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올해만큼 실감나는 해가 있었을까? 해마다 봄이 되면 이 다섯 글자를 들먹이고는 했다. 꽃샘추위를 맞으면서, 황사나 미세먼지가 지독할 때도 썼다. 그러나 잠깐 그러다가 곧 지나갔다. 그런데 올해는 아니다. 꽃이 피어도 고운 줄 모르겠고, 날씨는 포근해도 거리는 싸늘하기만 하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게 아니라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봄꽃 축제를 열고 관광객을 한 사람이라도 더 맞이하려고 애를 쓰던 지자체들인데, 제 발로 오는 관광객을 막기 위해 안절부절
38가구가 사는 우리 마을에 단 한 명의 어린이인 은서는 책가방까지 사놓고 오매불망 입학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체계적인 공적 사회에 편입하게 된다는 소속감이랄지, 젖내나는 유(乳)자를 떼고 배움길에 나서는 학생이 되는 경건함이랄지 아무튼 어린 마음이 일렁이겠지요. 그런 입학과 신학기 개학이 코로나19 사태로 전례 없이 미뤄지고 있으니 아이들도 어른들도 적잖이 당황스러운 것입니다. 학교는 배우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어린 학생들이 사회적 돌봄을 받는 공간이기도 하다 보니 이 갑작스런 사태에 대
‘한일’전이라 하면 흑백 텔레비전으로 보던 ‘프로레슬링’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박정희가 경찰과 군인, 공무원 조직으로도 모자라 깡패까지 동원해 폭압적인 공포정치를 펼치던 그 시절, 사람들의 눈과 귀를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프로레슬링이었다.귀화 일본인 역도산의 제자 김일이 반칙을 일삼는 일본 레슬러들을 박치기 하나로 제압하는 장면을 보며 사람들은 열광했고, 암울하고 고통스런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축구나 야구와 같이 경제력과 조직력이 뒷받침돼야 어느 수준에 오를 수 있는 스포츠는 일본에
개학 연기로 학생 간 코로나 감염 전파를 억제하고자 하는 노력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장기간의 학교 개학 연기와 가정 내 생활(격리(?), 사회적 거리두기)은 아동의 신체 및 정신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새로운 관심이 필요하다.(예: 주말 및 방학 동안 신체 활동 감소 및 TV 또는 인터넷 사용 시간의 증가로 인한 불규칙한 수면 패턴과 식사로 체중 증가 및 성장기의 골격과 심폐 기능 저하를 초래한다는 기존의 연구들이 있음).어린이가 야외 활동을 하지 않고 집에 갇혀있을 때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적지 않다.
지난해 11월 걸그룹 카라 출신 가수 고(故) 구하라 씨가 사망하였는데, 구씨가 남긴 재산의 상속을 두고 법적 분쟁이 발생하였다. 구씨의 친오빠 A씨가 20년 넘게 교류가 없다 공동상속인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며 나타난 친어머니 B씨를 상대로 "어릴 적 가출해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은 친모에게는 동생의 재산을 줄 수 없다"며 상속재산 분할심판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구씨의 친아버지는 A씨에게 상속분을 양도했고 A씨는 민법 제1008조의2에 규정된 기여분 제도를 근거로 B씨에게 1/2 상속분이 인정되는 것은 부당하다며 B씨를 상대로
우리나라 장애인복지법에 의하면 장애인이란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 이다. 다시 말해 몸과 마음이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 하는데 불편한 사람을 말한다.그렇다면 장애인 인구는 얼마나 될까? 2017년 보건복지부 등록현황에 의하면, 우리나라 등록 장애인은 약 255만 명으로 추산한다. 이 수치는 전체 인구의 5%정도이고, 6가구당 1가구는 장애인이 사는 셈이다. 우리나라 인구를 5천만 명으로 계산하면 국민 20명당 1명꼴이니 꽤 많은 숫자임에는 틀림없다.그들 가운데 지체장애인이 135
수목원의 오른편 들머리 연못가 홍매는 환장할 정도로 매혹적이다. 그이가 언제 피어나나 하고 2월 말께부터 조바심치다가 코로나 비상이 걸린 와중에 달려가 텅 빈 수목원을 한가롭게 만끽했다. 다음은 목련 차례인지라 움트기 전의 목련원을 잠시 기웃거리며 까르르 웃듯이 터뜨릴 그 상앗빛 청초를 연상하며 돌아왔는데 그만 넘기고 말았다. 모두 몸이 근질거리지 싶다. ‘홍쌍리’네서 ‘다압’에 이르는 길에 진동하는 매향이나 쌍계사 들머리의 십 리 터널이 눈앞에 어른거릴 것이다. 그러나 고투하는 서양의 그네들처럼 봉쇄나 이동 제한의 강제 없이 여태
춤곡을 얘기하면 보통 왈츠나 탱고를 많이 떠올릴 것이다. 춤곡을 쓴 작곡가에는 누가 있을까? 요한 쉬트라우스와 아스토르 피아졸라 외에도 떠오르는 춤곡 작곡가로는 독일의 요하네스 브람스와 체코의 안토닌 드보르작이 있다. 관현악단의 앙코르곡으로 특히 잘 알려진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제 5번은 제목은 몰라도 누구나 다 아는 음악이다.오늘 소개할 음악은 브람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체코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이다. 몇 년 전, 김지운 감독의 영화 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영화에서 클래식 음악이 여럿 나왔는데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의 상황과 처지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성노예’라는 단어를 2020년 현재를 보도하는 미디어에서 발견하게 될 줄은 몰랐다. 최대 26만 명으로 추정되는 가담자들, 피해자들을 노예 혹은 물건처럼 다루며 온갖 학대와 요구를 하는 가해자 등, 매체를 통해 보도되고 있는 범죄의 형태가 너무 끔찍하여 놀라고 화난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다.그러나 ‘성노예’라는 단어가 처음 적용되었을 뿐, 이러한 범죄는 2020년 오늘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다. 장자연 사건, 김학의 사건, 버닝썬 사건, 양진호의 웹하드 카르텔,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주말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4월 5일까지 반강제적으로 실시해 줄 것을 국민들에게 당부했다. 감염병 예방을 위한 적절한 조치라고 평가하면서, 좀 더 빨리 이러한 것이 실시됐으면 하는 아쉬움도 생긴다.2월말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많은 시민들이 경로당과 마을 회관 출입을 스스로 막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회적 외부효과가 큰 감염병 예방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지만, 우려스러운 건 상당수 노인들에게 이 공간은 사회적 네트워크를 이루며 일상생활 기능을 유지, 증진시켜온 곳이라는 점이다.이러한 공간의
참으로 점입가경이요, 갈수록 태산이다. 무법‧탈법‧불법의 종합판이며, 체면이고 원칙이고 내팽개친 지 오래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자한당)에서 이름을 바꾼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이 준연동형비례대표 정당을 두고 벌이는 진흙탕싸움이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통합당의 전신인 자한당이 미래한국당(한국당)이라는 비례대표 정당을 만들 때만 해도 사태가 이 정도로까지 발전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한선교 대표가 독자적으로 비례대표후보를 공천하고 통합당의 통제권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감지되자 황교안
1995년에 개봉돼 세상에 파문을 일으킨 란 영화가 있다. 당시 대학 4년생이던 나는 지역에서 가장 시설이 좋았던 진주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는데, 이후 며칠간 악몽에 시달릴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영화는 말을 못하는 주인공이 우연히 촬영을 끝낸 세트장에서 비밀스럽게 영화를 만드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위험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룬 스릴러물이다.그들이 비밀리에 만드는 영상물은 다름 아닌 ‘스너프 필름’이었다. 처음엔 실제 섹스 장면을 찍는 포르노 영상물인줄 알지만 촬영 도중 갑자기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흉기로 찔러
가슴을 드러내 놓고 있는 다나에가 다소 에로틱하다. 성(聖)과 속(俗)의 이중적 알레고리가 깔려있는 이 그림의 주인공 ‘다나에’는 많은 화가들에 의해 묘사되었다. 특히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다나에의 에로틱한 모습들은 종교적 금기의 경계선에 있는 매력적인 주제였다.아르고스의 왕인 아크리시우스는 장차 태어날 손자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신탁을 받았고, 그로 인해 그의 딸 ‘다나에’는 결혼도 하기 전에 아버지의 명령으로 높은 탑 안에 갇혀 있게 된다. 지금의 관점으로 본다면 부도덕한 일이 분명하지만 위대한 ‘신탁’ 앞에 혈육의 정은
농산물 가공법인 운영을 앞두고서 농업기술센터에서 법인설립 교육을 여러 날 동안 진행했습니다. 사실 법인이라는 것이 5인 이상 구성만 해놓고서는 운영은 개인이 알아서 하면서 형식적인 이사회 운영구조가 허다하니 설립에서부터 운영 전반에서 그 의미를 제대로 살리고자 여러 날의 교육과정을 잡았나봅니다.그 과정에 자기소개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꾀 많은 강사가 주문하기를, 자기소개를 하되 농사작목은 무엇이고 어떤 식의 농가공을 희망하며 얼마의 소득을 기대하는지를 중심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상대의 요구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중심으로 말하는
우리 사회가 코로나19의 공포에서 조금은 벗어났다는 느낌이다. 그 공포란 단순히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은 아니었다. 나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저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도무지 정체불명이라는 데서 공포감은 유래한다. 죽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스크? 손 씻기? 그 무엇도 확실한 답이 되진 못했다. 대구에서 확진자가 하루에 수백 명씩 늘어나면서 공포는 극에 달했었다. 사람들은 외출을 삼갔고, 학교는 문을 닫았다. 밤마다 휘황한 불빛을 내뿜던 거리가 일순간 텅 비었다. 이 고요가 공포감을 배가시켰다.짙은 안
학생들에게 난데없는 기나긴 겨울 방학이 생기고, 야외 활동시(산책을 포함하여) 마스크를 하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처럼 여겨지는 현 상황에서 다시 한번 시민의 힘으로 어려운 시기를 이기고 활기찬 대한민국을 만들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코로나 19가 우리나라 특히 대구 경북에 확산되면서 우리를 사회적 불황에 늪에 빠뜨리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을 것이다. 의사로서, 그리고 예방의학을 전공한 자로서 시민들에게 드리는 수칙과 부탁을 여기에서 얘기해 보고자 한다. 1. 개인생활수칙 준수와 사회적 거
[필자 주] 코로나19 예방수칙 1번이 ‘흐르는 물로 30초 이상 손 씻기’이다. 평소보다 손을 씻는 시간이 길어야 하고 더 꼼꼼하게 씻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이 더 많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물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물을 물 쓰듯이 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용서받지 못한 자 - 박노해 문맹(文盲)은동정받아 마땅하고 컴맹(Com盲)은도움받아 마땅하나 환맹(環盲)은지탄받아 마땅합니다 인간의 미래를 파괴하는 자아이들의 미래를 훔쳐다 쓰는 자오늘을 풍요롭고 편리하게 살기 위해자신의 발밑을 허무는 자는 결코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박새로이의 대사처럼 속에서 천불이 끓어오른다. 통과의례처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를 겪어 왔는데 그때 나는, 그리고 우리는 바이러스에 맞서 무엇을 했는지, 그 난리를 어떻게 이겨내고 일상으로 돌아왔는지, 코로나19를 온몸으로 버티어내는 지금에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때에도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섰었는지 마스크가 없다고 낫을 휘두르는 사람이 있었는지도 까맣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폐쇄적이고 이기적인 한 사이비 교회와 교인들 때문에 온 나라가 시름을
Music 세대를 초월한 역설적 감성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나 그 시간과 장소를 지배한 음악 장르가 있었게 마련이다. 국내로 치자면 60년대 트위스트와 록, 70년대 포크, 80년대 발라드와 댄스, 90년대엔 랩댄스와 인디음악, 그리고 2000년대와 2010년대에 걸쳐선 아이돌과 힙합이 있었다.음악 장르는 때로 개인의 영역으로 치닫기도 하는데 글쓴이의 경우 2000년대 초중반 전혀 다른 장르 둘에 귀를 맡겼던 기억이 난다. 하나는 콘(Korn)과 슬립낫(Slipknot), 시스템 오브 어 다운(System Of A Down)으로
혐오의 사전적 의미는 싫어하고 미워함을 뜻하며, 가끔 어떤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차별하고 배제할 때 쓰인다. 그렇다보니 혐오의 전제는 혐오표현에 담길 약자의 존재이다. 지난 23일 오전, 권영진 대구 시장이 브리핑룸에서 코로나19와 관련해 발표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이날 브리핑은 언론과 SNS상에 떠도는 혐오표현인 ‘대구 폐렴’과 ‘대구 코로나’, ‘대구 방문 후’, ‘대구 여행 후’와 같은 말이 가뜩이나 힘들고 어려워하는 대구시민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함께 아파하고 위로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