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기 위해 진주에 오면 여행은 끝이다-진주 팔경을 찾아서

진주문화연구소 주최 진주문화 자취를 찾아서 김종신 객원기자l승인2019.06.12l수정2019.06.1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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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는 아름답다. 아름다운 진주(晉州) 속 진주(眞珠)를 찾아가는 <‘시(詩)와 함께하는- ‘진주 팔경’의 자취를 찾아서>가 진주문화연구소 주최로 6월 8일 열렸다.

 

▲ 『진주 팔경(지식산업사 출판사)』 저자이자 시인인 강희근 경상대학교 명예교수를 길라잡이로 삼아6월 8일 진주문화연구소 주최로 열린 <‘시(詩)와 함께하는- ‘진주 팔경’의 자취를 찾아서>가 열렸다.

진주문화사랑모임에서 1999년 선정한 진주 팔경은 제1경 진주성 촉석루를 비롯해 남강 의암, 뒤벼리, 새벼리, 망진산 봉수대, 비봉산의 봄, 월아산 해돋이, 진양호 노을이다. 이날 『진주 팔경(지식산업사 출판사)』 저자이자 시인인 강희근 경상대학교 명예교수를 길라잡이로 삼아 진주 팔경 중에서 비봉산과 새벼리를 제외한 6곳을 둘러보았다.

 

▲ 진주 팔경 중 제1경인 진주성과 촉석루(2018년 11월 3일 촬영)

12경이나 10경이 아니라 8경을 선정한 이유는 『역경』에 나오는 ‘하늘은 칠의 수요, 땅은 팔의 수(天七八入)’라는 데 연원한 것처럼 땅, 자연을 의미하는 8가지를 가려 뽑았다고 한다.

 

▲ 진주 선학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진주성(2018년11월11일 촬영)

먼저 찾은 곳은 진주성. 시인인 강희근 명예교수는 진주성을 사람 발처럼 생겼다고 했다. 북장대는 발뒤꿈치, 촉석루는 발목에 앞에 난 점과 같이 보인다며 진주성은 민족의 발로서 민족이 나가 할 길의 발걸음이라는 의미라고 했다.

 

▲ 진주 팔경 중 제1경인 진주성과 촉석루(2018년 11월 13일 촬영)

진주성 포정사에서 바라본 촉석루는 내성의 동쪽 벼랑가에 남향 허공으로 추녀 끝을 밀어내고 있는 것이 아리따운 여인의 자태로 보인다고 했다. 이밖에도 거대한 함선(艦船)처럼 보인다고 했다.

 

▲ 진주 팔경 중 제1경인 진주성과 촉석루의 야경(2017년 6월25일 촬영)
 

시인은 자작시 <촉석루>를 들려주었다.

“그 밑에 밤 안개를 치고 있다//왜(倭)바람의/그 왼발짝, 도포(道袍)자락으로 말아 쥐고 있다.//비봉(飛鳳)이여/ 그대의 우르르 우르르/한 뙈기 수염이 몰려오고//몰려오는 한 뙈기/수염,/그 밑에 밤 안개를 치고 있다.// 선조 이후다//”

 

▲ 진주 팔경 중 제2경인 남강 의암

촉석루에 올라 주위 경치를 둘러본 뒤 남강 의암으로 향했다. 수십여 년 전 11월, 개천예술제 백일장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조태일(1941~1999) 시인의 기행과도 같은 일화를 들려주었다. 당시 의암 바위 근처 모래밭에서 오징어를 안주 삼아 소주를 같이 마시는데 난데없이 옷을 모두 벗어버린 조 시인이 그대로 의암 쪽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렇게 남강에 들어간 뒤 시인은 여관에서 <논개양(論介孃)>이라는 시를 단숨에 썼다고 한다.

 

▲ 진주 팔경 중 제2경인 남강 의암

“논개양은 내 첫사랑/논개양을 만나러 뛰어들었다.//초가을 이른 새벽/촉석루 밑 모래밭에다/윗도리, 아랫도리, 내의 다 벗어던지고/내 첫사랑 논개양을 만나러/남강(南江)에 뛰어들었다.//논개양은 탈 없이 열렬했다./내가 입 맞춘 금가락지로 두 손을 엮어/왜장(倭將)을 부둥켜안은 채/싸움은 끝나지 않고 숨결도 가빴다.//잘한다. 잘한다. 남강이 쪼개지도록 외치며/논개양의 혼 속을 헤엄쳐 다니는데,/물고기란 놈이 내 발가벗은 몸을 사알짝 건드렸다.//아마 그만 나가 달라는 논개양의 전갈인가부다.//첫사랑 논개양을 그렇게 만나고/뛰어나왔다./논개양을 간신히 만나고 뛰어나왔다.//”

 

▲ 진주 의기사 <논개 영정>

시인이 에피소드와 함께 들려주는 시라서 더욱더 와 닿는다. 의암에서 의기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의기사에서 논개 영정 앞에 잠시 예를 올리고 나와 의기사 앞 설창수(1916~1998) 시인의 <의랑 논개의 비>에 적힌 글을 읽어주었다.

 

▲ 진주 의기사 바로 앞에 있는 <의랑 논개의 비>

“~피란 매양 물보다 진한 것이 아니어 무고히 흘려진 그 옛날 민족의 피는 어즈버 진양성 터에 물거품이 되고 말아도 불로한 처녀 논개의 푸른 머리카락을 빗겨 남가람이 천추로 푸르러 굽이치며 흐름을 보라. 애오라지 민족의 처녀에게 드리고픈 민족의 사랑만은 강물 따라 흐르는 것이 아니기에, 아 아 어느 날 조국의 다사로운 금잔디 밭으로 물옷 벗어들고 거닐어 오실 당신을 위하여 여기에 비 하나 세운다.”

▲ 진주 뒤벼리를 온전히 보기 위해 경남문화예술회관 야외공연장에서 강희근 시인의 설명을 듣고 있는 진주 팔경 기행 참가자들.

민족의 처녀 논개 곁을 지나 우리는 뒤벼리를 온전히 구경할 수 있는 경남문화예술회관 앞으로 향했다. 진주 시내에서 도동지역으로 오가는 길에서 제대로 구경할 수 없어 강 건너에서 벼랑을 보았다.

 

▲ 진주 팔경 중 제3경인 뒤벼리(2018년 11월 13일 촬영)

학이 날개를 펼쳐 날아가기 직전의 형상의 뒤벼리는 선학산 뒤쪽 벼랑이라는 뜻이지 않을까 한다. 세로로 깎아 세운 듯한, 수십 척 암벽이 병풍으로 펼쳐진 동양화를 연상하게 한다. 아름다운 풍광을 너머에는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가 깃든 ‘처녀골’전설이 전해져 온다.

 

▲ 진주 팔경 중 제7경인 월아산 해돋이(2018년 12월 30일 선학산 전망대에서 촬영)

 

뒤벼리를 지나 월아산 해돋이를 보러 금호지로 갔다. 해가 중천에 뜬 까닭에 해돋이를 볼 수 없지만 장군대봉과 국사봉의 쌍봉이 금호지에 비친 대칭의 아름다움은 잊을 수 없다. 두 봉우리로 이어지는 부분이 어금니 모양으로 생겨 어금니에 뜨는 달의 의미로 월아산(月牙山)이라 불린 게 아닐까 추정했다. 월아산을 다른 말로 달엄산, 달음산이라 불리는데 산이 달을 토해 낸다(牙山吐月)는 뜻이 있단다.

 

▲ 진주 금호지에서 바라본 월아산

시인은 이런 풍광을 시 <월아산 해뜨기>에서 아래와 같이 표현했다.

“해가 뜨지 않고/굴러 내렸다// 가랑이 같은 두 봉우리 사이 속곳/여린 풀잎 레이스에 닿을 듯 굴러내려/금호못 얼음 바닥에 처박혀/혼이 나갔다.//혼이 돌아오면서/진주검무 춤사위에 들어가 이글 이그르르/외줄로 돌다가/ 못 둑에 나와 중천으로 곧장 돌아갔다.//”

황룡과 청룡의 전설을 깃든 금호지를 뒤로하고 두 봉우리 사이 질매재를 넘어 점심을 먹었다.

 

▲ 진주 팔경 중 제5경인 망진산봉수대

점심을 먹고 난 뒤 망진산 봉수대로 향했다. 광복 50주년인 1995년 광복절에 통일기원 전국 봉화제의 목적으로 망진산 봉화제를 올린 것을 계기로 1996년 건립했다. 원래는 흙과 돌을 사용하는 남방식인데 새 봉수대는 돌로만 사용한 북방식으로 백두산과 한라산, 독도, 월아산 돌 등을 채석해 만들었다고 한다.

 

▲ 진주 팔경 중 제5경인 망진산봉수대에서 바라본 진주 남강과 진주성(사진 맨오른쪽)

본래는 KBS한국방송 중계소 자리에 있었지만 현 봉수대는 50m 아래에 세워져 있다. 1895년(고종 32) 봉수제가 폐지되고 1894년 동학농민항쟁과 1919년 3⸱1만세 운동 때 봉홧불이 올려 기세를 떨치자 일제가 봉수대를 파괴했다고 한다. 봉수대에서는 나무들이 시야를 가려 온전히 보기 어렵다. 그런데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풍광은 아름답고 싱그럽다. 여기서도 지리산이 와락 안길 듯 저 너머로 보인다.

 

▲ 진주 팔경 중 제5경인 망진산봉수대에서 바라본 진주 신안평거지역

봉수대를 만들고 <시작이자 마지막일 통일의 봉홧불>이라는 박노정 시인(1950~2018)의 시를 기념 시비로 세웠다.

“기미년 삼월 일일/우리나라 산봉우리마다/때맞추어 봉홧불 활 활 타올랐네/흰옷 입은 사람들/가슴에 불을 놓아/삼천리 골골샅샅 독립 만세 번져갔네/진주 사람 카랑턴 정신으로 감연히 일어섰네/걸인들도 기생들도 앞 다투어 나섰네.//”

 

▲ 진주 팔경 중 제8경인 진양호 노을(2018년 11월 13일 촬영)

마지막으로 진주 팔경의 막내인 진양호 노을을 보러 진양호 전망대로 향했다. 남강의 지류인 경호강과 덕천강이 만나는 그곳에 있는 인공호수인 진양호 덕분에 진주는 새로운 아름다운 경관 하나를 추가하게 되었다. 산 무더기들과 호수, 하늘과 구름이 어울려 한판의 축제 굿판을, 노을을 통해 이루어낸 굿판을 우리는 ‘진양호 노을’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한다.

 

▲ 진주 진양호

남강댐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댐 권역의 수많은 주민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을 수몰로 포기해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아픔 위에 만들어진 눈물의 경관이다. 희생 위에 이룩하는 또 다른 부활이 진양호인 셈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 진주 팔경 중 제4경인 새벼리(2015년 10월 18일 촬영)

시인은 시조 시인인 최재호(1917~1988)의 <진양호(晉陽湖)>로 이 아름다운 풍광을 들려주었다.

 

▲ 진주 팔경 중 제6경인 비봉산(2018년 11월 11일 선학산 전망대에서 촬영)

“두류산 골을 질러/발목만 잠기는가//허리도 반쯤 잠겨/물 위로 비친 모습//이제 막 신방에 들어/몸을 사려 앉는다//씻기운 하늘 자락/여기 와 휘말리고//구름 거치른 속/푸른 아미(蛾眉) 그리느니//억만년(億萬) 닫혔던 문이/저리 활짝 열렸다.//”

 

▲ 진주 월아산 장군대봉에서 바라본 진주혁신도시(2016년 3월 30일 촬영)

진주 팔경 문화 기행의 길라잡이 역할을 한 시인 강희근 경상대학교 명예교수는 “팔도강산을 다 돈 끝에/ 진주에 와 닿으면/ 그때부터 여행의 시작이다// 팔도강산을 다 돌아 볼려고/맨 처음 진주에 와 닿으면/이제 여행의 끝이다//(허유 시인의 <진주>중에서)”로 끝맺음했다.

 

▲ 진주 문화기행에 참가자들이 금호지에서 월아산을 배경을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종신 객원기자  haechanso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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