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구
 
천지경
 
밤안개가 아파트 계단까지 스며있다
야근의 피로가 누적된 다리로
한 층 계단을 오를 때마다
지친 눈 깨워주는 사람
환한 세상 향해 비상을 꿈꾸며 달리지만 한번도 그 문을 벗어나지 못한사람
유심히 나를 내려다본다
 
노름꾼 아버지 횡포에 시달리던 어머니
충혈된 눈동자로 바라본 세상의 불빛이 저랬을까
마음은 늘 비상등 속 저 사람처럼
계단을 향해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자식들 가파른 계단 내딛는 걸음 지켰을 어머니 부릅뜬 눈, 저 비상구 불빛
두터운 어둠 물리치고 있다
 
이제 집 밖이 무섭다는 칠순의 어머니
침침한 눈으로 남은 세상 더듬어간다
내 밤눈 어두운 계단길 밝혀주는 비상등
귀가 시간이 늦을수록 불빛 더욱 환하다
 
*직장에 일이 많아 연장 근무를 한 날, 파김치처럼 처져서 계단을 오를 때 본 비상구 불빛, 한 발 한 발 따뜻하게 짚어주던 어머니 눈빛 같은 비상구를 유심히 바라보니 푸르게 표시된 뛰는 사람이 있었다. 비상구 속을 뛰쳐 나가고 싶지만 한평생 그 속에 갇혀서 뛰고 있는 사람,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절대 나가지 못하는 사람, 오직 자식만을 위해 헌신하는 우리들의 어머니 아니던가? 비상구를 만나면 늘 어머니가 생각난다.
 
 
천지경 시인
천지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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