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사전적 의미는 싫어하고 미워함을 뜻하며, 가끔 어떤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차별하고 배제할 때 쓰인다. 그렇다보니 혐오의 전제는 혐오표현에 담길 약자의 존재이다. 

지난 23일 오전, 권영진 대구 시장이 브리핑룸에서 코로나19와 관련해 발표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이날 브리핑은 언론과 SNS상에 떠도는 혐오표현인 ‘대구 폐렴’과 ‘대구 코로나’, ‘대구 방문 후’, ‘대구 여행 후’와 같은 말이 가뜩이나 힘들고 어려워하는 대구시민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함께 아파하고 위로해주지 못할망정 더 이상 비난하거나 조롱하지 말라고 했다.

▲ 박홍서 장애인식개선 강사

나는 홍상수 교수가 쓴 《말이 칼이 될 때》를 읽은 적 있다. 이 책을 읽고서 그동안 혐오표현에 대해 편견이 있었다는 걸 깨닫고 확실하게 인식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거기 보면 편견 조장이나 차별적 괴롭힘 같은 혐오표현이 개인보다 집단을 향할 때 끔찍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여러분은 2016년 서울 강남역에서 발생했던 여성혐오 살인사건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당시 이 사건은 거의 모든 여성들에게 공포감을 주었는데, 가해자가 “여자들에게 항상 무시당해 범행을 했다”고 말해 대한민국 여성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했었다.

그리고 2020년 지금, 매체는 대구지역 신천지교회가 대규모 집회를 열어 코로나19를 전국에 전파했다고 책임을 떠넘긴다. 그러자 신천지교회는 자신들이 비난받는 게 억울하다며 ‘감염되어도 신고하지 마라’고 신도들에게 권한 게 밝혀져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며칠 뒤 신도들은 ‘내 입 가지고 이런 말도 못 해’ 증명이라도 하듯 연락을 끊고서 잠적하는 끔찍한 증오를 표출하기도 했었다.

게다가 제주도는 21일 코로나19의 지역사회 전파 우려가 커지자 대구~제주 간 항공기 운항중단을 요청했다가 대구시민의 마음을 다치게 한 것 같다며 운항중단을 철회한다고 23일 밝혔다. 제주도가 대구시민의 이동권을 제한하겠다고 했던 것이다. 제주가 바이러스 전파로 환자 발생 시 위협적인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그리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방역을 강화한다든지 방문 자제를 요청한다고 이해를 구하는 게 먼저 아닐지.

공동체 의식은 이럴 때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살다가 위협받는 상황이 있을 경우 나와 상관없는 타인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외부로부터 안전을 느낄 때 행복하고, 또 안전할 권리를 구하는 게 본능이라지만, 모두의 인권을 위해 함께 대처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현재는 대구·경북시민이 사회적 약자고 소수자이다. 그들을 고립시키는 어떤 행위도 외면하거나 침묵해서 안 된다. 이럴수록 우리는 시민적, 윤리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 혐오표현을 하면 인권침해라고 해야지, 표현의 자유라고 말해선 안 된다. 인간의 보편적 권리이며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악의적으로 사용하면 안 된다.

말은 악용되는 것을 경계해야 하고, 상대적 차별과 억압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야 한다. 현실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표현의 자유가 자신의 권리를 보장해줄 수 있게 해야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문제되는 혐오와 증오. 그것이 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확인하게 되었다. 평소 아무 생각 없이 “내가 감염되기 싫어 내가 사는 곳에 대구시민이 안 왔으면 했는데 왜 혐오가 되지?” 했었다. 왜 이런 말을 하게 된 걸까? 그건 상대가 나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열등한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행동이 되어 혐오표현이 된 것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다. 말은 내 생각과 마음을 전달하는 수단이다. 그런데 말을 많이 하기보다, 상대가 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해할 때 내 생각과 마음이 가장 잘 전달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서로 연대하고, 공감을 통해 상대를 이해할 때 삶은 지속될 수 있다. 지금처럼 질병관리본부에서 일하는 공무원을 응원하고,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진을 응원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대구·경북시민을 뜨겁게 응원하면, 이들 온정으로 코로나19는 사멸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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