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2일은 ‘세계 물의 날’이다

[필자 주] 코로나19 예방수칙 1번이 ‘흐르는 물로 30초 이상 손 씻기’이다. 평소보다 손을 씻는 시간이 길어야 하고 더 꼼꼼하게 씻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이 더 많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물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물을 물 쓰듯이 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용서받지 못한 자 - 박노해

 

문맹(文盲)은

동정받아 마땅하고

 

컴맹(Com盲)은

도움받아 마땅하나

 

환맹(環盲)은

지탄받아 마땅합니다

 

인간의 미래를 파괴하는 자

아이들의 미래를 훔쳐다 쓰는 자

오늘을 풍요롭고 편리하게 살기 위해

자신의 발밑을 허무는 자는 결코 용서받지 못합니다

- <사람만이 희망이다>(해냄출판사, 1997년) 140쪽 -

 

▲ 이영균 녹색당원

‘환맹’이라는 말을 이 시에서 처음 보았다. 환경 문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 환경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이리라. 어쩌면 환경 문제에 대해 애써 외면하는 사람을 이렇게 불러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한무영 지음, 그물코 2009)라는 책에서 ‘물맹’이라는 말도 보게 됐다. ‘이제는 물맹을 퇴치할 때’라는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여러분은 위에 제목을 보고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을 것입니다. 저것, 혹시 ‘문맹(文盲)’을 잘못 쓴 거 아냐? ‘오타로군’이라고 생각하며 빨간 펜을 들어 ‘물’을 ‘문’으로 고친, 성격이 꼼꼼한 독자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타, 아닙니다. ‘물맹’ 맞습니다. 글을 모르는 것을 문맹이라고 하지요. 그렇다면 물맹은 무엇일까요? …… 물에 대해 모르는 상태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문맹이 더 심각한 문제일까요, 물맹이 더 위험한 문제일까요.”(15쪽)

문맹도 당연히 퇴치해야 하지만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물맹 퇴치 또한 한시도 미룰 수 없다. 어쩌면 환맹 가운데서도 물맹을 가장 먼저 퇴치해야 하는 게 아닐까?

책은 ‘1장 빗물, 왜 가장 안전한가, 2장 빗물, 왜 관리해야 하는가, 3장 빗물, 어디에 쓸 것인가, 4장 빗물, 어떻게 쓸 것인가’ 이 네 가지 물음에 대한 답으로 엮었다. 내용을 아주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빗물은 태어날 때부터 착한데 물맹으로 하여 그 가치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 산성비 때문에 대머리가 된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생수만 찾고, 생수는 여왕 자리에 가 있다. 대기오염과 수질오염은 같지 않고, 빗물에는 오염원이 없다.

그런 빗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니 가뭄과 홍수가 되풀이된다. 빗물 관리가 제대로 안 되면 가뭄과 홍수만이 아니라 하천 오염도 피할 수 없다. 대한민국을 물 부족 국가로 분류하고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물 관리(능력) 부족 국가라고 하는 게 맞는 말이다.

비 오는 소리는 돈 내리는 소리다. 그만큼 빗물이 소중하다. 돼지저금통도 필요하지만 빗물저금통이 먼저다. 빗물을 위에다 모으면 흑자를 볼 수 있지만 아래로 모으면(흘려보내면) 적자를 면할 수 없다. ‘오목 마인드’로 물을 모아서 쓰면 물 부족은 끝난다.

부록에 있는 2007년 세계 물의 날(3월 22일)을 맞아 SBS에서 특집 다큐멘터리(연출 황성연, 구성 정선영)로 방영되었던 빗물 이용 사례 가운데 두 가지만 옮겨본다.

인도네시아 반다아체 여러 집들에는 빗물 시설을 설치해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데, 빗물탱크가 있는 집에서는 빗물로 씻고 빨래를 하고 직접 마시기까지 하는데 이로 인한 문제는 전혀 없단다. 오히려 오염된 물 때문에 걸렸던 피부병이 나았다고 하니 빗물의 효용을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직까지 빗물로 생활하는 오지마을이나 섬마을이 있는데, 진도에서 뱃길로 20여 분 가량 들어가는 구지도라는 섬마을에서는 빗물을 받아 목욕, 빨래, 청소는 물론 먹는 물로 이용하고 있는 걸 영상으로 보여 준다. 도시에서도 빗물을 이용하는 집들이 많은데, 빗물로 빨래를 하면 수돗물로 빤 것보다 더 깨끗하게 된다. 빗물과 수돗물을 각각 받아 머리를 감아 보니, 빗물로 감은 머리가 훨씬 윤이 나더란다.

여기서 생각할 수 있는 의문이 하나 있다. 왜 빗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사실과 다른가 하는 점이다. 지은이는 빗물은 증류수라고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전혀 그렇지 여기지 않는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그 까닭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지은이는 ‘물과 관련된 이익집단의 논리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동의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자본이 ‘진실’을 만들어내는 자본주의 세상이다.

대한민국 좁은 땅덩어리는 산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빗물은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린다. 게다가 사람이 살고있는 지대는 날로 도시화하고 있는데, 도시는 흙을 밟을 수 없는 공간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빗물은 흙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물길을 찾아 모여 든다. 국지성 호우가 아니라도 쉽게 넘친다. 지난날 농사를 짓던, 아주 작은 수많은 저수지 천수답은 버려진 지 오래다. 그래서 지은이는 여러 가지를 권하는데, 그 가운데는 이런 것도 있다. 집 안에 자그마한 동산이나 흙이 드러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약 5도 정도 경사를 두어서 빗물이 곧장 흘러내리지 못하게 하잔다. 그러면 홍수도 줄일 수 있고 지하수도 보충할 수 있다. 집집마다 양동이 하나씩이라도 빗물로 채웠다가 필요할 때 쓰자는 제안도 그럴듯하다. 빗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사람은 물 없이 살 수 없고, 모든 물은 빗물에서 시작한다는 점을 깊이 새겼으면 좋겠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하늘에서 내리는 비 없이는 인간이 필요로 하는 물을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물맹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시인이 바라는 대로 지탄받지 않아도 되고 용서받을 수 있다.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고 했다. 흘러가버리기 전에 빗물을 최대한으로 모으고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녹색상상’의 날개를 펼쳐보기를 바라면서, 다시 되뇌어 본다. ‘대한민국은 물 부족 국가가 아니다. 물 관리를 잘못하고 있는 국가일 뿐이다.’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