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산 : 용의 출현' 스틸컷
영화 '한산 : 용의 출현' 스틸컷

태어나서 처음 본 영화가 1971년에 이기용 감독이 연출하고 김지미, 김진규 배우가 등장한 <성웅 이순신>이다. 국민학교(그때는) 강당에 모아놓고 필름 영사기를 직접 돌려서 틀었던 영화는 충격이었다. 그 충격은 이순신이라는 영웅의 활약보다 영사막 위에서 펼쳐지는 실재(實在)하는 듯한 재현(再現)이었다. 영화라는 물성은 환장하게 만들었고 강력하게 빨아들였다.

영화는 1962년 유현목 감독의 <성웅 이순신>에서 <한산: 용의 출현>까지, 드라마는 물론 소설의 경우 2014년 조정우의 <이순신 불멸의 신화>까지, 이순신은 거듭 살아서 돌아오는 인물이다. 400년이 넘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대중문화와 문학작품에서 끊임없이 불러오는 이순신은, 이제 죽어서도 살아있는 ‘유명인’인 셈이다.

김훈의 장편소설 <칼의 노래>는 100만 부 넘게 팔렸고, 김한민 감독의 <명량>을 본 1700만이 넘는 관객 수는 한국영화사에서 깨지지 않는 기록이다. 그리고 8월 12일 현재 <한산: 용의출현>은 관객 수 500만을 돌파했다. 그의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인 <노량>은 이미 편집까지 끝냈다고 한다. 그야말로 거침없는 ‘진격’이라 할만하다.

전작 <명량>에는 ‘이게 나라야?’고 물을 수밖에 없는 나라가 있지만 <한산: 용의 출현>(이하 ‘한산’)에는 아예 ‘나라’가 없다. <명량>에서는 이순신을 설명했지만 <한산>에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이순신 해전의 순서는 한산대첩이 1592(선조 25년 7월 8일)년 8월이고, 명량대첩이 1597년(선조 30년 9월 16일) 10월이지만, 영화에서 이 순서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한산>에서 ‘도대체 무엇을 위한 싸움인가?’는 이순신의 입을 통해 ‘의(義)대 불의(不義)의 싸움’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니까 <명량>이 ‘민심’이라는 메시지라면, <한산>은 판옥선(板屋船), 구선(龜船), 그리고 학익진(鶴翼陣)의 이미지다. <명량>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못한) 거북선의 위세를 위해 조금씩 쌓아 올리는 이미지는, 일본군의 시점에 비중을 늘리면서 상대적으로 강도를 더한다. 어쩌면 이순신보다 용맹스럽고 통쾌한 거북선은 언제 등장하는가. 그것은 일본군의 입을 통해 처음에는 장님 배라는 뜻의 ‘메구라부네’였다가, 해저 괴물이라는 뜻의 ‘복카이센’으로 바뀌어 불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순신의 의(義)가 무엇인지는 가려져 있다. 필요한 말도 거의 하지 않으며, 심중(心中)은 그만 알고 있을 뿐이다. 물론 불의(不義)는 명나라 정복을 위해 조선을 발판으로 하겠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욕일 것이다. 그러나 불의에 대항하는 의를 말하는 이순신은 영웅의 이미지가 없다. 김한민 감독의 말대로 지장(智將)을 보여주는 것인데, 이른바 ‘국뽕’을 비켜 가는 전략이다.

<명량>에서 국가와 백성이 부딪치는 가운데 이순신의 이면이 있었다면, <한산>에서는 국가는 아예 없고 백성이 덜한 가운데 영웅을 탈색한 이순신의 이미지가 있다. 그것은 말없는(그러나 믿을 수밖에 없는) 이순신을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거북선과 겹친다. 부상을 입은 채 창백할 정도인 이순신에 대한 연민이 거북선의 자긍심으로 옮아간다. 그러니까 지금 한국 정치판의 지리멸렬한 인물을 대체할 자긍심은 무엇인가?

지난 6월 2일부터 시작한 대우조선해양 비정규 노조의 파업이 51일째인 7월 22일에 타결되었다. 그러나 사측의 손해배상소송은 해결되지 않았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당사자 간의 문제’라며 단번에 잘라 말했다. ‘사회적 약자’라는 말은 하루에도 몇 번씩 들려오지만, ‘사회적 강자’라는 말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약자는 강자가 규정하는 것일까? 영화 <한산>의 관객 수가 또다시 1,000만을 넘는다면, 그것은 정치가 사라진 지금의 민심일까. 아니면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이순신에 대한 사랑일까. 그리고 그 덕은 정말이지 누가 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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