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찾은 집안의 평화

중간고사와 함께 봄이 가고 기말고사와 함께 여름이 왔다. 지금은 기말고사 기간. 아들은 스마트폰을 자진 반납했다. 시험이 끝날 때까지 스마트폰을 보지 않겠다는 갸륵한 마음에 나는 살짝 감동을 먹었다. 솔직히 나도 중독자였기 때문. ‘폰 좀 그만 보라’고 입만 열면 잔소리를 하면서도 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시시각각 올라오는 뉴스기사, 동영상들을 일일이 검색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면서도. 그렇지 않으면 거대한 어떤 시류에 뒤처질 것만 같은 압박감을 안고 산다.

때문에 아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내밀었을 때, 나 역시 거사를 앞둔 민족투사의 심정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폰을 켜보았다. 화면에는 롱코트 입은 주윤발 형님이 웃고 있었다. 그대로 전원 버튼을 눌러 윤발이 형님과 작별. 그분은 지금 안방 장롱 두 번째 서랍에 고이 잠들어 계신다.

▲ 재인 초보엄마

일종의 실험이 시작된 셈이었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뭘 하게 될까. 나는 주로 ‘시험공부’라는 결과를 기대하며 아들의 반응을 관찰했다. 그러나 실험에는 변수가 따르는 법. 다음 날 부푼 마음으로 퇴근했을 때 녀석은 안방에 드러누워 영화를 보고 있었다. “와, 엄마! 알파치노 연기 끝내주네. 좀만 있음 끝나요.” 설마 2시간을 내리 봤다는 건가? 저놈의 케이블 방송! 당장 선을 뽑아버리고 싶은 걸 참았다. 아무리 시험기간이래도 날마다 공부만 할 순 없겠지. 사람이 기계도 아니고.

그래서일까. 아들은 날마다 영화를 보았다. 학교 마치는 시간이 대략 오후 4시. 우리 부부의 퇴근시간 저녁 6시에서 7시 사이. 녀석은 영화채널이 제공하는 다양한 만찬을 즐기며 우리를 맞이했다.

저녁 식탁에서 나는 참아왔던 말을 꺼냈다. 시간 아끼느라 스마트폰도 하지 않겠다면서, 날마다 영화 한 프로씩 보는 시간은 아깝지 않냐고. 녀석은 말없이 밥만 먹었다. 그때 거실에서 들려온 비명소리. “으악! 또 죽었어!” 초등학생 딸이 스마트폰에 새 게임을 깔았는데 잘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들의 숟가락질이 빨라졌다. “기다려, 오빠가 해결해줄게!”

그리하여 아들은 동생의 폰을 손에 넣게 되었고, 집안에는 남매의 웃음소리가 흘러넘쳤다. “우와, 오빠 최고다! 이것도 깨줘” 나는 이 낯선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눈만 마주치면 서로 못 잡아먹어 으르렁거리던 녀석들이 나란히 웃고 있다. 폰 때문에, 아니 덕분에 남매 사이가 좋아질 수 있다면 엄마로서 백번 감사할 일이었다.

이후로 아들은 틈만 나면 동생의 안색을 살폈다. 동생이 혹시 TV를 보고 있으면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게임 안할래?” 은근히 유도하기도 했다. 아들은 게임을 해서 좋고 딸은 레벨이 올라 좋고. 집안에 평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게임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표정은 굳어졌다. 역시 세상에 다 좋은 일은 없다.

그 무렵 딸은 학교에서 단체로 생존수영 강습을 받으러 다녔다. 수영을 전혀 못하는데다 가족과 떨어져서 친구들과 가는 것도 처음이라 긴장되고 무서웠다고 했다. 총 3일간 수업인데, 첫날부터 눈물바람이더니 둘째 날은 급기야 오빠 목소리가 들렸단다. “오빠가 내 이름을 부르는 거야. 수영장에서” 그러자 아들은 “그거 환청이야. 니가 긴장되니까.”라고 말해주었다. “심폐소생술 하는 것도 배웠는데 내일은 직접 해보라고 시킨대. 애들 앞에서 실수하면 어떡하지?” 이번에도 아들은 호기롭게 말했다. “괜찮아, 그거 대충하고 넘겨. 슬슬 하는 척만 하고 뒤로 빠지면 안 들켜.” 라며 친절하게 자신의 생존(?) 비법을 전수했다.

아들이 스마트폰 없이 지낸 지도 어느 덧 2주가 지났다. 이제는 별로 불편해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남는 시간을 시험공부에 전념하는 건 아니다. 틈틈이 영화도 보고 밀려두었던 소설책도 읽는다. (평소엔 거들떠도 안 보던 책을 굳이 시험기간에) 무엇보다 동생과의 사이가 부쩍 좋아졌다. 정확히는 동생의 폰과 더 친해졌다고 해야겠지만 아무렴 어떤가. 나는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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