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올해만큼 실감나는 해가 있었을까? 해마다 봄이 되면 이 다섯 글자를 들먹이고는 했다. 꽃샘추위를 맞으면서, 황사나 미세먼지가 지독할 때도 썼다. 그러나 잠깐 그러다가 곧 지나갔다. 그런데 올해는 아니다. 꽃이 피어도 고운 줄 모르겠고, 날씨는 포근해도 거리는 싸늘하기만 하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게 아니라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봄꽃 축제를 열고 관광객을 한 사람이라도 더 맞이하려고 애를 쓰던 지자체들인데, 제 발로 오는 관광객을 막기 위해 안절부절못한다. 드넓은 유채꽃밭을 갈아엎는 것도 보았다. 이 사태가 지나가고 나면 더 친절하게 모시겠다는 약속만 남았다. 침묵의 봄, 침묵하는 봄, 침묵해야 하는 봄을 보내고 있다.

▲ 이영균 녹색당원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라는 중국 속담이 있다고 한다. ‘땅에서 (마음 놓고) 걸어 다니는 것’은 일상인데, 그 일상이 곧 기적이라는 말이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마음 놓고 걸어 다니는 일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그리고 일상이 곧 행복이라는 걸 실감하는 나날들이다. 학교가 문을 걸어 닫고 있다. 학생들이 학교에 가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듣는다. 학생들에게 일상은 학교에 가서 수업을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다. 그 일상에서 멀어졌으니 주위에 있는 이들까지 아주 힘들어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에 우리는 아주 평범한 일상을 살았고,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이 곧 행복이었다. 지나치게 단순한 셈법인지는 몰라도 그렇다.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전 세계는 총소리 없는 전쟁터이다. 이 비상한 사태를 함께 넘어서기 위한 방편 가운데 하나로 사람들은 기본소득을 불러냈다.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줄어드는 일자리 때문에 피해갈 수 없다. 생산설비가 자동화되고 인공지능까지 등장한 현실에서 일자리가 줄어들고, 그로 인해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을 개인의 문제로 넘겨버려서는 안 된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코로나19는 일자리 문제가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수입이 적고 일자리가 불안정한 사람들부터 일자리를 잃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일용직, 시간제 ‘알바생’들이 그들이다. 공연 예술인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드러나지 않으면서 일자리를 잃은 이들도 수없이 많을 터이다. 구조조정이라는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식은땀을 흘려야 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가게 문을 열어놓았지만 찾는 이가 없고, 길거리에 늘어선 택시에서는 기사들이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에 거리는 얼어붙고, 전통시장 어귀는 썰렁하다는 표현을 넘어서고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불평등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지본주의의 근본적이면서 고질적인 문제로 부익부빈익빈을 꼽는다. 양극화가 점점 심해진다는 말이다. 해결책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기본소득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새롭게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기본소득에 대해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한 대목을 옮겨본다.

“현실의 삶에서 얻게 되는 여러 기회들은 저마다 타고난 역량과 성향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무수히 많은 우연적인 상황들과 복잡하고도 예측불가능하게 얽히면서 생겨나는 것들이다. 초등학교 때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든가, 직장에 들어가서 엄청 뛰어난 상사를 만났다든가, 운이 좋은 세대에 속했다든가, 세계적으로 수요가 높은 언어가 모국어라든가, 적시에 적절한 일자리가 났다는 정보를 운 좋게 얻었다든가 하는 상황 말이다. 이런 배경에 맞서서, 우리는 이런저런 다양한 일자리와 여러 사정의 기회들이 대단히 불평등한 선물들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만 한다. 일자리와 시장 기회들이 수많은 요인들이 복잡하고도 알 수 없는 조합으로 결합되면서 사람들에게 아주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양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는 것이 정의의 관점이다. 따라서 기부와 유증(遺贈)이라는 지극히 협소한 형태에 국한될 것이 아니라 이러한 선물들 전체를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하자는 것이다.”(<21세기 기본소득>, 원제 : Basic Income. 필리프 판 파레이스·야니크 판데르보흐트 지음, 홍기빈 옮김. 흐름출판, 2018. 256-257쪽)

이 글은 우연이면서 복잡한 조합들은 불평등을 초래할 수밖에 없고, 불평등을 가중시킬 수도 있으니 공평한 분배를 위해서는 기본소득을 시행하는 것이 ‘정의의 관점’이라고 말하고 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아지고 있으니 기본소득에 대한 인식을 달리해야 할 시점이다.

어떤 정책이든 그 시행에 따른 순기능과 역기능은 있게 마련이다. 당연히 찬반 여론이 대립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거듭 생각하게 된 것은 코로나19 사태를 통해서 확인한, 사회경제 구조가 지닌 취약함 때문이다. 지금까지 시행해오고 있는 복지 정책만으로는 그 한계가 있음을 분명하게 겪었다고 본다. 기본소득은 최소한의 생존기반이다.

진화하는 코로나바이러스는 19가 아니라 20, 30으로 인류를 괴롭힐지 모른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지만. 그에 대한 의학적 대비가 철저하기를 바라지만 바이러스보다 백신이 먼저 나올 수 없기에 한계 또한 분명하다. 우리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바이러스를 상대할 수 있는 대비책을 제도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기본소득을 시행하는 것이고, 그에 따른 문제점을 보완하여 빈틈없는 제도로 정착시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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