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설 연휴를 붙잡으려고 개봉한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 <킹메이커>, <특송>의 성적표는 부진했다. 물론 아직 코로나19의 그늘이 짙었다. 그러다 드디어 5월, <범죄도시2>가 천만 관객의 축포를 쏘아올렸다. 대작이라는 수식을 업고 시장을 엿보던 <외계+인1부> <한산: 용의 출현> <비상선언> <헌트>가 7월부터 줄줄이 스크린을 붙잡았다. 그리고 9월, <공조2: 인터내셔날>(이하<공조2>)이 잡은 스크린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가운데 <한산: 용의 출현>, <헌트>, <공조2>는 남성 영웅 또는 남성들의 서사다. 한국영화 대작들이 여전히 남성 중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거기에다 <헌트>와 <공조2>는 또한 여전히 현대사와 남북관계를 비틀어 차용한다. 그럼에도 이들 영화는 손익분기점을 넘었거나 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영화는 전문적인 프로듀싱보다는 철저한 기획을 바탕으로 제작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문제를 수다로 풀 수는 없다.

2017년에 이어 속편으로 나온 <공조2>는 남북의 수사관이 다시 손을 잡고, 여기에 딸린 부제 ‘인터내셔날’이 보여주듯 ‘웃기자!’는 의도가 분명하다. 그러니까 FBI요원 잭(다니엘 헤니)을 불러들여 웃는 판을 넓혀보자는 것. 밑그림은 남··미의 정치적 지형도이다. 그러나 밑그림은 단지 밑그림일 뿐이다. 북한은 여전히 돈이 궁하고, ‘글로벌 범죄조직’이라 불리는 집단의 장명준(진선규)은 북의 체제를 복수의 대상으로 삼는다. ‘영화는 영화다!’를 백 번 수긍하더라도 언제까지 이처럼 낡고 틀에 박힌(클리셰) 비유를 우려먹을 것인가.

따라서 허술하고 낡아빠진 배경인 시대는, 세 명의 남자들이 ‘폼’잡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여기에 ‘빌런’인 장명준과의 대결구도 역시 이 세 명에겐 그다지 절실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놀 판이 생겼으니 한번 놀아보자는 것. 그들의 놀이에는 동성 간, 그리고 이성 간의 차별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강진태(유해진)는 림철령(현빈)의 외모와 비교당하며 그 차별을 즐기기까지 한다. 그리고 강진태의 처제 민영(윤아)은 그저 철령의 분위기를 흠모하다가 잭이 등장하자 그 대상이 순간이동한다. 그저 웃고만 있기에는 진심으로 불편하다.

한 번씩 멋진 싸움판을 곁들이며 웃어보자는 영화를 두고 심각한 것도 병이라면 병이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은 채 진행중인 역사나 한반도 정세를 불러오는 것. 그 보이지 않는 주름에 대한 고민은커녕 매끈하게 봉합해서 다림질하는 것이 ‘상업영화잖아!’로 합리화될 수 있을까. OTT서비스나 드라마에 비해 영화는 여전히 남성 중심의 서사가 힘을 갖고 있다. 이것은 물론 구조이다. (이것도 수다로 다할 수 없다) 어쨌든 할리우드의 성공모델은 힘이 빠지지 않은 채 한국의 영화산업에 똬리를 틀고 있다.

그럼에도 한쪽에서는 알게 모르게 여성이 주연하고 활약하는 영화가 박수를 받았다. <같은 속옷을 입은 두 여자>(김세인 감독), <경아의 딸>(김정은 감독), <불도저에 탄 소녀>(박이웅 감독)같은 영화다. 그리고 홍상수 감독의 <소설가의 영화>를 덧붙일 수 있겠다. 올해도 추석이 지나고 태풍이 두 번 지나갔다. 그리고 9월 13일 ‘누벨바그’의 거장인 장뤽 고다르가 세상을 떠났다. 영화 100년의 한 세대가 그렇게 저물고 있다. 영화관과 영화 사이에서 선택하는 행복이 예전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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