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부터 초가을에 비가 잦아 가을농사가 늦게 시작되었습니다. 그 궂은 지난 계절의 날씨와는 달리 깊은 가을 날씨는 연일 맑아서 고맙다고나 할까요? 짧은 기간에 가을 파종을 하려 하니 곁눈질 한번 못하고 내리 일해야 했습니다. 귀촌한 지 4년째 접어든 이웃도 농사의 양을 조금 늘렸습니다. 풍경 좋은 바닷가 펜션 마을에 이사를 했더라면 필경 펜션 일을 했을 분들이, 공기 좋다고 우리 마을로 이사 온 바람에 농사꾼 이웃과 더불어 살며 텃밭농사를 조금 늘리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거의 전업농 수준으로 거듭났습니다.새내기 농사꾼 부부는 갑자기
북사동은 진주와 사천이 경계로 삼은 두량못 가장자리에 옹기종기 둘러붙은 마을이다. 거기 보건진료소에서 36년을 소장 소임으로 녹아 산 이가 박구경 시인이다. '진료소가 있는 풍경'이 공무원 문예대전에서 행정안전부 장관상을 받으며 북사동은 박구경과 함께 두루 알려졌다.한가락하는 서울의 문사들이 겨끔내기로 북사동을 댕겨갔다. 박구경은 천릿길 찾아온 이 노객들 시봉에 지극정성이었고 진주의 동류들은 함께 어울렸다. 구중서, 신경림, 민영, 박시교, 정희성, 김영재, 황명걸, 박이엽, 배평모 등 유명짜한 원로의 육필이 진료소 골방 방명록에
국제통화기금(IMF)은 7월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4%로 발표했다. 이는 지난 4월 발표보다 0.1% 낮아진 결과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2년 연속 평균 성장률이 2% 미만으로 떨어진 것으로, 문재인 정부 시기 3.03%에도 못 미친다. 내년 경제 상황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IMF는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2.4%에서 2.2%로 다시 낮췄고, OECD는 한국의 내년 잠재성장률은 1.7%로 더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1년 잠재성장률이 5.4%였던 것을 고려하면 20년 만에 3분의 1 토막 난 것이다.우
"고성읍 시장 근처에 가면 원래의 실비집들을 볼 수 있습니다. 맥주 한 병 시키면 안주 좀 주고 더 시키면 안주가 더 추가되는 식의... " 요즘 진주에는 실비집이 사라져 가는 듯하다는 나의 페이스북 글에 페친이 단 댓글이다.요즘은 고성 사천 삼천포 등지에 원래의 옛날식 실비집이 성업 중이라고 한다. 진주에는 실비집이 많이 없어졌다. 인터넷에 실비집을 검색하면 '삼천포 실비집', '사천 실비집'이 가장 앞에 뜨고 '진주 실비집'은 저 뒤로 밀려 보이지 않는다. 물론 실비집은 전국 바닷가 도시에는 대부분 있다. '군산 실비집', '마
금목서 향기에 취한 가을, 진주시 진양호로 한 가정집에서 금목서 한 그루를 보았다.나무 한 그루에서 퍼지는 향기가 바람결에 날려 유혹하는데 입소문 타고 가까이 가봤다.딱 2주만 향기를 뿌려주고 금가루가 툭툭 떨어지듯 일제히 떨어진다고 한다.1982년 주인장(최진화/75세)이 처음 심었을 때 가슴까지 왔던 나무가 이제 우람하고 튼실하게 자라 향기에 이끌린 사람들이 한 둘 찾아오더니 사진도 찍고 신기해하며 지난다고 한다.그동안 앞집 때문에 보이지 않다가 집이 허물어지고 주차장이 들어서면서 시민들 눈길을 끌었다.나무 아래 담장에 벽화 그
교사로 돌아온 지 2주를 넘기고 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갈수록 피폐(疲弊)해진다. 수업이 힘들어서도 적응이 어려워서도 업무가 힘들어서도 아니다. 교실에서 수업을 하며 바라보는 우리 아이들과 학교, 지방 교육 권력, 정부, 교육 관료들의 이상(理想)과 심각한 괴리에서 오는 피곤함 때문이다.인문계 고등학교 2, 3학년 수업을 담당하는 나는, 날 것 그대로의 그들을 본다. 어떤 장식도 어떤 필터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본다. 4년 동안 교실을 떠나지 않았다고 자부했지만 중학교에서 했던 일주일 두 시간의 수업은 그저 장식 수준이었
지루한 여름이 어느새 지나고 라디오에선 매일 브람스의 선율이 흘러나온다. 독일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와 가을은 한 몸처럼 느껴질 만큼, 가을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작곡가가 아닌가 싶다. 전에 소개한 클라리넷 오중주는 물론이고 가을에는 그의 교향곡들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오늘은 또 라디오에서 몇 번이나 나올지 모르겠다.왜 가을엔 브람스일까? 스승 로베르트 슈만의 미망인 클라라 슈만을 평생 흠모해 끝까지 독신으로 살며 헌신해 온 그의 음악이 구석구석에 배어 있어서일까? 후에 만날 기회가 있다면 꼭 한 번 물어보고 싶은 대목이다.가을
철도노조가 지난 9월 14일 총파업에 들어가자 보수신문은 ‘시민 불편’만을 강조했고, 더 나아가 “‘민영화’ 가짜뉴스로 국민 발목 잡은 노조 파업은 명분 없다”라며 정부의 강경 대응을 주문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철도 파업) 현장 점검에서 “철도노조는 실체조차 없는 민영화라는 허상에 반대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있다”며 “검토한 적도 없는 민영화에 대해 정부가 무엇이라고 답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철도노조는 17일 을 통해 “철도노조의 파업을 불러온 부분과는 다른 점이 있다”라며 “이번 파업의 원인은 국
2020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농촌특화형 성평등 전문강사 육성을 야심차게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꼭 필요한 사업이고, 머잖아 농촌사회에 유의미한 진전이 올 것이라 여기며 1기 전문강사 과정에 등록했습니다. 물론 그동안의 활동에서 간간이 여성농민을 대상으로 여성농업정책이나 농촌현실을 이야기하며 농촌사회의 불평등을 말해왔습니다만, 부족함이 많던 차에 좋은 기회가 생긴 것이지요.공부하는 과정은 재미있었습니다. 그쪽 분야에서 쟁쟁한 경험을 가진 이론가나 정책가, 또는 실천가들이 강사로 편성돼 그동안 강사로서 부족했던 점을 보충
“추석 명절 업시모 조컸따.”세상 여론이 없어지는 쪽으로 가는 것 같다. 가족이 가족 같지 않고 물질적으로 가진 것은 많은데 나눠 가지긴 싫고 서로 몸 부대끼기 싫고 궁핍한 사람들은 그들대로 명절이 두렵고 싫은 시대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오랜 시간 습관처럼 치러 왔는데 시대가 바뀌었다고 속마음까지 명절을 짐으로 여기게 될 줄은 몰랐다.어머니 세대에 풍성한 음식과 가실 끝에 맞는 뭔지 모를 든든함, 타지에서 온 사촌들에 대한 호기심, 비좁지만 정겨운 이부자리, 고향에 온 작은 아버지들이 부르는 권주가, 말술이 익는 고방. 그런 풍
술은 문명의 시작부터 인류와 함께했다. 모든 문명사회와 공동체에는 음주문화가 있다. 고대에 술은 공동체를 유지하고 분열을 방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므로 술의 생산 분배 소비는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제사나 의식 또는 중요한 행사 때 귀하게 사용되던 술이 이제는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친구들과 어울릴 때, 문제 해결을 위한 만남이 필요할 때와 같이 유흥과 소통의 도구가 되었다. 술이 유대 강화, 협력관계 유지, 소통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두뇌 기능의 일부에 변화를 주기 때문이다.소수의 수렵채집 사회가 다수의 정착 농경 사회로
요즈음 친구들을 만나서 나누는 주된 이야기는 노후를 어떻게 잘 보낼 수 있을지다. 다들 “병을 피할 수는 없지만 가능하면 요양시설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정부가 지난해 장기요양 수급자 45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를 보면, 재가급여 이용자 50%는 “건강이 악화돼도 현재 사는 집에서 생활하고 싶다”고 밝혔다. 노인요양시설이나 요양병원에 입소하고 싶다는 응답은 각각 29%, 18%에 그쳤다.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22 노인장기요양보험 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장기요양등급을 인정받은 분 102만명 중 자택요양 노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에서 사는 것을 나는 ‘거의’ 언제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차로 30분만 달리면 대한민국 최고의 명산 지리산 계곡에 발을 담글 수 있고, 남쪽으로 핸들을 꺽으면 우리나라 최고의 청정수역 남해바다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리산에서 유래한 덕천강과 덕유산이 발원지인 경호강이 만나 흐르는 남강이 도심을 관통하는 진주는 그 자체만으로도 보석 진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빛이 난다.그런데 왜 나의 감사하는 마음은 ‘항상’이 아니라 ‘거의’에 머무르고 마는가. 이토록 아름다운 고장에서 순박하게 사는 사람들이 대표라
며칠 전 또 선생님이 자살을 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나는 지금 상황에 대한 이야기는 가능한 쓰지 않겠다고 마음먹는다. 왜냐하면 원인 규명과 대안에 대한 의견이 많아질수록 사태 해결은 조금 더 멀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동시에 나의 의견 또한 완전히 새로운 대안이 아니며 나의 분석이 역시 완전히 새로운 분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이런 복잡한 일이 일어나는 와중에 개인적으로 교장에서 교사로 돌아온 나는, 새로운 학교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인문계 고교인 지금 학교는 전체 교직원 60명 이상이 각각의 학년실에
채수근 일병. 그의 어머니가 나이 41세에 시험관 시술로 어렵게 낳은 외아들이다. 대학에 입학해 1년간 캠퍼스 맛만 보고 바로 해병대에 입대한 이 청년은 지난 7월 소속 부대 인근의 수해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가 급류에 휩쓸려 생을 마감했다. 입대한 지 4개월이 채 안 됐고 갓 스무 살이었다. 해병 일병 채수근은 사흘 뒤 해병대 제1사단장 '권한'으로 '상병'으로 추서 진급되어 보국훈장 광복장을 받고 현충원에 안장됐다.국가가 징집해 데려간 귀한 자식이 주검으로 돌아왔으니 그 부모가 느낄 참척의 고통은 얼마큼이며 그건 극복이 가능한 아
우리 마을에 산 지 꼭 15년째입니다. 하늘빛과 산그늘은 그대로인데, 속살은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품앗이로 심던 마늘은 양도 많이 줄었고, 품앗이 문화도 거의 없어졌습니다. 빈 밭의 풀도 못 봐주던 그 부지런함은 어데로 가고, 예사로 밭고랑에 풀이 자랍니다. 당연하게도 그 무서운 풀을 감당할 몸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루 일하면 이틀은 병원에 다녀와야 하는 처지다보니 풀보다 몸을 챙길 수밖에 없게 된 것이지요.무엇보다 더워도 너무 더운 여름날씨에 농사일을 할 수가 없다보니, 노동의 평준화가 이뤄진 것입니다. 농민 모두 부지
제주지사 시절 원희룡이 1인당 16만원하는 저녁식사비를 공금으로 지출했다는 논란 덕분에, 고급 일식 메뉴 중 요리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오마카세'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에게 오마카세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이모카세'가 있다. 모든 것을 '이모'에게 믿고 맡기는.말이 나왔으니 이 지역의 ‘이모카세’ 주점들을 언급해보자면 진주의 , 통영의 , 마산의 이 거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요즘은 이라는 다찌의 변형된 형태의 ‘이모카세’가 음주문화를 풍요롭게 하고 애주가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역사란 지난 날 무한히 흘러간 시간 속에서 한가닥 흐르는 맥을 찾아 헤매는 작업입니다. 시간이란 끊임없이 흘러가는 것으로 과도기란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1987년 대학 3학년 2학기 전공 수업으로 한국문학역사를 들었다. 사범대학 려증동 교수 강의를 한 학기 들었는데 많이 혼란스러웠다. 학력고사 치르듯 일사분란하게 주입된 교육내용이 깡그리 무시당하는 수업이었다. 문학사를 가르는 연대와 용어도 달랐고 시각도 달랐다. 자기 글에 남의 문헌을 인용하여 주를 다는데 힘을 쏟는 학자들과는 달리 어려운 한자말 풀어쓰기 두음법칙 부정하기,
"강도왜로!"왜로(倭虜)란 말은 힘의 원리로 사는 짐승 무리를 뜻하는 말입니다. 역사를 거슬러 멀리 신라, 고려까지 가지 않더라도 1876년 병자년 겁탈조약부터 일본은 조선을 잠식침략했고 1910년 우리 국권을 강탈했습니다.1945년 우리가 국권을 회복했어도 그들의 야욕은 끊이지 않았으며 오늘까지 우리 바다와 땅을 탐하고 있습니다. 동해를 뺏고 독도를 뺏고 그 다음 무엇을 뺏을까요?폭행이나 협박으로 남의 재물을 빼앗는 자를 강도라 합니다. 일본은 그런 나라입니다.2023년 8월 24일 후쿠시마 핵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려는 야만행위와
입추가 지나, 이제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도 얼마 남지 않았다. 길고 긴 장마와 그 뜨겁던 무더위도 끝이 나 가는 느낌이다. 이제 아침, 저녁으로는 조금씩 서늘한 기운이 돌아, 듣기 편안한 피아노 소품집을 골랐다. 피아노 연주자는 정명훈.피아니스트 정명훈은 요즘 거의 지휘자로 활동하지만, 사실은 대단한 피아니스트이다. 1974년 소련에서 열린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위를 하고 금의환향한 적도 있다. 지휘자로의 꿈을 키우고는 줄곧 앞만 보고 달려온 지휘자이지만 그의 근본은 피아노 연주였다.1994년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 자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