾸며 달리지만 한번도 그 문을 벗어나지 못한사람유심히 나를 내려다본다 노름꾼 아버지 횡포에 시달리던 어머니충혈된 눈동자로 바라본 세상의 불빛이 저랬을까마음은 늘 비상등 속 저 사람처럼계단을 향해 도망쳤을지도 모른다자식들 가파른 계단 내딛는 걸음 지켰을 어머니 부릅뜬 눈, 저 비상구 불빛두터운 어둠 물리치고 있다 이제 집 밖이 무섭다는 칠순의 어머니침침한 눈으로 남은 세상 더듬어간다내 밤눈
육식은 진화과정 중 우리 DNA에 새겨진 본성이다. 육식과 불을 이용한 요리를 통해 두뇌가 커졌고 체격은 건장해졌다. 이러한 생물학적 토대는 진화적 선순환의 수레에 우리를 올려놓았다.지혜와 체력이 생겼고 이것은 다시 조직과 문화를 낳았다. 조직과 문화는 더 많은 먹거리를 쉽게 확보할 수 있게 했다.드디어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의 정복자가 되었다. 단순하게 말하면 육식이 오늘날 우리를 만들었다. 육식 없이는 균형 잡힌 영양을 공급하기가 불가능하다. 아미노산 비율이 그러하고 비타민의 함량이 그러하다. 우리는 가능하다면 고기를 많이 자주
2022년 설 연휴를 붙잡으려고 개봉한 영화 , , 의 성적표는 부진했다. 물론 아직 코로나19의 그늘이 짙었다. 그러다 드디어 5월, 가 천만 관객의 축포를 쏘아올렸다. 대작이라는 수식을 업고 시장을 엿보던 가 7월부터 줄줄이 스크린을 붙잡았다. 그리고 9월, (이하)이 잡은 스크린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이 가운데 , , 는 남성 영웅 또는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