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오후 풍경 너머로 의(義)를 실천한 사람들을 만나다

합천 삼가면 걷기 김종신 기자l승인2018.01.09l수정2018.01.10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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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온 세월의 두께만큼 넉넉한 인심으로 품어주는 공간에서 느긋한 여유 속에 몸을 맡겨보고 싶다면 합천 삼가면을 거닐면 좋다. 삼가면 소재지로 들어가는 입구에 합천 삼가 황토한우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먼저 반긴다.

 

희망이 넘치는 1월이다. 지난 해보다 더 나은 한 해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되새기고 싶어진다. 지나온 세월의 두께만큼 넉넉한 인심으로 품어주는 공간에서 느긋한 여유 속에 몸을 맡겨보고 싶었다. 1월 5일,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서 어슬렁거리며 시간 사치를 누리며 평화를 얻었다. 평화 너머 의를 실천한 이들을 만났다.

 

▲ 합천 삼가면 체육공원으로 가는 다리

 

삼가면 소재지로 들어가는 삼가회전교차로에 서면 어디로 갈지 고민이 생긴다. 대구와 합천 가는 길은 물론이고 합천호 관광지 25km를 비롯해 창의사, 황매산군립공원, 해인사, 오도산자연휴양림, 합천박물관, 이주홍어린이문학관 가는 이정표가 두 눈을 붙잡는다. 더구나 교차로 근처 삼가교 앞에는 황소 두 마리가 서 있다. 합천 삼가 황토한우를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 합천 삼가면 양천강변에 ‘애향’이라고 씐 큰 돌이 서 있다. 지역 출신들의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이 새겨져 있다.

 

다리를 곧장 건너지 않았다. 삼가체육공원 축구장 근처에 차를 세웠다. 양천강을 가로지르는 늘씬한 다리를 힘차게 두 다리로 건넜다. 강을 건너 체육공원을 가로질러 면소재지로 향했다.

‘만류제(萬柳提)’를 알리는 세움 간판이 걸음을 세운다. 삼가 시내를 둘러싸고 있는 둑의 이름이다. 옛날에 지대가 낮아 양천강이 범람하는 일이 잦자 둑을 쌓고 버드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둑의 이름이 버드나무가 가득 있는 강둑, 만류제란다.

양천강 둑의 유래를 알려주는 세움 간판 옆에는 ‘우리 고장 삼가는~’으로 시작하는 ‘애향’이라고 씐 큰 돌이 서 있다. 지역 출신들의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이 새겨져 있다.

 

▲ 합천 삼가면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했던 길이다.

 

삼가면(三嘉面)은 삼한 시대에는 반사해국(半斯奚國 또는 斯二岐國)이란 부족국가의 옛터다. 고려 때는 삼기현(三岐縣)과 가수현(嘉樹縣)으로 나누어져 있었던 것을 조선 태종 14년(1414年)에 첫 글자를 따 삼가라 불렀다고 한다. 고려조 이후부터 삼가현의 현청을 현재의 삼가 쪽으로 옮기고 현감을 두었는데, 1914년 합천군에 병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구름이 부메랑처럼 시원하게 푸른 하늘에 걸렸다. 그 아래에‘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라는 이정표가 서 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삼도수군통제사에서 쫓겨나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정유년(1597년) 4월 4일 옥살이에서 풀려나며 백의종군을 명 받은 충무공은 옥살이에서 풀려난 한양을 출발해 6월 2일 삼가에 도착해 장맛비로 이틀간을 관사에서 묵었다.

 

▲ 합천군 삼가면 시내로 들어갈수록 한우 고장답게 반갑게 인사하는 한우캐릭터가 자주 눈에 띈다. 한우캐릭터만큼이나 식육식당이 줄을 잇는다.

 

길 하나가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시내로 들어갈수록 한우 고장답게 반갑게 인사하는 한우캐릭터가 자주 눈에 띈다. 한우캐릭터만큼이나 식육식당이 줄을 잇는다. 고소한 곰탕 냄새에 침이 고인다. 삼가시장 한 쪽 양지바른 가게 안에는 할아버지 4명이 작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둥그렇게 앉아 햇볕을 안주 삼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 합천군 삼가면 시내를 걷다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어슬렁어슬렁 걸었다. 넉넉한 인심으로 품어주는 공간에서 느긋한 여유 속에 평안을 얻는다.

 

걷다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어슬렁어슬렁 걸었다. 넉넉한 인심으로 품어주는 공간에서 느긋한 여유 속에 평안을 얻는다. 가회면 쪽으로 가는 길에 적산가옥처럼 생긴 ‘선금당’을 돌아가자 우체국이 나온다. 우체국 앞에는 수정정(水晶亭)이라는 더위 식히며 놀기 좋은 정자가 나온다. 정자 옆 아름드리나무 두 그루는 세월을 이겨내고 이곳이 옛 삼가현 자리였음을 말없이 알려준다.

 

▲ 합천군 삼가면 시내 골목을 지나면 금방이라도 양천강을 만날 수 있다.

 

근처에 있는 기양루는 그냥 지나쳤다. 골목을 지나자 다시금 강이 나온다. 그렇게 강은 멀리 있지 않았다. 강을 따라 둑길을 걸었다. 겨울 물새들이 한가로이 떠다닌다. 그들처럼 쉬었다 움직인다. 때로는 한참을 그대로 멈췄다. 산책로 바닥에서 한우 캐릭터가 웃으며 반긴다.

 

▲ 합천 삼가면 양천강변 산책로

햇살에 샤워하듯 거닐다 우뚝 선 '삼가장터 3·1 만세운동 기념탑'에 섰다. 1919년 음력 2월 17일과 22일, 삼가·쌍백·가회면민들이 3·1 만세운동을 벌였다. 40여 명이 순국했고, 150여 명이 다쳤다. 50여 명은 옥고를 치렀다.

 

▲ 합천군 삼가면 '삼가장터 3·1 만세운동 기념탑'과 광장 도서관인 ‘백옥당’

 

탑 아래에는 1908년 정미의병 순국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박수길 김팔용 이차봉·소봉(산포수) 김화숙·찬숙 한치문 김우옥 김응오 장명언 성만석 심낙준 이두익 전성구 김상래 열사 등이 ‘삼가의병단(三嘉義兵團)’을 조직하여 주재소와 우편소 습격과 군자금 모집 등 항일 독립투쟁한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 '삼가장터 3·1 만세운동 기념탑'

 

또한 삼가장터 3·1만세운동 때 순국하신 칠순의 공재규 선생을 비롯한 권영규 김기범 윤성현 이상현 박선칠 박병규 배숙원 이낙현 최도인 박종생 열사와, 옥고를 치른 이계엽 오영근 윤규현 정연표 한필동 진택현 최용락 정각규 공민호 정희영 김병효 김석순 열사, 중상을 입은 임종봉 선생을 비롯한 안명조 이우광 윤경문 이기우 이기진 이강영 이원백 구영문 김기홍 김주익 열사, 만세의거를 지원하고 기획한 이원영 김홍석 윤재현 김태현 윤병모 이상동 허정모 허장 정원규 정치규 김전의 정방철 정현국 변용규 열사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애국지사들을 우리는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돌에 새겨져 있다.

 

▲ '삼가장터 3·1 만세운동 기념탑'에 새겨진 당시의 만세 운동 모습

 

기념탑 바로 옆에 ‘밝고 장대하고 신령스러운 집’이라는 백악당(白岳堂)이 있다. 절개를 숭상한 남명선생과 3‧1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3‧1광장 도서관이다. 문은 닫혀 있었다. 연락하면 금방이라도 올 듯 연락처가 믿음직하게 적혀 있다.

 

▲ '삼가장터 3·1 만세운동 기념탑' 광장 앞 하늘을 쳐다보았다.시내로 들어올 때 본 구름이 배인 양 푸른 하늘에 둥실 떠있다. 그 아래로 양천강이 잔잔히 흘러간다. 문득 여기에서 태어난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1572)의 민암부(民巖賦)를 떠올렸다.

 

광장 앞 하늘을 쳐다보았다.시내로 들어올 때 본 구름이 배인 양 푸른 하늘에 둥실 떠있다. 그 아래로 양천강이 잔잔히 흘러간다. 문득 여기에서 태어난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1572)의 민암부(民巖賦)를 떠올렸다.

“배는 물 때문에 가기도 하지만, 물 때문에 뒤집히기도 한다네. 백성이 물과 같다는 소리, 옛날부터 있었다네. 백성들이 임금을 떠받들기도 하지만, 백성들이 나라를 뒤집기도 한다네~임금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편안하게 되기도 하고, 임금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위태롭게 되기도 한다네. 백성들의 마음 위험하다고 말하지 마소. 백성들의 마음은 위험하지 않다네.”

 

▲ 합천군 삼가면 양천강변 산책로

 

불의를 보고도 분노하지 않는 건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분노를 행동으로 옮긴, 의를 실천한 남명선생의 정신이 여기에 살아 숨쉰다. 다시 돌아다보는 삼가의 오후는 한없이 평화로웠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된다. 목숨을 바쳐 의를 실천한 사람들을.


김종신 기자  haechanso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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