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민 약사
황규민 약사

"고성읍 시장 근처에 가면 원래의 실비집들을 볼 수 있습니다. 맥주 한 병 시키면 안주 좀 주고 더 시키면 안주가 더 추가되는 식의... " 요즘 진주에는 실비집이 사라져 가는 듯하다는 나의 페이스북 글에 페친이 단 댓글이다.

요즘은 고성 사천 삼천포 등지에 원래의 옛날식 실비집이 성업 중이라고 한다. 진주에는 실비집이 많이 없어졌다. 인터넷에 실비집을 검색하면 '삼천포 실비집', '사천 실비집'이 가장 앞에 뜨고 '진주 실비집'은 저 뒤로 밀려 보이지 않는다. 물론 실비집은 전국 바닷가 도시에는 대부분 있다. '군산 실비집', '마산 실비집'도 뜨고 하물며 서울 '봉천동 실비집'도 검색된다.

일반적으로 원래 실비집은 안주가 무료지만 마신 술병 수만큼 술값을 계산했다. 소주 한 병 1만원, 맥주 한 병 5천원 이런 식이었다. 다찌집은 1인당 1-2만원을 기본으로 하고 술값은 저렴하게 따로 계산하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은 3만원 기본이 대세이다. 물론 통영 다찌집도 초기에는 술을 마시는 정도를 봐가며 안주를 내오고 마신 술병의 수에 따라 술값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통영 다찌가 유명해지고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1인당 기본 금액에 마신 술값을 더해 받는 지금의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실비집이나 다찌집은 항상 술값 계산 방식이 고민이다. 계산 방식이 잘못되면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가 되고, 그 반대면 손님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음식을 차려내는 방식에는 크게 '공간 전개형'과 '시간 전개형'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서양 정식 코스요리는 음식이 차례대로 나오는 '시간 전개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음식은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한 상 크게 차려내는 '공간 전개형'이다. 기후와 조리법, 먹는 방식 등이 반영된 음식문화이다.

프랑스가 대표하는 서양 고급 요리도 본래는 ‘공간 전개형’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러시아 방식이 유행하면서 ‘시간 전개형’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러시아는 추운 지방이기 때문에 미리 내놓게 되면 음식이 식게 된다. 그래서 먹는 진도를 봐가면서 음식을 내놓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기후 조건의 영향으로 먹는 방식이 ‘시간 전개형’ 코스요리로 된 것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한상차림' 문화는 밥과 국 그리고 반찬이라는 식단 구성의 특수성이 반영된 것이다. 프랑스나 중국 요리는 하나하나의 음식이 독립적이지만 우리 음식은 밥을 중심으로 '밥국찬'이 함께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유럽이나 중국 음식은 코스요리가 가능하지만 밥국찬을 함께 먹는 우리 음식문화는 기본적으로 코스요리가 불가능하다. 한상차림으로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술 먹는 진도에 따라 안주가 나오는 실비집은 음식 나오는 방식이 코스요리와 비슷한 ‘시간 전개형’이다. 1인당 기본 금액이 정해져 있어 안주와 음식이 한 상 차려져 나오는 다찌집은 ‘공간 전개형’이다. SNS나 블로그에 올라오는 사진에서 다찌집 음식이 더 푸짐해 보이는 이유는 음식 내오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실비집 다찌집 한상차림집 통술집의 구분은 이제 무의미해진 듯하다. 교통과 물류의 발달, SNS의 등장으로 지역적 특성과 계절적 차이가 무의미해지고, 소비자와 공급자가 정보와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아 안주 특색과 술값이나 술값 계산 방식 등이 수렴진화하여 비슷하게 변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비집이나 다찌집에 갈 때 지켜야 하는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다. 1차에 가야하고 빈속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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