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에 개봉돼 세상에 파문을 일으킨 <무언의 목격자>란 영화가 있다. 당시 대학 4년생이던 나는 지역에서 가장 시설이 좋았던 진주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는데, 이후 며칠간 악몽에 시달릴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영화는 말을 못하는 주인공이 우연히 촬영을 끝낸 세트장에서 비밀스럽게 영화를 만드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위험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룬 스릴러물이다.

그들이 비밀리에 만드는 영상물은 다름 아닌 ‘스너프 필름’이었다. 처음엔 실제 섹스 장면을 찍는 포르노 영상물인줄 알지만 촬영 도중 갑자기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흉기로 찔러 죽인다. 모든 장면은 고스란히 카메라로 촬영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스너프 필름’은 익명의 구매자들에게 고가로 팔리는데, 그 과정에 러시아 마피아가 개입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 서성룡 편집장

영화는 연출을 가장해 실제로 강간과 살인을 저지르며 필름을 만드는 제작자들을 극악무도한 악인들로 그리지만, 그러한 필름을 유통시키는 마피아와 거금을 들여 필름을 구매하고 소비하는 익명의 부자들이 실질적인 악마임을 고발한다.

당시 이 영화는 불법적으로 제작되는 스너프필름이 실제로 존재하고 은밀히 유통된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면서 충격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초고속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손가락 몇 번 움직이는 것으로 ‘스너프 필름’의 구매자가 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25년 전 나는 그런 악몽같은 영상을 즐기는 익명의 구매자들이 어떤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을 손에 쥔 우리 모두가 너무나 쉽게 그 얼굴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안다.

지금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텔레그램 ‘n’번 방에 공유된 영상들은 살인만 저지르지 않았을 뿐, 여성들의 인격을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하는 장면을 찍은 스너프 필름들이다.

비밀 대화방을 운영한 25세 조주빈에게 살인죄에 준하는 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데는 모두 공감하면서도, 그 영상물을 ‘감상하고’, 공유한 이용자들에 대해서는 실명 공개와 처벌 수준을 놓고 말들이 많은 모양이다.

하지만 모든 스너프 필름이 만들어지는 배경에는 그것을 소비하는 익명의 구매자들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제작자보다 오히려 그들이 더 실질적이고 추악한 범죄자들이다. 그들이 돈을 주고 살인을 사주하는 ‘청부 살인자’와 다를 게 무언가. ‘n’번 방의 실제 범인은 조주빈 1인이 아니라 그에게 돈을 주며 촬영을 유도한 26만명의 구매자들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인신구속과 신상공개)만큼이나, 아니 그 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피해자들의 익명성을 보장하고 2차 가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의 함정에 걸려드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성폭력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가해자들은 하나같이 피해자들의 사진을 부모나 지인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해 피해자들을 함정에 빠트렸다.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와 피해자 책임론을 거론하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풍토가 협박의 배경이 된 셈이다.

정리하자면, 영상 제작자와 구매자들에 대한 처벌과 신상공개, 피해자 책임론을 거론하거나 영상을 유포해 2차 가해를 가하는 자들에 대한 추가 처벌, 피해자들의 익명성 보장과 심리치료가 동종 사건을 예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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