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봉의 산촌일기] 세상에서 장가를 가장 잘든 사람

“나는 여전히 못난 남편으로 남아 사랑한다고, 고마웠다고 속삭여주지도 못할 것이다” 김석봉 농부l승인2019.06.17l수정2019.06.17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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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에서 장가를 참 잘 들었다싶은 사람 셋을 봤어요.” 이른 아침, 보름이가 현관을 들어서면서 아내를 바라보며 생글거렸다. “누구?” 서하 소풍간다고 달걀볶음밥과 잡채를 만드느라 부산한 아내가 무슨 소리냐는 듯 보름이를 슬쩍 쳐다본다.

“둥이네와 최 시인과 아버님요. 그 중 으뜸은 단연 아버님이구요.” “내 그럴 줄 알았다.” 나를 바라보며 계면쩍게 웃는 보름이를 마주보며 나도 웃었다. 살아오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보며 대개 그런 생각을 했을 거였다. 내가 워낙 무뚝뚝하거니와 분위기 파악을 못해 생뚱한 말을 하기 일쑤이니 마음씨 고와보이는 아내의 고생이 눈에 선할 거였다.

어제는 이웃들을 초대해 한바탕 잔치를 열었었다. 집수리를 마쳤으니 집들이를 해야 한다는 성화에 못 이겨 슬며시 아내에게 평상분위기를 알렸더니 아내가 흔쾌히 받아들였다. 아내 곁에서 파도 다듬고, 설거지를 도와주면 좋으련만 나는 나 몰라라 하고 밭일을 나가버렸다. 아내는 홀로 음식준비에 바빴다. 부추전과 죽순초회와 오리탕을 장만했다. 평상에 자주 모이는 여덟이 모두 왔다.

▲ 김석봉 농부

대숲 그늘이 내려앉은 새로 만든 드넓은 마루에 모였다. 마시다 남겨두었던 양주와 고량주, 소주, 맥주를 내왔다. 이웃들은 즐거워했고, 모든 음식을 남김없이 해치웠고, 급기야 자장면내기 화투치기가 이어졌다. 면소재지 중국집에서 자장면 일곱 그릇과 우동 세 그릇을 배달해 왔다. 퇴근한 아들놈과 보름이도 자장면을 즐겼다. 서하는 거의 한 그릇을 다 비웠다.

그렇게 즐거운 분위기가 끝나갈 무렵 사단이 벌어졌다. 뒷마당 닭장 앞 파리가 떼로 몰려와 극성이었다. 아내는 파리약을 뿌렸고, 그 파리약이 내 얼굴에 조금 튀었다. “이게 뭐야. 딸꾹~ 신랑 얼굴에 파리약을 뿌려? 딸꾹~” 화를 낸 건 아닌데 내 말투가 워낙 딱딱해서 화를 낸 것으로 들렸는지 아들놈이 왜 그러냐며 핀잔을 주었고, 나는 그대로 드러누워 잠들어버렸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아침을 맞았고, 아내도 내게 별 서운한 감정을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 어제 일 기억나세요?” “무슨 일? 파리약? 그게 무슨 일이라고......” “일이죠. 하루 종일 애 쓴 어머니를 생각해 보세요. 빨리 어머니께 사과하세요. 어서요.” 보름이는 여전히 생글거리며 다그쳤다. 미안하다고 한마디 해줄 수도 있으련만 어떻게든 빨리 이 자리를 피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주섬주섬 토시와 장갑을 챙겨들고 현관문을 나서려는데 아내가 눈을 흘기며 혀를 찼다. “저 봐라. 저래 빠져나간다. 쯧쯧.” 밭을 둘러보는 내내 보름이가 한 말이 떠올라 실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내가 마누라 잘 얻었다는 말은 신물 나게 들어온 터라 그렇다하더라도 보름이 말마따나 둥이네와 최 시인을 떠올려보니 그 두 사람은 세상에서 장가 잘 든 사람이 확실해 보였다.

남의 가정사를 일일이 알 수는 없으나 둥이 엄마나 예지, 영인이 엄마를 보면 그런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것이었다. 엄마들은 언제나 싱글생글한데 아빠들은 언제나 딱딱하게 굳어 있으니 당연히 드는 생각이었다. 내 모습도 비슷하려나 생각하니 쓴웃음이 났다.

나도 마찬가지일 거였다. 살아오면서 아내가 다른 누구에게 얼굴 찌푸리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말 한마디 거칠게 하는 걸 들은 적이 없었다. 내게는 짜증도 내고 삐지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는 언제나 싱글생글이었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거울을 볼 때마다 열굴 좀 펴고 살아야지 하는 다짐을 했었다. 세상은 거칠었고, 나를 휘감고 흐른 세월은 척박했다. 입은 굳게 닫혔고, 눈꼬리는 치켜 올랐고, 눈동자는 꺼실꺼실했고, 어깨는 축 쳐졌다. 누가 봐도 곱게 봐줄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니 당연히 ‘마누라 잘 얻었다.’ ‘마누라 덕에 먹고 산다.’는 말을 들으며 살 수밖에 없었다.

‘마포남’이라는 단어가 생겨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마누라가 포기한 남자’를 일컫는 용어였다. 내가 살던 도시에서 소위 운동권에 세 명의 ‘마포남’이 있었는데 그 중 으뜸이 바로 나였다. 좋은 세상을 위해 그저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을 일컫는다는 뜻으로만 알고 어깨를 으쓱거렸을 거였다. 대책 없이 나대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졌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었다.

‘마포남’이 자랑인 시절이었다. 좋은 세상 바라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절이었다. 짐자전거에 노동자신문을 싣고 진주 상평공단을 쏘다니고, 지리산 댐 반대집회에 모든 것을 걸던 시절이었다. 가족들이 무엇으로 먹고 사는지 신경조차 쓰지 않던 시절이었다. 좋은 세상이 올 거라 믿으며 가족과 가정은 버려둔 채 거리로 현장으로 나가던 시절이었다.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한마디 말도 해주지 못한 시절이었다. 미안하다고, 조금만 더 참고 살아보자고 살며시 껴안고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 주기라도 했으면 좋았으련만 나는 거기까지 철이 들어있지 못했다. 당연히 ‘마포남’으로 살아야하는 줄로만 알았고, 그렇게 사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던 시절이었다.

“사랑해.” 언젠가 불쑥 이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연분홍 복사꽃과 새하얀 배꽃이 만발한 어느 봄날, 진주 비봉산 언덕길을 산책하면서였을 것이다. 어쩌면 샛노란 장다리꽃 너머로 팔랑팔랑 흰나비 한 마리 날고 있었을법한 봄날이었을 것이다.

“별스럽네. 그런 말을 다하고.” 아내가 먼 산을 바라보는 사이 나는 ‘정말이야.’라는 말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 말마저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다들 그렇게 말을 해주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었다.

나는 늘 그랬다. 경상도 남자라고 다 그렇겠는가마는 다정다감과는 담 쌓고 살아온 경상도 남자여서 그렇겠거니 하고 생각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말은 안 해도 나를 늘 속정이 깊은 ‘좋은 남편’이라고 생각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사랑해.” 그날 불쑥 뱉어낸 이 한마디 말로 한정 없이 깊은 내 사랑이 아내에게 전해지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평생을 곁에서 함께 살며 위로하고 격려해줄 ‘내 남편’으로 생각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날 이후 지금껏 나는 아내에게 ‘사랑해’ ‘미안해’라는 말조차 한마디 제대로 속삭여주지 못하면서 살았다. 거칠어진 손 한번 잡아주지 않았고, 희끗희끗 물들어가는 귀밑머리 한번 만져주지 못했다.

다시 봄날이 와서 연분홍 복사꽃이 피고 새하얀 배꽃이 피어도 뜨겁던 그 청춘의 가슴으로 힘껏 껴안아주지 못할 것임을 나는 안다. 끝끝내 이 일그러진 얼굴 굳은 표정은 펴지지 않을 것이며, 아내 또한 나머지 세월을 그러려니 하며 끌려가듯 살아갈 것임을 나는 안다.

나는 여전히 못난 남편으로 남아 사랑한다고, 고마웠다고 속삭여주지도 못할 것이다. 살아오느라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나머지 인생길도 이렇게만 살아보자고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 주지도 않을 것이다. 이제 촉촉하고 포근한 그 감성의 세월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저만치서 따로 늙어가는 아내를 바라봐야하는 건조한 세월만이 남았겠지. 빈 방에 홀로 누운 아내의 성긴 머리카락을 멀뚱멀뚱 바라보며 회한에 젖는 세월만 남았겠지. 내게 아직도 흘릴 눈물이 남아있다면 그쯤에서 한번쯤 뜨겁게 눈시울 붉히게 되겠지. 속울음 삼키며 또 돌아서버리는 못난 ‘마포남’으로 남아있겠지.

“어제 음식 장만하느라 고생 많았어. 고맙소. 파리약에 화난 게 아닌데 그리 들었다면 미안해요. 앞으론 말을 좀 조심하며 살게.” 밭을 둘러보고 집으로 가는 길, 이 말을 자꾸 연습해 보지만 끝내 이 말조차 가슴속에 묻어버릴 것임을 나는 안다.


김석봉 농부  ksb@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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