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퍼스트 슬램덩크>(이하 슬램덩크)가 역주행하고 있다. 물론 <아바타:물의 길>이 개봉 42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12월 3일 개봉한 <슬램덩크>는 2월 1일 현재 관객 수 200만을 넘었다. 다시보기와 ‘슬친자’(<슬램덩크>에 미친 자)라는 유형을 만들며 빚어진 숫자이다. 90년대 시작부터 중반까지 일본열도를 휩쓸고 우리나라까지 덮친 만화 <슬램덩크>의 극장판이 왜 지금, 다시 그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원작자인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직접 연출하며, CG나 3D 위에도 펜 선의 질감을 위해 그의 수없는 리터치가 더해진 결과이다. 살아 있는 선이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인물(캐릭터)에 피가 흐르는 듯하기 때문이다. 꼭 원작을 본 적이 없어도 하이라이트인 ‘산왕전’ 경기 한 편만으로도 <슬램덩크>라는 만화의 재미를 오롯이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작에서 비교적 적은 분량으로 등장했던 ‘송태섭’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원작의 강백호나 정대만이 아니다. 강백호의 재기를 통해 청춘들의 뜨거운 열정이 더 이어질 수 있는데 원작은 끝났다. 그리고 26년 만에 송태섭의 슬램덩크로 처음처럼, 첫 애니메이션으로 귀환한 것이다. 포인트 가드인 송태섭은 속공과 볼 감각이 장기여야 함에도 아직 부족하다. 부족한 송태섭이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인가.

2014년부터 시작된 애니메이션 <슬램덩크>의 기획은 분명했다. ‘잘되지 않는 것’, ‘한계에 부딪치는 것’, 그리고 아픔이나 상실감을 어떻게 뚫고 통과하는가! 오키나와에서 가나가와 현까지 밀려나는(?) 송태섭 가족이 겪는 일상의 현실감과 더불어, 경기를 통해 애니메이션이 갖는 현실감의 한계를 뚫어내는 박진감이 그것이다. “뚫어! 송태섭!”

종이에 그려진 만화와는 달리, 애니메이션은 놓치기 쉬운 움직임이 쌓여 현실감을 이루고 감정을 느끼게 한다. <슬램덩크>는 이것을 갖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와 피땀을 새긴 결과이다. 바닥에서 튕기는 농구공 소리는 가슴을 뛰게 한다. 움직이지 않는 정지 동작에도 고스란히 숨소리가 느껴진다. 성장은 실패를 통과한다는 뻔한 명제에도 불구하고, <슬램덩크>는 수없는 선과 움직임이 실패와 성장을 보여주며 우리를 끌어당긴다. 우리가 살아가는 게 이런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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