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익 칼럼] 이전투구판으로 전락한 비례대표 위성정당

비례위성정당은 정치불신과 혐오를 부를 것이 명약관화하다. 최용익 전 MBC논설위원l승인2020.03.25l수정2020.03.26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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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점입가경이요, 갈수록 태산이다. 무법‧탈법‧불법의 종합판이며, 체면이고 원칙이고 내팽개친 지 오래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자한당)에서 이름을 바꾼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이 준연동형비례대표 정당을 두고 벌이는 진흙탕싸움이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통합당의 전신인 자한당이 미래한국당(한국당)이라는 비례대표 정당을 만들 때만 해도 사태가 이 정도로까지 발전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한선교 대표가 독자적으로 비례대표후보를 공천하고 통합당의 통제권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감지되자 황교안 통합당 대표는 곧장 칼을 빼들었다. 한선교를 경질하고 의원 4명을 추가로 이적시켜 원유철 대표 체제의 한국당 지도부를 새로 구성했다. 새 지도부는 즉각 공병호 공천관리위원장을 갈아치웠고, 비례대표 공천 명단을 다시 마련키로 했다. 한선교 체제가 한국당 비례 후보를 통합당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은 탓이다. 이 과정에서 한선교는 “황교안 대표가 박진과 박형준 전 의원의 비례대표 공천을 요구했다”고 폭로했다. 공병호도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거들었다. 박진은 황교안이 출마한 서울 종로에서 3선 의원을 했던 경력이 있다. 그 조직을 원활하게 넘겨받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한선교의 폭로가 사실이라면 사천, 월권 논란은 불가피하다. 공병호에게 전권을 주고 형식적이나마 독립성과 민주적 절차를 지키려 했던 한선교는 결국 타의에 의해 물러났고, 통합당은 간판만 2개를 내걸고 두 정당을 공동으로 운영하면서 공천권을 행사한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개하게 된 것이다.

▲ 최용익 전 MBC논설위원

비례대표 순번이 전면 재조정되는 난장판을 거친 뒤에야 사태는 잠잠해지는 듯하다. 예를 들어 당선권 밖으로 밀렸던 윤봉길 의사의 장손녀 윤주경 전 독립기념관장이 1번으로 전진배치된 것이 대표적이다. 통합당의 정체성-“친일을 미화하는 역사교과서를 만들려고 했던 정당”이라는 김원웅 광복회장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돈 몇 푼을 쥐어주는 식으로 위안부 문제를 ‘불가역적으로’ 해결하려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의 집권여당이었다-에 비추어 볼 때, 윤주경이 하필이면 왜 한국당에 입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민주당은 처음에는 통합당의 비례정당 창당을 “위성정당이나 심지어 위장정당, 하청정당”으로 부르며 짐짓 무시, 외면하는 듯 했지만 의석수 계산에 매몰된 열성 권리당원들은 비례정당 창당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 그 과정에서 역사가 오랜 시민단체를 기반으로 한 정당 대신, 생긴 지 얼마 안 됐거나 급조된 정당들을 들러리 세웠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민주당의 위성정당이 된 더불어시민당도 곧 공천 작업에 들어갔을 뿐 아니라, 민주당 인사들이 후보 검증팀을 돕고 있으며 민주당 검증시스템도 빌려 쓴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원청정당인 민주당의 공천 작업 개입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제 민주당과 통합당은 비례정당 투표에서 앞 번호를 차지하기 위한 ‘의원 꿔주기’ 경쟁을 한창 벌이고 있다. ‘꼼수’ 창당 논란으로 시작된 비례정당 문제가 ‘현역 의원 위장전입’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의원 꿔주기’를 둘러싼 고발 조치도 이어지고 있지만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꼼수와 불법이 난무하는 양대 정당의 무한경쟁은 후보등록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정당들이 이렇게까지 법을 제 멋대로 난도질하며 정당정치의 원칙을 뒤흔든 적이 있는가. 두 거대 정당은 ‘정당의 목적과 조직,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규정한 헌법과, ‘정당은 자발적 조직’이라는 정당법, ‘비례대표 후보는 민주적 심사와 투표 절차로 결정한다’는 공직선거법 규정을 모조리 짓밟고 있다. ‘당 대표나 최고위원회의의 비례대표 전략공천’을 위법이라고 한 선관위 유권해석과도 정면으로 어긋난다.

문제는 선거관리위원회가 이런 탈법적 상황에 속수무책이라는 것이다. 통합당 대표 황교안이 박진과 박형준을 한국당 비례 대표후보로 공천해 달라고 전 대표 한선교에게 요구했다면 선거법 위반 소지가 크다. 선관위는 선거법상 정당의 후보 공천은 당헌ㆍ당규 등 민주적 절차를 따라야 하며, 다른 정당 후보의 선거운동은 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애초에 선관위가 위성정당 등록을 단호하게 불허했다면 이런 혼돈은 없었을 것이다.

사표 방지와 표의 등가성, 여론 다양성 확보를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제안한지 5년이 넘었다. 2015년 2월에 중앙선관위가 한국의 선거제도를 선진국처럼, 유권자들의 투표결과가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는 방식으로 바꾸자는 취지로 지역구와 비례 의석을 2:1로 맞추고 전국 6개 권역을 나눈 상황에서 그것을 연동형으로 하는 방안을 내놨다. ‘촛불혁명’ 이후 선거제도 개혁 목소리가 커지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민주당은 소극적이었지만,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이 줄기차게 주장하거나 공약해온 것이었다.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민주당은 야4당과 협조체제를 일구어, 공직자범죄수사처법과 연계해 선거법 개정에 나섰고, 작년 말 본회의 의결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거대 정당이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협치를 만드는 역사적 결단을 하겠다”는 최초 약속을 깬 민주당의 배신과 변심 때문에 내용이 크게 후퇴하고 말았다. 특히 정당대표들이 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 합의차 대통령의 특별 수행원으로 방북했을 때 민주당 대표 이해찬은 “우리 사회의 보수편향으로 기울어진 정치지형을 바로잡기 위해서 집권여당이 좀 손해를 보더라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합의할 수 있다”고 약속했으나 이후 갑자기 태도를 돌변한다. 민주당이 지역구에서만도 충분히 많은 수의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 있는데 굳이 군소정당에 도움이 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받아들임으로써, 의석수를 감소시킬 필요가 없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애초 지역구를 줄이고 비례대표를 늘여 50% 연동률을 적용하기로 했지만, 비례대표를 1석도 늘리지 못했을 뿐 아니라 50% 연동률도 30석까지만 적용되는 등 선거제 개혁은 무늬만 그럴 듯한 것으로 축소, 변질되고 말았다. 더욱이 막상 선거가 다가오자 그마저도 왜곡되기 시작했다. 자유한국당의 위성정당 창당이 구체화하면서 민주당의 비례의석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자 “비례 정당을 만들지 않겠다”는 말도 뒤집었다. “소수정당의 원내진출을 돕겠다”며 민주화운동의 원로들이 주도한 ‘정치개혁연합’과 논의하다가 친문 팬덤세력 중심의 플랫폼 정당인 ‘시민을 위하여’로 협상 파트너를 바꿔 버렸다. 이로써 4월 총선은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의 비례대표 의석 나눠먹기 싸움으로 변질된 것이다.

민주당 일부에서는 통합당의 비례정당 창당이라는 꼼수를 극복하지 못할 경우 문재인 대통령이 탄핵위기에 몰릴 수 있다고 거짓주장을 앞세우기도 했다. 친문세력을 단결시키기 위해 내세우는 과잉선동이 아닐 수 없다. 비례대표 의석 몇 석이 모자란다고 해서 200석 이상이 필요한 탄핵위기에 몰릴 수 있다는 주장은 가능성이 전혀 없는 대국민 협박일 뿐이다. ‘촛불혁명’ 정도의 광범위한 국민여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오히려 역풍을 맞기에 십상인 것이 탄핵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보수 야당이 탄핵을 추진했다가 거센 역풍을 맞은 사실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결국 모든 문제는 민주당이 처음에 야 4당과의 약속을 깨고 근거없는 탄핵의 두려움을 내세워,(혹은 있지도 않은 탄핵 가능성을 과장하면서 전체 판을 읽지 못하고 단 1석이라도 의석수를 늘리려는 의도로) 비례정당을 만든 데서 출발한다. 민주당의 위성정당 활용을 통한 비례의석 확보 전략은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을 가능성이 높다. 통합당에 비해 민주당이 가지는 비교우위는 민주주의를 중시한다는 것인데 위성정당을 만들면 군소정당의 처지야 어떻게 되든 통합당과 똑같이 거대정당끼리 ‘나눠먹겠다’는 의도 아닌가. 비례대표 몇 석 더 얻으려다가 지역구 의석을 더 많이 잃어 전체적으로 손해를 볼 가능성도 작지 않다.

민주당이 갈 길은 자신만의 의석을 늘리는 꼼수가 아니라 범진보개혁 세력의 의석을 늘리는 당당한 선택이어야 하며, 정의당과 녹색당, 청년당 등 한국사회 소수자들과 약자들을 대변하는 진보개혁정당의 의석이 늘어나는 것은 다양성과 비례성을 강조하는 선택으로 기꺼이 환영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물 건너간 일’이긴 하지만 위성정당을 통해 비례대표 후보 내는 것을 포기하고 지역구 선거에만 전력투구했을 경우 중도층의 표심을 얻는 동시에, 진보개혁정당 지지자의 표도 모을 수 있었다. 민주당의 소탐대실이 부를 후과가 우려된다.

거대 양당이 추구하고 있는 비례위성정당의 설립과 운용은 유권자들로 하여금 감동과 지지를 이끌어내는 대신, 정치불신과 혐오를 부를 것이 명약관화하다. 특히 지난 해 초부터 계속해 왔던 정의당 등 야4당과의 약속 파기와 시민사회단체 원로들로 구성된 정개련과의 결별은 민주당에 득보다 실이 클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하승수 정개련 집행위원장의 폭로로 드러난 민주당 내부의 실세 논란(“잠재적 대선후보인 이낙연보다 민주연구원장 양정철이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과 ‘시민을 위하여’의 비례정당 담첨은 “친문‧조국수호세력의 시민사회 원로그룹에 대한 승리”라는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민주당 내의 비민주적인 소통구조와 역학관계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국민이 생선가게를 안심하고 맡길 고양이를 뽑는 것은 가능할까. 문제는 고양이를 뽑는 제도도 고양이들이 만들기 때문에 정작 생선가게 주인은 소외되기 쉽다는 것이다. 거대정당이 되면 될수록 정치개혁 과제에 소극적이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모든 개혁은 기득권을 없애는 방향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놓치고 있는 것은, 개혁에 대한 소극성과 기득권에 연연한 태도는 국민의 지지율 하락을 가속화시킬 것이며 끝내는 여론의 심판을 자초할 것이라는 점이다. 오만하면 민심은 떠나게 돼있다.


최용익 전 MBC논설위원  choihan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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