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 다찌 그리고 한상(차림)

황규민 약사
황규민 약사

제주지사 시절 원희룡이 1인당 16만원하는 저녁식사비를 공금으로 지출했다는 논란 덕분에, 고급 일식 메뉴 중 요리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오마카세'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에게 오마카세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이모카세'가 있다. 모든 것을 '이모'에게 믿고 맡기는.

말이 나왔으니 이 지역의 ‘이모카세’ 주점들을 언급해보자면 진주의 <실비집>, 통영의 <다찌집>, 마산의 <통술집>이 거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요즘은 <한상집>이라는 다찌의 변형된 형태의 ‘이모카세’가 음주문화를 풍요롭게 하고 애주가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음주 문화와 각자의 음주 경험들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고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다. 내가 경험하고 이해하는 정도 내에서 요즘 진주 중년들의 음주문화의 한 부분을 적어보고자 한다.

'실비'는 음식점 앞에 붙어 음식이나 안주를 만드는데 ‘실제로 드는 비용’의 의미로 쓰이는 말이라고 한다. 진주의 실비집은 안주는 무료이지만 마신 술 병 수에 따라 값이 계산되고 술을 마시는 정도에 따라서 안주가 계속 나온다. 다찌집 안주가 주로 해산물 위주라면 실비집 안주는 해산물이 나오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육해공이 다양하게 나온다. 바다에서 약간 떨어지고 지리산을 이웃하고 있는 진주의 지리적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지금은 다찌의 영향으로 해산물이 많아졌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아는 한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시내 계동에는 '신라실비'나 '화랑실비' 등이 유명했다. 그 이후 실비집의 무대가 봉곡동으로 옮겨졌다가 2000년대 이후 신안동 실비골목으로 옮겨왔다. 현재는 다찌나 한상차림 등에 밀려 많이 위축되었다는 생각이다. 최근 들어서는 실비집에 가본 기억이 없다.

다찌는 일본 선술집을 뜻하는 ‘다치노미’에서 유래한 것으로 통영의 독특한 음주 문화이다. 일제강점기 일본과 가까운 통영에는 일본인 거주자들이 많았다. 생선회, 해산물과 함께 술을 즐기던 그 일본인들의 음주 문화가 해방 이후 어부와 상인 등 통영 사람들에게 이어진 것이 오늘의 다찌라고 한다. 다찌는 술의 힘을 빌려 고된 뱃일을 버티는 어부의 술상이 되기도 했고 소주를 큰 잔으로 쭉 들이키는 술꾼을 위한 술상이 되기도 했다.

확인할 길은 없지만 애초 다찌에서도 진주 실비집처럼 술을 시키는 정도에 따라 안주가 따라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적어도 진주에서는) 먼저 기본으로 한 상이 먼저 차려져 나오고 술과 안주를 먹는 진도를 봐가면서 준비된 안주가 추가로 나온다. 1인당 기본 얼마에 마신 술의 양만큼을 합해서 계산한다. 요즘은 기본이 1인당 3만 원인 곳이 많다. 쉽게 말해 입장료가 1인당 3만 원인 셈이다.

마산 통술은 일제강점기 시절 요정의 고급 요리였던 것들을 저렴하게 판매하면서 시작된 술 문화라고 한다. '통술'은 싱싱하고 푸짐한 음식들을 한상 '통째'로 내온다는 의미이다.

요즘 진주에서의 한상(차림)은 다찌와 같은 안주를 내오는데, 2~4인분 한상을 5~9만원 받는다. 술값은 따로 계산한다.

다찌문화와 통술문화는 시작과 유래는 달랐겠지만 지금은 거의 차이가 없어진 듯하다. 하기야 실비집도 다찌와 비슷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술값 받는 방식에서부터 안주 차림까지 모두 비슷해지는 양상이다. 통술집이 마산을 중심으로 한 동부 경남의 전통적 호칭이라면 진주를 비롯한 사천 통영 등 서부경남에서는 다찌로 정리되는 추세이다. 특히 진주에는 통술집이라는 이름의 주점은 거의 없다. 진주에서도 이제 다찌와 한상차림이 대세이다.

실비집 다찌집 한상집 모두 안주를 고를 필요가 없다. 애주가들의 가장 큰 스트레스인 메뉴 선택 스트레스가 없는 것이다. 정해진 메뉴는 없고 계절에 따라 나물과 같은 반찬류 뿐만 아니라 회를 비롯한 다양한 해산물들이 나온다. 통영 사천 마산 진주가 해안 근처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재료의 신선도와 주인의 마음에 따라 안주가 바뀐다. 말 그대로 '이모카세'이다. 모든 것을 '이모'에게 믿고 맡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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