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집을 나설 때 다짐했다. 오후 5시 정각 퇴근하여 5시20분쯤 집에 차 대 놓고 이것저것 준비하여 5시30분쯤 출발하리라. 석갑산! 준비랄 것도 없다. 옷 갈아입고 물병 하나 챙기고 이어폰만 귀에 꽂으면 끝이다. 하루 종일 설레었다. 어렴풋이 생각해 보니 지난 해 이맘 때 석갑산, 숙호산을 오르기 시작하여 본격적인 걷기 놀이가 시작되었다. 봄꽃을 보며 향기에 취해도 보고 꽃샘추위를 만나 콧물을 질질 흘리기도 했다. 지난 한두 달 동안 온몸이 찌뿌드드하여 한의원을 찾게 된 것은, 어쩌면 동네 뒷산이 부르는 신호였는지 모르겠다.
상봉서동 진주여고 네거리에서 진주보건대학 가는 중간에 ‘술 익는 마을’이라는 술집이 있다. 주인장이 직접 빚은 동동주가 입맛을 당긴다. 약간 시금한 게 제대로다. 어지간히 마셔도 뒷날 머리가 아프지 않다고들 한다. 동동주 맞춤형 안주들도 싸다. 이 집을 처음 알게 된 건 지인의 소개 덕분이지만 그 뒤로 자주 가게 된 건 술집 이름 때문이다.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나그네’라는 시에서 따온 이름이다. 술집 안에 경상대 어느 노 교수가 써 준 이 시 표구가 있었다.“강나루 건너서 / 밀밭 길을 //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 /
p.p1 {margin: 0.0px 0.0px 0.0px 0.0px; text-align: justify; font: 10.0px 'Nanum Gothic'}p.p2 {margin: 0.0px 0.0px 0.0px 0.0px; text-align: justify; font: 10.0px 'Nanum Gothic'; min-height: 11.0px}난 드보르작을 참 좋아한다.우선, 드보르작하면 가장 유명한 신세계교향곡을 떠올리지만 나는 그 앞 번호가 붙은 8번을 더 좋아한다.그러다 보니 내 핸드폰 벨소리도 이걸로 설정해 놨다
바람이 차다 못해 살을 엔다. 잠바 뒤편에 있는 모자로 머리를 푹 덮어도 차가운 바람을 제대로 막지 못한다. 그런 추위에 2월 5일, 진주시 수곡면으로 떠났다. 가는 동안 만난 진양호 덕분에 마음은 차분해졌다. 지나온 일상들을 가는 동안 곱게 접어두었다. 수곡면사무소 가기 전 요산마을이 나온다. ‘진주 묘엄사지 삼층석탑(晋州妙嚴寺址三層石塔)’ 이정표를 보고 차를 세웠다. 마을 경로당 앞에는 어르신들이 의지하면서 함께 온 보행기들이 기다리며 나란히 서 있다. 300여m를 들어가면 10여 채의 주택 사이로 우뚝 솟은 탑이 보인다. 탑
점수 주기 위한 ‘점수 자판기’로 알았다. 누워서 떡 먹다 체할까 도덕 과목은 공부하지 않아도 점수는 많이 나왔다. 한 때는 도덕 과목을 만만하게 보기도 했다. 그러나 안다. 배운 것을 행동으로 옮기기는 얼마나 어려운지를. 조선시대 도덕 교과서와 같았던 『소학(小學)』을 실천하며 살았던 진짜 ‘소학군자’가 있었다. 소학군자를 찾으러 매서운 바람이 불었던 2월 5일에 차를 몰았다. 진주~하동 국도를 따라가다 진양호를 가로지르는 진수대교를 건너 수곡면 사무소를 지나 산청군 단성면 쪽으로 향하다 대각마을에서 멈췄다. 진주 시내에서 승용차
진주시 가좌동 석류공원에서 칠암동 고려병원까지 오 리 남짓한 길에는 추억이 흩어져 있다. 추억은 아름답다. 하지만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다. 추억인가 생각하며 가만히 돌이켜보면 그건 역사이고 삶이고 반성과 후회이다. 왜 그런가. 걸어가자니 바람이 차고 버스를 타자니 너무 순식간이어서 정나미 떨어지고, 기억과 회상으로 더듬어 본다.뒤벼리와 쌍벽을 이루는 멋진 길인 새벼리는 많은 사고로 얼룩져 있다. 눈 내린 날 새벼리엔 어김없이 인도로 올라간 차, 그 자리에서 빙글 돌아앉은 차, 앞차를 들이받은 차들을 만나게 된다. 속도제한 단속 카
대한이다. 큰 대(大), 추울 한(寒)이다. 일년 가운데 가장 추운 날이라서 붙인 이름이다.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대한이 소한(小寒)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었다’는 속담이 있다. 실제 소한은 1월 5일이었는데 매우 추웠다. 대한인 1월 20일은 포근했다. 겨울 날씨가 퍽 따뜻한 걸 ‘푹하다’고 한다. 대한인 1월 20일은 좀 푹했다.백만년 만에 석갑산 갈 마음을 먹는다. 백만년이라. 무심코 불쑥 ‘좀 긴 기간’을 말할 때 ‘백만년’이라는 말을 곧잘 쓴다. 왜 우리는 백만을 좋아하는 걸까. 백만 송이 장미, 백만장자, 육
‘숯골마을’이 있다. 지리산 아래가 아니다. 집현산 아래도 아니다. 진주시 신안동이다. 진주시 신안동이라면 진주에서는 알아주는 주거단지다. 고층 고급 아파트들이 줄 지어 있고 법원과 검찰청이 있는 곳이다. 그런 신안동에 숯을 굽는 숯골마을이라니. ‘국민주택단지’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진주시 신안동 숯골마을은 왜 숯골이 되었는지, 국민주택단지는 왜 국민주택이 되었는지 잘은 모르겠다.국민학교에서 국민교육헌장 외우며 국민의례를 하고 국민체조를 배우던 세대는 ‘국민’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일단 좋은 것으로 받아들
눈이 내렸다. 내린 시간은 짧았다. 하늘은 시커멓고 땅은 하얬다. 눈은 얇았지만 자동차 바퀴는 두꺼웠다. 땅윗것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눈들은 납작 엎드렸다. 얼어붙었다. 미끄러웠다. 사람들은 종종걸음을 놓았다. 운전대 잡은 사람들은 두 눈을 부릅떴다. 눈사람 만들기 따위는 사치다. 눈싸움도 딴 나라 이야기다. 눈은 희지만 마음은 어둡다. 눈은 예쁘지만 그 속살은 고통일 수 있다. 1989년 10월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어디쯤이다. 새벽 보초를 나가는데 총은 관두고 빗자루를 들란다. 내무반에서 방한화 신고 문을 여는데
희망이 넘치는 1월이다. 지난 해보다 더 나은 한 해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되새기고 싶어진다. 지나온 세월의 두께만큼 넉넉한 인심으로 품어주는 공간에서 느긋한 여유 속에 몸을 맡겨보고 싶었다. 1월 5일,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서 어슬렁거리며 시간 사치를 누리며 평화를 얻었다. 평화 너머 의를 실천한 이들을 만났다. 삼가면 소재지로 들어가는 삼가회전교차로에 서면 어디로 갈지 고민이 생긴다. 대구와 합천 가는 길은 물론이고 합천호 관광지 25km를 비롯해 창의사, 황매산군립공원, 해인사, 오도산자연휴양림, 합천박물관, 이주홍어린이문학
2666대 1. 올해 중국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다. 우리나라도 지난 해 9급 국가공무원 공채 필기시험에 17만 명이 몰려 역대 최다 응시인원 신기록을 이뤘다. 나 역시 아이들의 장래 희망과 자질을 고려하지 않고 ‘밥벌이’ 수단으로 아이들에게 슬며시 권했다. 부끄럽다. 부끄러운 마음을 씻고자 1월 5일, 임금에게 직언을 아끼지 않았던 남명(南冥) 조식(曺植 : 1501~1572) 선생을 뵈러 경남 합천 삼가로 향했다. 진주에서 합천으로 가는 국도 33호선을 타고 가다 의령군 대의면 대의교차로에서 빠져나와 인근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外
2018년 1월 1일 첫날 다솔사로 간다. 집 근처 석갑산에서 해맞이를 하고 돌아온 아내는 부지런히 떡국을 끓였다. 목욕 갔다온 아들도 옷을 갈아 입고 신발을 신었다. 다솔사 갔다가 진주 어디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기로 예정하고 나선 길이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차지 않았다. 이런 날씨마저 한 해의 복을 점지해 주는 것같이 느껴진다. 진양호 지나 사천, 하동으로 빠지는 국도 2호선엔 새해 나들이 차량이 줄을 이었다. 막히지는 않았다. 그런 길을 보면서도 ‘올해는 모든 일이 막힘 없이 술술 풀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뜬금없지만
홈플러스에서 옛 법원 앞으로 걸어간다. 법원 근처에서는 진양교를 건너기도 하고 뒤벼리를 지나기도 한다. 약속 장소가 법원 앞에 있기도 하고 진양교 건너 경남과기대 건너편에 있기도 하고 시내에 있기도 한 때문이다.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 옛 법원과 검찰청 건물은 언제쯤 귀신이 출몰할지 기다리는 듯 괴괴하다.이 길은 일주일에 한두 번은 걷게 되는데, 매번 다른 길을 걸으려고 노력한다. 한 번은 시청 뒷길로만 가고, 한 번은 중간에 자유시장 쪽으로 내려서고, 한 번은 일부러 시청 1층을 통과하고 이런 식이다. 그런 재미가 있다. 골목골목
지난 11월 22일 러시아 출신의 세계적인 바리톤 가수 드미뜨리 흐보로스또프스키가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러시아를 누구보다 사랑했고 여행 중에는 항상 체홉을 읽었다는 그 휘날리는 은발의 바리톤이…….러시아어를 전공한 나는 그의 갑작스런 죽음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나의 러시아어는 그의 멋진 노래에 일부분 빚을 지고 있기도 하거니와 그의 노래를 이젠 실제로 들을 기회조차 없어져버린 허무함 때문이기도 했다.그 누구보다 러시아를 사랑했기에 그의 음반 목록에는 순수 클래식 음악이 아닌 대중적인 곡이나 러
봄날씨였다. 목욕하자마자 따뜻하게 입고 나선 탓이었을 것이다. 어쩐지 바람은 포근했고 햇살은 넉넉했다. 2~3월 해토머리처럼 희뿌연 안개가 가득했다. 황사였을까. 후배가 결혼식을 올리는 포시즌까지 왕복하기로 했다. 그러자면 천수교와 진주교 사이를 자연스럽게 왔다 갔다 하게 생겼다. 신안동 강가에는 내년 유등 축제를 기다리는 낡은 등들이 모여 있다. 한 해 내도록 오가는 사람들의 찌푸린 눈살을 어찌 견딜지 걱정이다. 큰비라도 온다면 떠내려가지나 않을지도 걱정이다. 이런 걱정을 내가 왜 하는지 잠시 우스워진다. 노란 은행잎 떨어진 강둑
토요일인데도 6시에 눈을 떴다. 대아고등학교 2학년 녀석이 진주성 ‘창렬사’(彰烈祠)에 참배 가는 날이라고 한 때문이다. 깨워주는 건 기본이고 어영부영 늦어지면 태워주기도 한다. 걷는 것도, 택시 타는 것도, 버스 타는 것도 어중간한 거리 때문이다. 한 해에 두세 번 가는 것 같은데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내년 3학년이 되면 다른 의미를 가지고 창렬사를 찾게 될 것이다. 그건 그때 이야기하기로 하고. 태워주고서는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참배 마치고 전화하면 다시 데리러 가기도 하고 올 땐 여유가 있으니 걸어서 오기도 했
눈이 내렸다. 솜털 눈이 내렸다. 11월 21일, 산청군 단성면 목화 최초 재배지 앞에 차를 세우고 바라보는 풍경은 따뜻한 겨울이다. 목화 최초 재배지 기념관 앞 목화밭은 팝콘을 터뜨린 듯 환한 목화꽃이 세상을 하얗게 만든다. 보는 것만으로도 따뜻하다. 솜털을 입은 듯 따뜻한 기분으로 기념관을 들어섰다. 온통 별들이 땅에 내려왔다. 익어가는 가을 따라 하늘의 별을 닮은 단풍나무 잎들이 카펫처럼 펼쳐진다. 잠시 별들 속에서 지내다 나왔다. 기념관을 나와 인도를 따라 옆으로 따라가다 산청특산물 판매장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주차장
p.p1 {margin: 0.0px 0.0px 0.0px 0.0px; font: 10.0px Times}p.p2 {margin: 0.0px 0.0px 0.0px 0.0px; text-align: justify; font: 10.0px Times}2000년 늦가을, 나는 모스크바에 있었다.첼로 음악을 유독 좋아하는 나는 그 해 모스크바 시내에서 "다닐 샤프란 추모음악제"를 한다는 정보를 듣고는 거의 모든 음악회에 갔었다. 급기야는 사회자가 관객들에게 일부러 인사까지 시켜주는 영광스런 일까지 있었다.음악제 개막식 날, 덩치가 아주
고슬고슬 불어오는 가을바람은 머리를 맑게 한다. 덩달아 걸음을 바삐 옮길 수 없었다. 진주시 금산면 ‘금호지’보다는 ‘금산연못’이 더 친근한 나는 11월 20일, 걷다가 멈추었다가 다시 걸었다. ‘금호지 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연못으로 걸음을 옮겼다. 수질정화용 부레옥잠도 갈색빛을 띄우고 잠들었다. 주차장 한 쪽에 인근에서 농사지은 채소 등을 팔려고 나온 아주머니들이 햇살을 등지고 나란히 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외상도 받아준다는 무인판매대에 이르자 진주 정씨 재실인 계양제로 해서 월아산 국사봉으로 가는 길과 연못가 둘레길이
어제는 점심 먹고 너무 졸려서 잠시 눈 좀 붙이고 나설 참이었는데 깨고 보니 네 시가 넘은 데다 중간에 어머니로부터 국 먹으러 오라는 기별을 받은지라 속절없이 한나절이 날아가 버렸다. 긴 연휴의 20분의 1이 날아간 셈이다. 곁에서 졸면서 텔레비전 보던 아내도 석갑산이라도 다녀오자 하였다가 하는 수 없이 포기하였다. 아쉬움은 오랫동안 맴돌았다.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맛있는 음식과 동동주를 제대로 한 잔 하였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더라면 더욱 억울할 뻔했다.하여, 마지막 휴일인 오늘은 아침부터 하늘을 살피며 단단히 마음먹는다. 오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