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
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

우크라이나 전쟁은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다. 무엇보다 에너지 문제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러시아와 인접한 핀란드에서는 최근 전력회사 '카후 보이마 오이'가 급등한 전기 가격을 견디지 못하고 파산하였고, 독일은 공적자금 40조원을 투입해 전력기업 ‘유니퍼’를 국유화하기로 결정했다. 체코에서는 프라하 도심에서 에너지 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7만 명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으며, 영국에서는 런던을 비롯해 전국 50개 도시에서 지난해보다 3배 이상 급등한 에너지 요금 등 고물가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독일 정부는 가계와 기업 에너지 비용을 위해 이미 3차례에 걸쳐 950억 유로(130조원)를 지원했으나 에너지 가격이 계속 오르고 인플레가 10%에 육박하자 지난 9월 29일, 2000억 유로(280조원)를 추가로 지출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한국전력의 올해 적자 규모는 30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전은 올해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23조원에 이르는 회사채를 발행했다. 최근 레고랜드 사태로 인해 금융시장이 경색되고 투자 심리가 급속도로 위축되면서 6% 금리에도 한전채가 유찰되었다. 한전채는 정부가 지급 보증하는 AAA급 초우량채로 지난 3년간 유찰된 사례는 없다. 올해 기준 연료비가 kWh당 9.8원 인상(78원, 작년 기준 14% 인상)됐지만 한전이 발전사들로부터 전력을 사 올 때 적용되는 전력 도매가격에 비추어보면 한전의 적자를 해소하는 데에는 턱없는 수준이다. 한전은 올해 예상되는 30조원의 적자를 해소하려면 kWh당 260원 올려야 한다는 추산을 내놓았다.

한국전력의 적자가 한전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로 커지자 그동안 숨죽여있던 ‘민영화’가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한국경제신문은 지난 4일 “정부가 한국전력의 전력구매가(전력도매가)를 경쟁 입찰로 정하는 가격입찰제를 도입할 계획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지금은 발전단가가 싼 원전과 석탄발전소의 가격이 발전단가가 가장 높은 LNG발전소를 기준으로 전력도매가가 결정된다. 이것을 앞으로 발전사별로 차등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될까? 말로는 발전사를 경쟁시켜 전력 구매 비용을 낮춘다고 하지만,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세계적으로 퇴출 대상인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석탄발전은 더 큰 비중으로 확대되고, 원전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전력시장 개편안은 겉으로는 ‘발전사 간 경쟁 촉진’을 이야기하지만 본질은 ‘한국전력 민영화’의 신호탄이다. 한국경제신문은 같은 보도에서 “한전이 가정과 기업으로 전기를 보내는 송·배전을 독점하는 현행 전력산업구조에선 시장경쟁에 한계가 있다”며 한전의 독점 구조를 깰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경제는 같은 날 박준동 부국장 겸 정책에디터의 칼럼 <한전 민영화 다시 토론할 때다>에서 “한전이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며 ‘민영화’를 공론장으로 끌어냈다(사진1). 한전의 적자는 정부가 전기료를 올리지 못하도록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라며 민영화를 통해 가격 결정권을 기업에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박준동 부국장은 이 칼럼에서 “손실을 정부가 세금으로 메워주는 것이나 전력소비자(대다수 국민)가 메워주는 것이나 실상은 같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한전의 손실을 정부가 메워주지도 않을 뿐 아니라 대다수 국민이 메워주지도 않는다.

공공기관 경영정보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2017년 이후 정부의 한전 직접지원은 보조금관리기본법에 따라 2018년 353억46백만 원, 2020년 1188억1천만 원, 2021년 1395억5천만 원이 지원됐다. 한국은 전체 발전량 중 산업용이 55%, 빌딩이 22%, 가정용은 불과 15%에 불과하다. 김용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올해 국감에서 한전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우리나라 전력다소비 상위 10대 대기업들의 5년간 평균 전력구입단가는 ㎾h당 94.44원으로 산업용 전기요금단가 106.65원보다 12.21원 더 싼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10대 기업은 일반 기업 대비 싼 전기료 혜택을 받으면서 5년간 4조 2000억 원이 넘는 혜택을 받았다. 지난해(2021년) 기준 삼성전자의 전력 사용량은 25.8TWh(테라와트시)로 글로벌 IT 제조사 중 최대 규모이다. 서울시 전체 가정용 전력 사용량인 14.6TWh의 1.76배에 해당하는 규모로 삼성전자의 모든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전환(RE100)하면 약 700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다소비 1위 기업인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 5년간 평균 94.83원에 전력을 구매했는데, 10월 20일 전력도매가격(kwh당 358.36원)을 기준으로 할 경우 5조원의 추가 전기요금을 내야 한다. 한전 적자로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것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들인 셈이다.

지난 7일, MBC는 뉴스데스크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크게 올라 한전은 큰 타격을 받았지만 한전에 전기를 만들어 파는 7개 민간 재벌 계열사들인 SK(3개), GS(2개), 포스코와 삼천리는 떼돈을 벌었다고 보도했다. 이들 7개 민간 발전기업이 올 상반기 벌어들인 영업이익은 1조9천억원으로 불과 반년 만에 작년 1년 동안 번 돈(1.2조)보다 훨씬 많이 벌었다.

영국은 전쟁 특수로 큰돈을 번 에너지기업들에게 25% 세금을 더 걷고, 그 돈으로 서민들에게 연료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서민들에 대한 지원으로 치솟은 국가 채무를 개선하기 위해 법인세 인상 등 350억 파운드(56조원) 규모의 증세를 추진하고 있다. 이탈리아도 이익이 크게 증가한 에너지기업들에게 이익의 10%를 횡재세로 걷고 있으며, 독일 정부도 전력 회사가 생산 비용 이상으로 버는 전력 이익의 90%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전 세계가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펴고 이를 위해 부자와 대기업에 보다 많은 세금 부담을 질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일 전경련 등 경제6단체는 법인세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경제6단체는 법인세 인하가 투자와 고용을 늘리고, 외국인 투자의 마중물 역할을 한다며 신속한 처리를 요청했다. 그러자 서울신문은 7일 사설에서 “꺼져가는 성장 동력을 되살리고 고물가 등을 헤쳐 가려면 기업과 가계의 부담을 덜어주는 조치가 불가피하다”며 전경련 등 경제6단체를 거들고 나섰다. 언론이 국제적인 에너지 위기를 한전에 떠넘기며 ‘민영화’를 다시 꺼낸 속셈은 증세 등 대기업의 책임을 숨기고 재벌의 독점적 이윤을 계속 보장하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