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봉의 산촌일기] 고구마 밭의 산돼지

부끄럽고 슬프다. 여느 늙은이들처럼 가슴을 욕심으로 채워가는 나. 김석봉 농부l승인2019.07.01l수정2019.07.0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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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손바닥만 한 발자국을 남기고 산돼지가 처음으로 고구마밭을 다녀간 날 아침 밥상머리에서 나눈 우리 가족들 대화는 이랬다. “큰일이네. 아직 뿌리도 안 달렸는데 벌써 산돼지가 다녀갔네.” “어디로 들어왔는데.” “호두나무가 있는 그 개울 쪽인 거 같아. 축대도 제법 높고 비탈이 심한데도 그리 올라온 것 같아.”

“그러게 미리미리 그물망을 치라고 했잖아요.” “그물망을 치면 안 와요?” “그물망이 무슨 도움이 되겠어? 그냥 해보는 거겠지.” “그렇다고 두 손 놓고 그냥 있을 수만은 없는 거잖아.” “얼마나 파 헤집었는데?” “이쪽 거름기가 많은 곳과 저쪽 밭 끄트머리만 집중적으로 파버렸네.”

▲ 김석봉 농부

그날 나는 그물망을 사와서 밭두렁을 돌아다니며 취약하다싶은 곳을 막았다. 모아둔 폐현수막도 여기저기 쳤다. 들어오는 산돼지 발자국 크기를 생각하면 이런 것으로 산돼지를 막을 수는 없을 거란 생각을 했다.

다음날은 산돼지가 오지 않았다. 사나흘 산돼지는 오지 않았다. 닷새째 되던 날 아침, 고구마밭은 엉망이 되어있었다. 처음 들어온 면적만큼, 그때 파헤친 포기 수만큼 해치웠다.

그날 아침 밥상머리에서 우리 가족이 나눈 대화는 이랬다. “아휴, 이걸 어째. 이번엔 그물망을 뚫고 들어왔네.” “많이 파먹었어?” “면사무소에 신고해요.” “그럼 어찌되는데?” “포수를 보내주겠지. 뭐 마땅히 해줄 방법이 있겠어?”

“포수가 온다고? 그럼 그 산돼지를 잡는 거야?” “그럼 그 산돼지는 죽겠네요.” “총소리에 놀라 산 너머 다른 마을로 떠나버릴지도 몰라.” “설마, 고구마밭을 놔두고 그렇게 떠나겠어?” “면사무소에 가서 신고라도 해야지. 어떻게 키운 고구만데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는 거잖아.”

오전 내내 망설이다 점심나절에 면사무소로 갔다. 식사시간인데도 마침 담당공무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행정에서도 별로 도리가 없다고 했다. 포수를 불러야 하는데 언제쯤 오게 될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유해야생동물에 의한 농산물피해보상 신청을 하는 제도가 있다고 했다.

이름과 전화번호와 집주소를 남기고 면사무소를 나오는데 여길 찾아온 나 자신이 부끄럽고 우둔하다는 생각에 부아가 치밀었다.

면사무소에서 돌아와 밭두렁을 돌아다니며 또 그물망을 쳤다. 다음날은 산돼지가 들어오지 않았다. 이틀째 되던 날 아침 고구마밭은 엉망진창이 되어있었다. 또 그날 해치운 만큼 파 헤집어버렸다. 제법 새끼손가락만한 고구마가 파헤쳐진 뿌리 끝에 대롱대롱 달려있었다.

그날 아침 밥상머리에서 나눈 우리 가족들의 대화는 이러했다.

“또 들어왔다 가셨네. 도저히 안 되겠다. 포기를 하든가, 면사무소를 다그쳐서 포수를 부르던가 해야지.” “망도 뚫어버리고, 현수막을 쳐도 들어오니 달리 방법이 없네.” “피해보상제도가 있다면서요.” “신경 그만 쓰고 내비 둬요. 실컷 먹고 나면 피해보상신청이나 하고. 그러다 병나겠다.”

“그럴까? 나도 스트레스가 심하네. 짜증도 나고.” “차라리 그 편이 낫겠어요. 그렇게 하세요. 아버지.” “그래. 그렇게 해요. 산돼지 잡아달라는 것도 할 짓이 아니지.” “그래도 명색이 환경운동가였는데 그러는 것도 이상하지. 그렇지?”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밤 내리 사흘을 하루도 안 거르고 산돼지는 고구마밭을 휩쓸고 다녔다. 사백 평쯤 되는 고구마밭은 흉물스럽게 변해갔다. 나는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했다. 읍내 농약가게에 나가 대형야생동물퇴치제를 사와서 밭두렁을 돌아다니며 뿌렸다. 집에 모아둔 폐현수막을 있는 대로 가져와 곳곳에 쳤다. 이웃집 경음기까지 빌려와 달았다. 밭 주변은 그야말로 어수선하게 변해갔다.

고구마밭을 바라보는 내 심정은 타들어갔다. 얼마나 곱게 가꾼 밭이던가. 고구마 포기가 마치 꽃송이처럼 탐스럽게 피어 번져나가기 시작했을 때의 그 모습을 바라보며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던가. 그런 밭이 저처럼 흉물스럽게 변해가는 것을 보니 참으로 기가 막혔다. 고구마를 수확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 밭이 저처럼 너덜너덜해지는 것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다시 면사무소 담당자를 찾았다. 포수에게 연락을 취했다고 했다. 피해신고를 했으면 현장에 와보고 얼마나 심각한지, 얼마나 긴급한 상황인지 판단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따졌다. 포수에게 문자만 달랑 보내놓고 할 일 다 한 거냐고 따졌다. 오늘 당장 포수를 보내주도록 연락해 보겠다는 답이 되돌아왔다. 참으로 허망한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고구마 밭으로 나갔다. 어젯밤 뚫고 들어온 곳을 현수막으로 막았다. 날이 저물도록 포수는 오지 않았다. 오늘 밤에도 산돼지는 현수막과 그물망과 경음기를 뚫고 들어와 잔치를 즐길 것이다. 그 아름답던 내 밭이랑은 마침내 처절한 모습으로 파헤쳐질 것이다.

“고구마모종 얼맙니까.” 4월 중순이었다. 읍내 장에 나갔는데 벌써 싱싱한 고구마모종이 나와 있었다. 올해 더 늘린 밭뙈기에 고구마를 심어 볼까하는 마음이 생겼다. “키로에 팔천 원, 저거 한 자루에 십이만 원.”

“지금 심으면 언제 캐요?” “추석 전에 캐지. 그때 캐야 돈이 되고. 고구마로 돈 버는 사람들은 다 요새 심어. 십 키로 짜리 한 상자에 사만 원은 넘게 받을 걸?” 군침이 돌았다. 다들 요즘 심는다고 하지 않는가. 돈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 늦게 캐는 고구마는 한 상자에 삼만 원 받기도 벅차지 않던가.

올해 늘린 밭은 마을에 가까이 붙어있으니 산돼지는 피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 자루를 샀다. 그런 마음으로 심은 고구마였다.

어른 손바닥만 한 발자국을 남긴 그 산돼지가 여섯 번을 들락거리고 난 다음날 아침 아내도 나를 따라 밭으로 나섰다. 간밤에 산돼지는 또 들어와 어김없이 분탕질을 쳐두었다. 이번엔 고추밭까지 설치고 다녔다. 고구마 밭 언저리에 세워둔 경음기 소리에 놀란 녀석이 피하려고 고추밭으로 돌진한 듯했다.

“이걸 어째. 고추밭까지 엉망이네.” 아내는 쓰러지고 부러진 고추포기에서 풋고추를 따내며 안타까워했다. “아마 저 고구마를 다 먹어치울 때까지 들어올 거야.” “고추는 망치면 안 되는데 어떡해요.” “저 경음기를 치우면 고추밭에는 들어가지 않겠지.”

경음기를 뽑아드는 손길에 힘이 빠졌다. 돈 된다는 고구마기에 미련이 남는 걸까. 애지중지 보살핀 고구마밭이기에 포기하기 어려운 걸까.

한 시절 환경운동을 하면서 ‘자연과 인간의 평화로운 공존’을 좇으며 살아온 삶이었다. 생명을 사랑해야 한다고, 야생동물도 우리와 함께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외치던 삶이었다. 날짐승 길짐승을 만나 때로 감동하고 감격스러워하면서 살아온 삶이었다. 가끔 산비둘기가 움트는 콩을 파먹고, 고라니가 팥 싹을 뜯어먹고, 산돼지가 밭이랑을 밟고 지나다녀도 그러려니 하며 살아온 삶이었다. 잘 견디고 잘 버텨온 삶이었다.

돈이 된다는 고구마 앞에서 나는 무너졌다. 한 상자 사만 원은 넘게 받을 거라는 그 기대와 욕망에 나는 무너졌다. 그렇게 품었던 유혹을 미련 없이 버리지 못하고 나는 마침내 면사무소를 향했고, 포수밖에 불러줄 수 없다는 담당자를 다그쳤다. 포수를 불러 그 산돼지에 총질을 하라고 종용하듯 왜 그렇게 손 놓고 있느냐고 따졌었다.

아, 부끄럽고 슬퍼라. 나도 여느 늙은이들처럼 가슴을 욕심으로 채워가는 구나. 지난날 그 애틋한 순간순간을 허무하게 지워가는 구나. 건너편 고구마밭에서 총소리라도 날까싶어 뒤척이는 이 밤이 괴롭고 길었다.

 


김석봉 농부  ksb@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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