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를 실천한 여인, 논개를 기리는 논개제

5월 24일부터 26일까지 논개제가 열렸다. 김종신 객원기자l승인2019.05.29l수정2019.05.2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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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성 서장대 가는 길

초록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오월의 마지막 주말이면 진주에서는 의기 논개를 기리는 진주 논개제가 열린다. 5월 24일부터 26일까지 논개제가 열렸다. 25일 진주성 서장대 아래쪽 나불천 복개도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성으로 들어갔다.

 

▲ 진주성 창렬사 입구

서문을 들어서면 호국사가 정면에서 반기고 오른쪽으로는 계단이 성벽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서장대 가는 길이 나온다. 호국사 앞 아름드리나무 곁을 지나 초록이 깊어 진녹색으로 변해가는 성벽 쪽으로 걸었다.

 

▲ 진주성 창렬사

야트막한 언덕으로 계단이 이어진 곳이 나온다.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때 순절한 충무공 김시민 장군 등 39명의 신위를 모신 창렬사다.

 

▲ 진주성 창렬사 뜨락에 세워진 무명 용사를 위한 “제장군졸지위(諸將軍卒之位)”

창렬사에 들어서면 사당 오른쪽에 작은 비석 하나가 세워져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제장군졸지위(諸將軍卒之位)”라 새겨진 비다. 이름 없이 순절한 군사를 기리는 비다.

 

▲ 진주성 내

논개제도 비겁한 양반사대부들이 전쟁 때 도망쳤지만 천한 신분에서도 의를 실천한 논개의 넋을 기리는 의암별제가 오늘날에 이어져 논개제로 승화되어 열리는 셈이다.

 

▲ 진주 논개제 의암별제 재현 체험장

창렬사를 나와 국립진주박물관 옆을 지나 공북문쪽으로 향했다. 충무공 김시민 장군 동상 앞에는 의암별제 체험 행사가 열렸다. 초헌관과 아헌관도, 종헌관도 모두 여성이다. 일부 악공을 제외하고는 의암별제를 올리는 이들이 모두 여성이다.

 

▲ 의암별제는 매년 음력 6월에 길일(吉日)을 택하여 기생들만이 치른 대규모 제례로, 악공을 제외하고 제관(祭官) 등 모든 의식을 여자(기생)들이 주관하는 점과 선비들의 음악인 정악(正樂)을 사용한다는 점을 특징으로 하는 행사다. 사진은 진주 논개제 재현행사

의암별제는 매년 음력 6월에 길일(吉日)을 택하여 기생들만이 치른 대규모 제례로, 악공을 제외하고 제관(祭官) 등 모든 의식을 여자(기생)들이 주관하는 점과 선비들의 음악인 정악(正樂)을 사용한다는 점을 특징으로 하는 행사이다.

 

▲ 진주 논개제 진주교방문화거리에서 우리 소리를 배우는 모습.

옆으로는 진주교방문화거리가 펼쳐졌다. 진주 전통예술의 원류라고 하는 진주 교방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외국인들도 자리에 앉아 창을 부르는 모습이 정겹다.

 

▲ 진주 논개제가 열린 진주성 내에서 펼쳐진 진주검무
 

정오가 되자 “무뚝뚝하고 날카롭다”는 진주검무가 장엄하게 펼쳐졌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인 진주검무는 진주지역에서 전승되는 칼춤으로 한때 대궐 안 잔치 때 행하던 춤이라고 한다. 논개의 얼을 달래기 위해 진주기생들이 춤춘대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 진주검무는 조선 시대 병졸들의 전투 복장을 한 무용수 8명이 2줄로 마주 보고 양손에 색동천을 끼고 춤을 춘다.

조선 시대 병졸들의 전투 복장을 한 무용수 8명이 2줄로 마주 보고 양손에 색동천을 끼고 춤을 추었다. 더구나 꺾이지 않은 칼을 손목을 돌려쓰며 춤을 추었다.

 

▲ 진주 논개제에 참여한 아이들이 그린 논개 그림

진주검무를 구경하고 남강으로 향했다. 언제나 보아도 아름다운 촉석루를 지나온 시원한 바람이 이른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해준다.

 

▲ 진주 논개제 중 촉석루 옆 특설무대에서 열린 진주 전통 음악과 춤

진주박물관 앞 야외공연장에는 의기 논개 알기 퀴즈 대회가 열리고 한편에는 진주를 소재로 한 노랫가락들이 들려온다.

숨을 고르고 촉석루로 향했다. 촉석루 옆에는 논개를 그린 그림들이 붙어 있다. 논개의 얼굴을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 그린 상상화다.

 

▲ 촉석루

촉석루 옆 특설무대에서는 전통 춤과 노래가 연이어 공연되어 흥겹게 한다. 흥겨움을 안고 촉석루로 걸음을 옮겼다. 한낮의 열기를 식히려는 사람들로 누각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 진주 촉석루 옆에 있는 의기사

촉석루 옆 의기사로 향했다. 의기 논개 영정 앞에 고개 숙여 예를 올렸다. 논개에 관해 전북 장수 출신으로 최경회의 후실로 성이 함락되자 왜장 로스케를 껴안고 죽었다는 이야기가 사실처럼 전해져온다.

 

▲ 진주 의기사 논개 영정
▲ 진주 남강 의암

핏줄까지 하찮은 관기였다면 거룩한 순국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편견 속에 논개는 양반가의 딸로 출신성분이 바뀌고 최경회 장군의 후처로 후대에 각색되었다. 논개는 의를 실천한 여인이다.

 

▲ 진주성 내 임진대첩계사순의단에 새겨진 논개 부조상

임진대첩계사순의단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논개 토피어리를 비롯한 다양한 토피어리들이 잠시 발길을 머물게 한다. 임진대첩계사순의단 아래에 그때 당시의 모습이 새겨진 부조를 찬찬히 둘러보고 다시금 김시민 장군 동상 앞으로 향했다.

 

▲ 진주성 충무공 김시민 장군 동상
▲ 진주성 수문장 교대의식

진주성 수문장 교대의식을 구경했다. 이밖에도 탈춤한마당을 비롯한 여러 행사들이 남강 주위에서 열렸다.

 

▲ 진주 촉석루에 바라본 대숲. 눈 시리도록 찬란한 초록이 내리는 오월이면 경남 진주로 길을 잡자.

논개제는 “뽑으려 하니 모두 잡초였지만, 품으려 하니 모두 꽃이었다”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처럼 의기 논개를 비롯해 나라와 조국을 위해 살다간 이들을 위한 축제였다. 눈 시리도록 찬란한 초록이 내리는 오월이면 경남 진주로 길을 잡자. 벌써 내년 5월이 기다려진다.


김종신 객원기자  haechanso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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