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BWV 1007-1012

2000년 늦가을, 나는 모스크바에 있었다.

첼로 음악을 유독 좋아하는 나는 그 해 모스크바 시내에서 "다닐 샤프란 추모음악제"를 한다는 정보를 듣고는 거의 모든 음악회에 갔었다. 급기야는 사회자가 관객들에게 일부러 인사까지 시켜주는 영광스런 일까지 있었다.

음악제 개막식 날, 덩치가 아주 큰 첼리스트가 작은 홀에 허겁지겁 들어서자마자 땀을 뻘뻘 흘리며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홀에서 느끼는 첼로 솔로의 울림은 전율 그 자체였다.

이 때 연주했던 첼리스트는 보리스 페르가멘쉬코프. 위대한 첼리스트 다닐 샤프란이 차이콥스키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있을 당시 첼로 부문 우승자였다. 그날 독일에서 비행기로 모스크바에 도착하자마자 연주장에 나타난 것이다. 스승을 추모하는 음악제이니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이 날 이후 거의 10년만에 페르가멘쉬코프가 연주한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CD의 비닐을 벗기고 플레이어에 올리는 순간 내 마음은 타임머신을 타고 10년 전으로 간 기분이었다!

▲ 연주회가 끝나고 싸인회에서 만난 이상 엔더스 그리고 그의 음반

2015년 (12월 3일) 또 한 명의 첼리스트를 만나고 왔다. 1988년생이니 아직 20대의 청춘인 이상 엔더스! 20대 초반에 벌써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에서 최연소 첼로 수석으로 4년을 보내기도 했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그다. 2년 전 우연히 그가 연주한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연주를 듣고는 쏙 빠져버렸다.

그 당시 전곡 연주회를 여러 사정으로 미처 보지 못했던 아쉬움을 단숨에 씻어줬다. 나보다 열 여덟이나 어린 나이에 마음 속에서 나오는 여러 표현들을 할 수 있는 것이 참으로 부럽기까지 했다.

이번 연주회의 가장 큰 수확은 평소 자주 듣지 않았던 제5번 모음곡에서 느낀 느림의 미학이었다. 음반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아우라를 보았다고 해야 할까?!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첼리스트들의 오랜 숙제였으니 명연주자들은 거의 모두가 음반을 내 놓고 있다. 그리고 우리 일상 속에 알게 모르게 들어와 있는 음악이기도 하다. 광고에 드라마에 그리고 영화에까지 두루두루 쓰이니 한 번만 들어도 "아~ 이거!" 할 것이다.

몇 몇 내가 좋아하는 음반들을 소개하자면 가장 표준적인 연주라 할 수 있는 피에르 푸르니에의 연주(D.G)를 들고 싶다. 처음 들은 뒤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음반이기도 하다. 그리고 앞에 소개했던 러시아 첼리스트 보리스 페르가멘쉬코프(hanssler)와 이상 엔더스(SONY)를 들 수 있겠다.

또한 어느 음악평론가가 "바흐의 사라방드는 포르노다!"라 일갈한 연주자 쟝-막스 끌레망(DECCA)의 독특한 연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주다. 이 외에도 바로크 첼로로 연주한 안너 빌스마(SONY)의 연주는 고아한 음색이 일품이다.

그리고 또 한 장을 추가한다면 러시아의 미녀 첼리스트 니나 코토바(warner classics)를 들어보기를 권한다. 그녀는 미모 덕에 지금 모델 활동도 하지만 첼리스트로서도 최고이다.

이제 깊어가는 겨울 밤, 따뜻한 커피 한 잔과 바흐가 함께 한다면 이 고난의 계절에 그나마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클릭) 바흐 무반주 첼로 곡 No.1-Prel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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