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나는 상업고등학교 3학년 신분으로 부산진역 맞은편 건물의 3층에 있는 ‘여원타자 경리학원’(지금은 전산학원으로 바뀌었다)에 타자 강사로 실습과 취업을 동시에 했다. 1980년 1월 1일, 새해 첫날 새벽을 주산 강사를 하던 친구 용태(이십대에 암으로 먼저 떠났다)와 강의실 책상 위에서 맞았다.

1980년 3월까지 실습생 신분이었던 우리는 월급이 없었고 학원 뒤편의 시장 골목에 있는 밥집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이 전부였다. 단칸방도 얻을 수 없었던 우리는 연탄난로를 피워놓은 채 강의실 책상을 붙여놓고 침대로 활용하며 생활했다. 당시에는 타자 경리학원이 초호황이었다. 취업을 위해서, 그리고 학교에서 자격증을 졸업의 필수 조건으로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격증 시험을 주관하는 상공회의소, 학원, 학교가 손잡은 일종의 단합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른 아침 6시(야간반 학생들을 위한) 수업부터 자정에 끝나는 수업까지 쉴새 없이 돌아가는 노동에 우리는 코피를 흘렸고, 대충 씻고 자기 전에 연탄난로 위에 쥐포 두 마리를 올려놓고 소주 한 병을 나눠마셨다. (고 3부터 술을 마셨다고?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시길) 그렇게 쥐꼬리보다 짧은 급여를 받으면서 1년 정도 일했을 때 우리는 깨달았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것을. 그래서 입시학원 단과반을 꾸역꾸역 들으며 대학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 시절을 함께 견뎠던 친구는 대학도 가지 못한 채 먼저 떠나고 말았다.

천신만고 끝에 대학을 갔으나 학생운동으로 감옥을 살고 나와 제적당하고 몇 년 단체(?)에서 일한 거 말고는, 2021년까지 하청에 하청과 아르바이트, 십 개월짜리 단기계약직을 전전했다. 많은 것을 보았고 많은 것을 들었으나 많은 얘기를 하지는 않았다. (오늘은 웬 개인사? 수다니까) 대한민국에서 하청 업체 계약직이나 대기업 프랜차이즈, 자영업 아르바이트나 1년 미만 단기계약으로 일하고 있는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인간으로서 존엄성은 차치하고, 노동 분야나 일자리에 대한 무시 속에서 다만 견딜 뿐이다.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는 위에서 말한 사례 중에서도 학생 신분이면서 노동자가 되는, ‘현장실습’이라는 이상한 구조(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닌 모양이다)를 다룬 극영화다. 현장실습은 박정희 시대인 1963년 산업교육진흥법에 의해 정식으로 만들어졌다. 이때부터 이른바 실업계 학교 학생들이 재학 중 지정된 산업체로 현장실습을 나가게 된 것이다. 이후에 이 법률은 여러 차례 ‘정상화 방안’이니 뭐니 해서 보완되었지만 근본적으로 바뀐 것이 없이 계속되고 있다.

결국 그렇게 학생 신분으로 현장실습을 가서 꽃다운 나이에 희생되는 친구들이 계속되고 있다. 2011년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2014년 CJ제일제당 진천공장, 같은 해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 2015년 외식업체 토다이, 2017년 제주 제이크레이션 생수 공장, 같은 해 전주 LG 유플러스콜센터 협력업체(LB휴넷), 2021년 여수의 요트업체 등(이것뿐이겠는가)에서 그들은 학생으로도 노동자로도 보호받지 못했다.

나는 그것을 일찍이 뼈저리게 겪었다. 그때는 신용카드가 없던 때라 원장은 매일 현금을 보따리에 싸 들고 퇴근했다. 우리는 간식도 없었으며 심지어 식사 시간도 제대로 보장하지 않아 때를 놓치기 일쑤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때 감히 또래의 3학년이나 후배 수강생들에게 “이렇게 기를 쓰며 할 필요 없잖아.”라고 하면 “선생님이 취직시켜줘요? 자격증 없으면 어떡해요.”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때 그렇게 자격증에 목을 매던 친구들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다음 소희>는 현장실습이라는 구조와 현장을 꽤 사실적으로 구축하며, 당차던 소희(김시은)가 어떻게 고립되어 가는지, 후에 형사 유진(배두나)이 권력과 행정의 피라미드를 통해 왜 책임지는 자들이 없는지를 밝혀내는 과정이다. 그러면서 소희 다음의 소희, 또 소희가 나올 수 있는 지금의 노동 현실을.

영화에서도 기성세대(책임자와 관료)들은 말한다. “이게 현실 아닙니까.” 그래 그게 현실이다. 정주리 감독은 그 현실을 영화라는 방식으로 일깨웠고, 관객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법과 제도를 바꾸고 그 꼭짓점에 있는 권력? 물론 그렇게 가야겠지. 그러나 그 전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일이든, 그 일을 하고 있는 어떤 사람이든 다른 일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아니다. ‘직업에 귀천이 없고 사람 위에 사람 없다?’ 천만에, 만만의 콩떡이다. 나부터 가당찮은 조작과 구분을 거부하는 것. 어렵지만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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