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며칠 전부터 들떠있었다. 아내가 제일 존경하는 스승께서 우리 집에 온다는 소식을 받은 뒤로 이것저것 챙기느라 잠자리에서도 뒤척거렸다. “우리 집 많이 불편한데 가까이에 있는 좋은 방 한 칸 잡아드리지.” “뭐 하룻밤인데. 우리 집에서 지내고 싶으신가봐.” “연세도 많은데 에어컨 빵빵하고 실내에 화장실 있는 방에 모셔야지.” “보름에게 양해 구하고 카페방을 내 드리려고.” 카페에 딸린 황토방이 한 칸 있는데 아내는 그 방을 쓰려는 생각이었다. 거긴 에어컨도 있고 화장실도 실내에 있으니 쓰기엔 편할 거였다.아내는 궁중음식연구원을
이 칠 장이 서는 함양으로 나들이를 떠났다. 휴가철, 비 예보가 있었지만 참여자가 열 명이 넘었다. 비오는 날 마실은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거기다 날이 뜨거운 때니 비가 오면 오히려 다니기에 수월하다. 함양 읍장 구경을 하고 상림을 들렀다가 지리산 오도재를 들를 것이다. 비오는 날의 상림공원을 기대한다.읍장답게 규모 있게 장이 섰다. 때를 맞아 나온 물외, 고구마줄기, 콩잎, 여주, 다슬기 등이 눈을 즐겁게 하고 이야기거리를 만들어내었다. “아, 나 콩잎김치 진짜 좋아하는데.. 우리 엄마가 해주셨는데..” “저 다슬기 보래, 푹
태풍 다나스로 인해 지리산 초록걸음을 시작한 지 8년 만에 처음으로 일정을 일주일 연기해 길을 나섰다. 하지만 이번엔 장맛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비 내리는 지리산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길동무들은 기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안상학 시인의 ‘장마’라는 시를 가슴에 품고서...세상 살기 힘든 날 / 비조차 사람 마음 긁는 날 / 강가에 나가 / 강물 위에 내리는 빗방울 보면 / 저렇게 살아 갈 수 없을까 / 저렇게 살다 갈 수 없을까 / 이 땅에 젖어들지 않고 / 젖어들어 음습한 삶내에 찌들지 않고 / 흔
날이 밝자마자 서둘러 뒷마당 창고로 갔다. 다행이 그 닭은 살아있었다. 걸음마다 풀썩풀썩 주저앉긴 하지만 두 눈은 뜨고 있었고, 날갯죽지에 힘이 들어있었다. 나는 닭을 가만히 안아 닭장에 넣어주었다.닭장을 살펴보고 마당으로 나오니 바깥 탁자 아래 닭 세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간밤에 몰아친 비바람으로 온 몸이 흠뻑 젖은 상태였다. 한 마리 한 마리 잡아 닭장에 넣어주었다. 암탉 일곱 마리에 수탉 한 마리, 암탉 한 마리가 모자랐다.비바람이 몰아친 지난밤이었다. 무심코 밖으로 나왔는데 뒷마당에서 닭들이 꼬꼬거렸다. 푸득이는 날
비 맞은 듯 땀 흘리는 요즘. 뜨거운 햇볕에 몸과 마음은 지쳐간다. 지친 마음에 쉼표 하나 그릴 수 있는 곳이 진주 금산면 금호지(일명 금산 못)다. 어디에서 서도 금호지의 넉넉한 품은 아늑하다. 금호지는 넓어 쉽사리 전체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금호지는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신라 때 형성된 자연 못이라고 전해오는데 현재 전제 면적 20만 4937㎡, 평균 수심 5.5m이다. 전설에는 워낙 깊어 명주실 구리 3개가 들어갔다고 한다. 금호지 근처 커피숍에 차를 세우고 주위의 풍광을 두 눈 가득 꾹꾹 눌러 담았
뉴스에서 자사고 재지정 평가 탈락에 관한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들이 물었다. “엄마, 자사고가 뭐에요?” 나는 당황스러웠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도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렴풋이 공부 잘 하는 애들이 가는 학교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근데 왜 평가를 해요?” “음, 그게 있잖아, 그러니까..” 헤매고 있을 때 아들이 또 물었다. “진주에도 자사고가 있어요?” “어? 진주에? 과학고 있지 않아?” “그건 특목고 아니에요?” 아, 그렇구나. 특목고는 자사고랑 다르지. 나는 서둘러 리모컨을 돌리는 것으로
서하의 말이 늘어간다. 엊그제만 해도 더듬더듬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듣기 어려웠는데 하루하루 달라진다. “말도 안 된다. 흥!”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뒤 저녁밥상머리에서 이런저런 대화 끝에 서하가 불쑥 뱉은 말이다. 식구들이 빵 터졌다. 아내는 배를 잡고 뒹굴고 나도 입안 가득한 밥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보름이와 휘근이도 자지러졌다. 특히 ‘흥!’이라는 말을 하면서 보인 서하의 표정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어린이집에서 배워온 듯하다. 서하는 그렇게 무럭무럭 자란다.얼마 전 보름이와 휘근이 결혼기념일이었다. 벌써 여섯 해가 흘렀다. 예
어른 손바닥만 한 발자국을 남기고 산돼지가 처음으로 고구마밭을 다녀간 날 아침 밥상머리에서 나눈 우리 가족들 대화는 이랬다. “큰일이네. 아직 뿌리도 안 달렸는데 벌써 산돼지가 다녀갔네.” “어디로 들어왔는데.” “호두나무가 있는 그 개울 쪽인 거 같아. 축대도 제법 높고 비탈이 심한데도 그리 올라온 것 같아.”“그러게 미리미리 그물망을 치라고 했잖아요.” “그물망을 치면 안 와요?” “그물망이 무슨 도움이 되겠어? 그냥 해보는 거겠지.” “그렇다고 두 손 놓고 그냥 있을 수만은 없는 거잖아.” “얼마나 파 헤집었는데?” “이쪽 거
6월의 지리산 초록걸음은 말 그대로 외도(外道)를 했다. 지리산을 벗어나 함양의 화림동 계곡 선비문화탐방로를 걸었기 때문이다. 선비길로 불리는 이 길은 함양군 서하면 거연정에서 시작해 농월정 거쳐 안의면 광풍루까지 총 연장 10.6Km로 금천을 따라 화림동 계곡을 지나게 된다. 화림동 계곡은 남강의 발원지인 참샘이 있는 남덕유산(1508m)에서 시작해 서상·서하면으로 흘러내리면서 이룬 하천으로 24㎞가 넘는다. 이 계곡은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절경의 정자가 많아 우리나라 정자 문화의 보고로 꼽힌다. 이번 초록걸음에는 진주의 연극인 3
중간고사와 함께 봄이 가고 기말고사와 함께 여름이 왔다. 지금은 기말고사 기간. 아들은 스마트폰을 자진 반납했다. 시험이 끝날 때까지 스마트폰을 보지 않겠다는 갸륵한 마음에 나는 살짝 감동을 먹었다. 솔직히 나도 중독자였기 때문. ‘폰 좀 그만 보라’고 입만 열면 잔소리를 하면서도 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시시각각 올라오는 뉴스기사, 동영상들을 일일이 검색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면서도. 그렇지 않으면 거대한 어떤 시류에 뒤처질 것만 같은 압박감을 안고 산다.때문에 아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내밀었을 때, 나 역시 거사를 앞둔
“산을 보고 물을 보고 옛사람을 생각하고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를 생각하자(간산간수 간인간세‧看山看水 看人看世)”라고 6월 21일, 진주를 떠나 함양 안의면으로 향해가는 관광버스 안에서 진주문화원 강동욱 향토사연구실장은 말문을 열었다. 진주시립 서부도서관 주최로 열린 ‘길 위의 인문학 – 진주지역 항일 의병 활동’ 답사가 강동욱 향토사연구실장을 길라잡이로 삼아 함양 노응규 의병장 생가와 남계서원, 산청 대원사 계곡 등으로 다녀왔다. ‘간산간수 간인간세(看山看水 看人看世)’는 지리산을 12번이나 올랐던 조선 중기
감자와 양파 주문이 전과 같지 않다. 그래도 내가 가꾼 감자와 양파는 우리 먹을 것만 남기고 다 팔리곤 했는데 올해는 주문량이 한참 못 미친다. 감자도 풍작이고 양파 값도 폭락했다는 뉴스 때문인가 보다. 팔리고 남는 것은 저온창고에 보관해야겠다며 아내는 저온창고에 양파 쌓을 자리 마련하느라 바쁘다.양파를 갈아엎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캐는 인건비조차 맞추기 어렵다고 한다. 양파상인이 함양군에 들어와 20kg들이 한 망을 오천오백 원에 흥정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는 만 원을 넘겼고, 지지난해는 만칠천 원까지 받았던 양파였다.감자 값
“나는 세상에서 장가를 참 잘 들었다싶은 사람 셋을 봤어요.” 이른 아침, 보름이가 현관을 들어서면서 아내를 바라보며 생글거렸다. “누구?” 서하 소풍간다고 달걀볶음밥과 잡채를 만드느라 부산한 아내가 무슨 소리냐는 듯 보름이를 슬쩍 쳐다본다.“둥이네와 최 시인과 아버님요. 그 중 으뜸은 단연 아버님이구요.” “내 그럴 줄 알았다.” 나를 바라보며 계면쩍게 웃는 보름이를 마주보며 나도 웃었다. 살아오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보며 대개 그런 생각을 했을 거였다. 내가 워낙 무뚝뚝하거니와 분위기 파악을 못해 생뚱한 말을 하기 일쑤이니
p.p1 {margin: 0.0px 0.0px 0.0px 0.0px; text-align: justify; font: 10.0px Helvetica}사람들은 묻는다. 클래식 음악을 듣고 싶은데 어떤 음악부터 어떻게 들어야 하냐고. 내 생각은 이렇다. 책 읽으며 정말 공부까지 해 가며 듣는 것도 좋지만 사실 그렇게 듣는다면 음악의 좋은 부분을 놓치기도 하고 쉽게 지치고 만다.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으면서도 돈 안드는 방법은 라디오를 열심히 듣는 것이다. 심지어 가끔씩 선곡한 음악에 관한 재미난 이야기뿐 아니라 여러 사연들까지 들려준다.
진주는 아름답다. 아름다운 진주(晉州) 속 진주(眞珠)를 찾아가는 가 진주문화연구소 주최로 6월 8일 열렸다. 진주문화사랑모임에서 1999년 선정한 진주 팔경은 제1경 진주성 촉석루를 비롯해 남강 의암, 뒤벼리, 새벼리, 망진산 봉수대, 비봉산의 봄, 월아산 해돋이, 진양호 노을이다. 이날 『진주 팔경(지식산업사 출판사)』 저자이자 시인인 강희근 경상대학교 명예교수를 길라잡이로 삼아 진주 팔경 중에서 비봉산과 새벼리를 제외한 6곳을 둘러보았다. 12경이나 10경이 아니라 8경을
시천면은 지리산 천왕봉이 위치한 지역이다. 중산리, 내대계곡이 있으며 남명 조식 선생이 말년에 제자들을 길렀던 곳이기도 하다. 사리에는 조식 선생의 산천재가 있고 외공리는 1951년 2~3월 무렵 대규모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곳이다. 2008년과 2015년을 합쳐 700 여구의 유해를 발견하였다 한다.비가 제법 주룩거리는 일요일, 장터 마실의 목적지는 시천면 덕산장이다. 덕산장은 4, 9장이다. 비오면 나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며 취향도 변한다. 못 먹던 음식을 먹게 되는 것처럼 예전에는 말도 섞지 않던 사람이랑 친교
[편집자 주] 진주지역 청년들(진주중앙유등시장 청년기록단)이 지난해 12월부터 1월말까지 진주중앙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 작은 책자를 펴냈다. 책자 이름은 ‘시장, 추억을 쌓다’이다. 총 8편의 기록을 단디뉴스가 기사화한다. 젊은 청년들의 눈에 중앙시장은 어떻게 비춰졌을까? “우리는 파이팅하는 이미지”. 강동현 씨-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저는 푸드트럭을 하다가 청년몰에 스테이크로 지원해 들어온 로드 카우 대표 강동현입니다.- 장사 시작한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장사를 시작한 지는 트럭까지 치면 거의 2년
일요일 늦은 아침,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뒤에서 아들이 외쳤다. “손들어, 꼼짝 마!” 나는 더욱 힘주어 그릇을 빠득빠득 씻으며 설거지를 계속 했다. “에이, 재미없어” 돌아서 가는 녀석. 기다란 잠옷가운을 바바리코트처럼 걸치고 손에는 장난감 총을 겨누고 다닌다. 아까 밥 먹을 때도 저걸 입고 미역국에 소매 단을 적시더니. 기분이 좋은지 노래도 흥얼거렸다.“모 아이 모 힝~ 삥슝 띡슝~” 영웅본색 주제가였다. 책장에 꽂혀있던 영웅본색 DVD를 우연히 본 뒤로, 녀석은 주윤발의 팬이 되었다. 나도 중학생 때 보고 반했던
5월 봄 가뭄을 해소할 만큼의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에 운무 속 지리산을 만날 거라는 기대와 함께 비옷과 길동무들에게 들려줄 ‘봄비’라는 시 한 편도 챙겼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비오는 둘레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봄비 / 박라연사는 일이 너무 깜깜해,아-악 소리치고 싶을 때꽃잎 발소리처럼 빗소리 들리면쩍쩍 금이 간 마음 너무 가벼워,차라리 불지르고 싶을 때비, 내려 나 아닌 다른 것들이라도 적시면벚꽃 떨어져 이리저리 헤맬 때혼자서는 흘러갈 수 없는 가느다란 봄비그녀의 가냘픈 다리로꽃잎, 그 헤맴을 감아올리려고 애간장 태우는
초록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오월의 마지막 주말이면 진주에서는 의기 논개를 기리는 진주 논개제가 열린다. 5월 24일부터 26일까지 논개제가 열렸다. 25일 진주성 서장대 아래쪽 나불천 복개도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성으로 들어갔다. 서문을 들어서면 호국사가 정면에서 반기고 오른쪽으로는 계단이 성벽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서장대 가는 길이 나온다. 호국사 앞 아름드리나무 곁을 지나 초록이 깊어 진녹색으로 변해가는 성벽 쪽으로 걸었다. 야트막한 언덕으로 계단이 이어진 곳이 나온다.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때 순절한 충무공 김시민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