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전설 깃든 곳에서 마음 쉼표 그리다 - 진주 금호지

김종신 객원기자l승인2019.07.19l수정2019.07.19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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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 금산면 금호지

 

비 맞은 듯 땀 흘리는 요즘. 뜨거운 햇볕에 몸과 마음은 지쳐간다. 지친 마음에 쉼표 하나 그릴 수 있는 곳이 진주 금산면 금호지(일명 금산 못)다.

 

▲ 진주 금산면 금호지 둘레길

 

▲ 진주 금산면 금호지는 현재 전제 면적 20만 4937㎡, 평균 수심 5.5m으로 넓어 한눈에 호수 모습을 다 볼 수 없다.

 

어디에서 서도 금호지의 넉넉한 품은 아늑하다. 금호지는 넓어 쉽사리 전체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금호지는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신라 때 형성된 자연 못이라고 전해오는데 현재 전제 면적 20만 4937㎡, 평균 수심 5.5m이다. 전설에는 워낙 깊어 명주실 구리 3개가 들어갔다고 한다.

 

▲ 진주 금산면 금호지 둘레길

 

금호지 근처 커피숍에 차를 세우고 주위의 풍광을 두 눈 가득 꾹꾹 눌러 담았다. 어디로 걸어도 좋은 길이다. 그저 바람이 부르는 대로 향했다. 저수지에 비친 풍광은 데칼코마니 같은 아름다운 그림을 선사한다.

 

▲ 진주 금산면 금호지 둘레길은 월아산 자락을 지나는 숲길이기도 하다.

 

월아산 자락을 지나는 숲길은 나무 시원하다. 나무가 양산처럼 햇볕을 가려준다. 금호지를 걷는 이들의 걸음을 풍광처럼 여유롭다. 앞서니 뒤서거니 모두가 넉넉한 걸음으로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 진주 금산면 금호지 배수문을 지나는 출렁다리

 

곳곳에 있는 쉼터와 쉬기 좋은 긴 의자 등이 걸음을 불러 세운다. 걸음을 멈추고 잠시 앉아 호수 위를 가로질러 안겨 오는 바람과 인사를 나눈다. 가져간 캔커피는 바람과 주위 풍광을 비벼 더욱더 달곰하다.

 

▲ 진주 금산면 금호지 수양버들이 마치 창포물에 머리 감는 아낙을 닮았다.

 

호수 너머 수양버들이 마치 창포물에 머리 감는 아낙을 닮았다. 덩달아 개운하다. 저수지 배수문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를 건네자 호수는 더욱 넉넉한 품으로 반긴다.

 

▲ 진주 금산면 금호지에서 바라본 월아산

 

달음산이라고도 하는 ‘월아산(月牙山)’의 봉긋 솟은 두 봉우리가 정겹다. 월아산 두 봉우리인 국사봉과 장군대봉 사이로 ‘휘영청 둥근 달을 토해놓는 풍경이 아름다워 아산토월(牙山吐月)’ 이라 했다. 바라보는 동안 마음은 정갈해진다.

 

▲ 진주 금산면 금호지 둑 아래

 

▲ 진주 금산면 금호지 둑길

 

둑 아래는 아름드리나무들이 또 다른 길을 만들었다. 잠시 둘레길에서 벗어나 숲길로 향하자 맑은 기운이 와락 안긴다. 맑은 기운을 담아 다시 둘레길로 올라오면 긴 의자가 어서 와라 반긴다.

 

▲ 진주 금산면 금호지 분수

 

호수 한쪽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는 물줄기가 마치 하늘로 승천하는 용을 닮았다. 용의 전설이 깃든 금호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떠오르게 한다.

 

▲ 진주 금산면 금호지에는 용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아주 오랜 옛날 하늘에서 착한 청룡과 나쁜 황룡이 한데 엉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때 우연히 그 싸움을 본 한 장사가 “싸움하지 마라!”고 고함을 치자 놀란 청룡이 아래를 내려다보는 순간, 황룡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청룡의 목에 비수를 찔렀다. 칼에 찔린 청룡이 땅에 떨어지면서 꼬리를 치니, 용의 꼬리를 맞은 자리는 크게 쓸려나가 그 자리에 큰 못이 생겼다.”라고 한다.

 

▲ 진주 금산면 금호지를 가로지르는 소망교

 

분수를 바라보며 호수를 가로지르는 소망교를 건넜다. 다리 아래 버드나무 옆에는 비석 두 개가 나란히 있다.

 

▲ 진주 금산면 금호지를 기로지르는 소망교 아래에 있는 비석은 1829년(순조 29) 도계 이희영(李禧榮)이 금호지(琴湖池) 동쪽에 돌로 쌓은 축대(금호대)를 지으며 퇴계 이황의 시비(왼쪽)를 세운 것과 이희영의 아들 이수용이 파손된 축대에서 현재의 위치로 1907년 옮기면서 ‘도계 이공 금호대 유적비’다.

 

왼쪽의 비석은 1829년(순조 29) 도계 이희영(李禧榮)이 금호지(琴湖池) 동쪽에 돌로 쌓은 축대(금호대)를 지으며 퇴계 이황의 시비를 세운 것이다. 오른쪽 비석은 이희영의 아들 이수용이 파손된 축대에서 현재의 위치로 1907년 옮기면서 ‘도계 이공 금호대 유적비’를 만들어 퇴계 선생 시비와 나란히 세웠다.

 

▲ 진주 금산면 금호지에 있는 퇴계 시비는 1533년 당시 곤양 군수인 관포 어득강의 초청으로 32세 퇴계 선생이 안동을 출발, 예천⸱성주⸱상주⸱창원⸱의령⸱함안을 거쳐 3월 26일 진주에 도착해 인근 청곡사를 둘러본 남다른 감회를 담은 시를 돌에 새겼다.

 

1533년 당시 곤양 군수인 관포 어득강의 초청에 32세 퇴계는 안동을 출발, 예천⸱성주⸱상주⸱창원⸱의령⸱함안을 거쳐 3월 26일 진주에 도착했다. 인근 청곡사와 촉석루를 둘러본 뒤 곤양으로 향했다. 인근 청곡사는 퇴계에게 남다른 곳이다. 숙부인 이우가 1506년 진주 목사로 부임하자 이듬해 셋째 형 이의와 넷째 형 이해가 청곡사에서 공부했다. 당시 7세였던 퇴계가 헤어진 형들을 그리워하자 어머니는 글공부가 자식 된 도리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 진주 금산면 금호지 소망교 아래에 있는 퇴계 시비

 

시간이 흘러 27년 만에 찾았지만, 글공부하던 형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녔다. 이미 한 해 전에 세상을 버린 셋째 형을 그리워하며 눈물이 절로 난다고 했다. 이때 남긴 시가 비석에 새겨져 있다.

 

金山道上晩逢雨(금산도상만봉우-금산길 지나다가 늦게 비를 만났더니)

靑谷寺前寒瀉泉(청곡사전한사천-청곡사 앞 쏟아지는 물이 차기도 하다)

爲是雪泥鴻跡處(위시설니홍적처-세상사는 눈밭의 기러기 발자국 같아)

存亡離合一潸然(존망이합일산연-생사와 이합에 눈물이 한껏 흐르네)

 

▲ 진주 금산면 금호지에 비춰진 아파트 반영

 

금호지를 걷다가 멈추었다가 다시 걸었다. 둘레만 5km로 굴곡이 많아 한눈에 호수 전부를 볼 수 없다.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금산 못을 둘러봤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안 둘러봤다”라고 하면 게으른 놈이라고 벌을 내린다고 한다.

 

▲ 진주 금산면 금호지를 둘러보지 않으면 염라대왕이 게이르다고 벌을 내린다고 한다.

 

염라대왕에게 게으르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 이럭저럭 산천 유람하듯 한 바퀴 걷자 막걸리 한 잔을 마신 듯 가슴이 뻥 뚫리는 듯 시원해진다. 무릉도원을 떠올리게 하는 금호지 풍광은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토해내게 한다.


김종신 객원기자  haechanso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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