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인정하라.”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 분열되지 않고는 제대로 살아가기 힘든 지금, (이 지금은 계속된다) 숱한 조언들이 차고 넘친다. ‘적극적으로 하라’ 와 ‘적극적으로 하지 마라’가 극단적으로 나뉘며 자기계발의 지침들은 그때그때 입맛에 맞춰 조립된다. 누구, 또는 무엇을 믿을 것인가!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브리씽)은 “아무도 믿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에브리씽>은 이른바 ‘다니엘스’라 불리는 다니엘 콴과 다니엘 쉐이너트 두 사람의 감독이 만든 영화다. 다른 우주에 또 다른 나의 존재(분신? 보다는 완전히 다른 나)를 통해 나의 결핍을 해결한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멀티버스’에서 펼쳐지는 얘기다. 서로 비슷하고 보편적인 구조를 가진 평행우주의 ‘멀티버스’라고 하니까 머릿속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영화의 전개 역시 간단하지 않다. 중국계 에블린(양자경)은 미국 이민 2세대로 세탁소를 운영한다. 현실은 기절 직전에 있다. 딸 조이(스테파니 수)의 일탈(?), 남편 웨이먼드(조너선 케 콴)의 이혼 요구, 그리고 세무 당국의 조사까지 들이닥치고 있다. ‘나는 왜 이렇게 됐을까.’ ‘내 삶은 이런 식으로 끝나고 마는 것일까.’하는 생각까지도 에블린은 할 틈이 없다.

그때 평소같지 않은 남편이 우리는 ‘멀티버스’에서 살고 있으며, 다른 우주에 살고 있는 또 다른 나가 있으니, 그 힘을 빌려서 이 지긋지긋한 현실을 극복하자고 설득하며 부추긴다. 이때부터 영화의 서사(일부러 흩트리는)는 멀티버스를 오간다. 현재의 보잘것 없는 나는 다른 차원에서 다른 여러 가지 나로 살아가고 있다. 그 다른 ‘나’는, 이 세상에서 이뤄보지 못한 꿈이기도 하다. 곧 무너질 것만 같은 나는 그런 여러 가지 나의 능력과 장기를 빌려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할 리 없고, 그러면서 지금을 극복하는 것 역시 간단할 리 없다.

그러면 에블린은 어떻게 용기와 자신감을 얻고, 주위 사람(특히 가족)들과의 관계도 회복하게 되는가. 그것은 우선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고(여러가지 다른 능력을 지닌 나로부터) 다음으로 관계의 ‘스며듬’이라 할 수 있다. 포기하지 않는 태도도 포함되는데, 이쯤 말하면 허다한 자기계발서와 다른게 뭐야? 라고 할 수 있다. <에브리씽>이 그처럼 뻔하게 보이지 않는 것은 영화적인 방식을 십분 발휘했기 때문이다. 메타버스를 오가며 좌충우돌하는 에블린이 자신을 깨닫는 과정은 한바탕 소란과도 같다.

배우 양자경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는 <에브리씽>에는 무술 격투 씬이 많이 나오는데, 상대를 죽여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결핍이나 고통을 해결해주는 방식이다. 이런 특이한 관점과, 당연한 것을 비트는 영화적 표현이 <에브리씽>의 장점이다. 처음에는 ‘아무도 믿지 말라’에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닐 때 원하는 모든 것을 다해볼 수 있다’고 하는 <에브리씽>의 변화는 지금의 혼돈을 비켜서지 않겠다는 것이기도 하다.

왕가위를 비롯해서 여러 영화에 대한 경배가 들어 있는 <에브리씽>에 개인적으로 조금 바라는 것은, 편집에서 조금만 더 친절하게 한 박자 늦춰주었더라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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