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봉아파트 재건축이 추진된다고 한다

상봉서동 진주여고 네거리에서 진주보건대학 가는 중간에 ‘술 익는 마을’이라는 술집이 있다. 주인장이 직접 빚은 동동주가 입맛을 당긴다. 약간 시금한 게 제대로다. 어지간히 마셔도 뒷날 머리가 아프지 않다고들 한다. 동동주 맞춤형 안주들도 싸다. 이 집을 처음 알게 된 건 지인의 소개 덕분이지만 그 뒤로 자주 가게 된 건 술집 이름 때문이다.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나그네’라는 시에서 따온 이름이다. 술집 안에 경상대 어느 노 교수가 써 준 이 시 표구가 있었다.

“강나루 건너서 / 밀밭 길을 //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 // 길은 외줄기 / 남도 삼백리 // 술 익는 마을마다 / 타는 저녁놀 //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

절창이다. ‘밀밭길을 걸어가는 유유자적한 나그네의 모습’, ‘달관의 경지에 이른 나그네의 모습’ 따위 말들을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기억이 난다. 저녁놀과 어울린 술 익는 마을의 모습을 떠올려 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학생 때부터 입에 침이 고였다. 모르긴 해도, 이 시 덕분에 주도의 세계로 뛰어든 청춘들이 제법 있을 것이다.

이 시는 조지훈의 ‘완화삼’이라는 시에 화답하여 지은 시다. 어쩐 일인지 ‘완화삼’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이방원의 ‘하여가’, 정몽주의 ‘단심가’처럼 짝을 이뤄 배워야 하는 건데 그 까닭을 알 수 없겠다. ‘완화삼’에도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라는 구절이 있다.

‘나그네’는 1946년 <상아탑> 4월호에 발표했다고 한다. 1946년이면 광복한 지 1년쯤 되었을 때다. ‘강나루 건너 밀밭길을 구름이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는 어떤 사람인지, 그 혼란하던 시절에도 마을마다 술이 익어갔는지는 모르겠다. 광복 후 정치적으로 격동기를 겪을 때 유유자적 밀밭길을 걸어가는 사람, 그가 가는 곳마다 술이 익어간다는 설정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아무튼 ‘술 익는 마을’에서 조개탕, 명태찜, 해물파전, 땡초전, 서대구이, 두부김치 따위 안주를 종류별로 줄줄이 시켜 먹고 일어서면 제법 취한다. 한 사람이 한 되씩 마시면 딱 좋다. 이제 집으로 걸어갈 시간이다. ‘술 익는 마을’에서 신안동 숯골까지 걸으면 대략 40~50분 정도 걸린다. 요즘처럼 날씨가 추울 때나 너무 더운 여름에는 택시를 타는 게 좋다.

얼큰하게 취하여 걷노라면 비봉산 바람이 쫓아와 등을 어루만져 주고 저 멀리 남강 바람도 달려와 콧등을 간지럽힌다. 주정뱅이 술꾼들에겐 그보다 더 맛있고 멋진 풍경이 없을 것이다. 그리 높지 않은 건물들은 식당, 휴대폰 가게, 편의점, 투다리ㆍ간이역 같은 꼬치집, 돼지국밥집, 국숫집 따위 들이다. 2층에는 노래방도 더러 있다. 미장원도 있고 이발소도 보인다. 그런 풍경을 게슴츠레 바라보며 휘적휘적 걸어가다 보면, 강나루 건너 밀밭길을 걸어가는 나그네의 심정을 조금은 알 만도 하겠다.

광복 후만큼은 아니지만, 어지간한 정치적 격변기를 겪고 있는 21세기 대한민국, 지방의 한 중소도시, 그것도 80년대 풍경을 간직한 외곽에서 동동주에 취하는 심정은 그 나그네와 진배없을 것이라고 여겨 본다. 그렇게 몇 걸음 걷다가 매번 나도 모르게 우뚝 멈춰서곤 한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튼다. 상봉아파트다. 진주에 사는 웬만한 사람이라면 상봉아파트를 안다. 어떻게 아는가.

1979년 말, 그러니까 내가 숲골이라는 시골에서 진주로 이사오던 당시, 그러니까 박정희라는 독재자가 심복의 총에 맞아 비명횡사하던 그해 상봉아파트는 많은 진주 사람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상봉아파트는 1979년 6월 준공했다. 열세 평 5층 아파트 650세대는 주택공사가 지은 진주의 첫 아파트로 알려져 있다. 이현동 주공아파트는 1983년 12월 준공했고, 가마못 메운 터에 세워 올린 상봉2아파트는 1986년 무렵 준공했다.

시외버스터미널 건너 원예농협 근처에서 학교 통학버스를 탔다. 아침 6시 30분 즈음이다. 버스는 진주향교 앞을 지나고 봉래초등학교 앞을 지나고 진주여고 앞을 지나 마침내 상봉아파트 앞을 지난다. 상봉아파트에서는 불어 선생님, 수학 선생님을 필두로 제법 있어 보이는 집안의 아들들이 탔다. 꾀죄죄함, 궁상스러움, 옹졸함 따위 느낌과는 아예 거리가 먼 멋진 친구들이었다. 대개 공부도 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상봉아파트가 선망의 대상이 되게 하는 데 기여한 사람들이다.

1998년 결혼을 앞둔 봄날 전셋집을 얻기 위해 변두리를 이잡듯 헤집고 다녔다. 주택은행 대출로 얻는 전세여서 비싼 곳은 어림없고 당분간 단둘이 살 것이어서 넓은 집도 필요치 않았다. 열세 평이나 열다섯 평 정도면 딱 좋았을 시절이다. 상봉아파트도 가 보았다. 상봉아파트는 그때 벌써 재개발 이야기가 나온 터여서, 더 큰 빚을 얻어 사 놓으면 돈이 되려는가 싶은 생각도 하긴 했다. 결국 평거동 주공아파트 열세 평에 둥지를 틀었다. 상봉아파트는 신혼부부, 진주에 장기간 출장 와 있는 외지 사람들, 하릴 없고 갈 곳 마땅치 않은 노부부들이 많이 살았고,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에 터잡아 살던 토박이들도 제법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런 상봉아파트를 보면 한숨부터 나왔다. 취하던 술이 깨는 기분도 느낀다. 고등학교 때 추억, 신혼 때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연탄을 때던 아파트여서 겨울철이면 어김없이 연탄가스 중독 사고가 일어나던 곳도 상봉아파트였다. 연탄을 기름보일러로 바꾼 집도 제법 많았는데, 2018년 아직도 연탄을 때는 집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상봉아파트는, 일일이 기억하진 못하지만 재건축 이야기가 몇 차례나 나왔다가 무산되곤 했다. 주민들의 이해관계, 업자들의 이해관계, 주민과 업자와의 이해관계가 꼬인 실타래가 되었고 갑론을박 끝에 싸움판만 몇 번 벌어진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 한숨만 나오지.

그런 상봉아파트 재건축이 다시 추진된다고 한다. 추진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시행할 업체가 정해졌는지를 잘 모르겠기에 ‘추진된다’고 쓴다. 언론들은 ‘경남 진주지역 첫 주공아파트인 상봉동 1차 주공아파트가 또다시 재건축을 추진하고 나서 성사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부산일보)고 썼다. 진주 첫 주공아파트라는 점, 재건축을 추진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 정말 이번에는 잘 이루어질까 하는 걱정 같은 게 한 문장에 다 들었다. ‘아파트 소유주들로 구성된 추진위원회는 사업지 인근 서부새마을금고 3층에 사무실을 개소한 상태’라고 하니 이번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지은 지 40년이 흘러 2017년 9월 진주시로부터 안전진단 디(D) 등급을 받아 재건축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온 터다. 그동안 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떠나고 떠나고 또 떠났다. 그 떠난 자리를 다른 사람이 찾아들고 이사들고 둥지 틀었다. 40년이라면 한 세대보다도 긴 세월이고 한 아파트 건물이 낡고 닳고 깎이고 해어져 위험에 처할 만한 기간이기도 하다. 아파트 주인들은 크지도 않고 높지도 않은 아파트 하나를 붙들고 값이 오르기만 무작정 기다린 것인지, 젊을 적 팽팽히 부풀어오르던 부자의 꿈을 쉽게 버리지 못해 장탄식을 놓고 있었던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려 재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면, 여기 사는 주인 아닌 사람들은 구름에 달 가듯이 소리 없이 소문 없이 떠나갈 것이다. 어떤 이는 아파트 귀퉁이에 퍼질러 앉아 동동주라도 한잔하고 싶어할 것이다. 어떤 이는 수십년 전 연탄가스로 불귀의 객이 된 가족이나 친척들 이름을 부르며 목놓아 울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신혼의 단꿈을 안고 이 아파트에 세 들었다가 고진감래 자수성가 큰돈 벌어 멋지고 큰 아파트로 옮아간 자부심을 느낄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값 쌀 때 사두었다가 재건축되면 천정부지로 금이 오를 것을 기대했는데 드디어 모진 꿈이 헛되지 않아 일확천금을 누릴 수 있게 되었노라 자랑할지도 모르겠다.

모든 일이 순리대로 풀려 초고층 아파트가 이 자리에 들어서게 되면, ‘술 익는 마을’ 동동주에 잦아들던 비봉산 바람도 아파트 콘크리트 벽에 튕겨나가고 술꾼들 어깨 간지럽히던 남강 바람도 아파트 유리에 반사되어 버릴지 모른다. 나지막히 자리한 상봉동 주택 건물들도 덩달아 키높이를 재려 할 것이고 제각각 이름과 사연을 갖고 있던 가게들은 하나씩 둘씩 프랜차이즈 가맹점으로 탈바꿈하여 밤늦도록 네온사인 불을 끄지 않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건 누구에게는 축복일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섭섭함일 것이고 또 몇몇 사람들에게는 귓가에 속삭이는 악마의 유혹처럼 들릴 것이다.

나는, 약속 시간 맞춰 ‘술 익는 마을’에 들어갈 때 문득 진주보건대학 방향으로 쳐다보면, 발갛고 노랗고 누렇고 하얗고 다시 빨갛게 타 들어가던 저녁노을을, 어쩌면 아파트 높이에 가려 더 이상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술 익는 상봉동의 타는 저녁노을이야’라고 노래해 줄 수 없는 나는 무척 아쉽지만, 아주 많은 사람에게는 그건 ‘그러거나 말거나’ 한 일일 것이다. 상봉아파트 많은 주민들의 앞날에 밝은 햇살이 환하게 비추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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