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적이고 유쾌한 음주음식문화

황규민 약사
황규민 약사

술은 문명의 시작부터 인류와 함께했다. 모든 문명사회와 공동체에는 음주문화가 있다. 고대에 술은 공동체를 유지하고 분열을 방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므로 술의 생산 분배 소비는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제사나 의식 또는 중요한 행사 때 귀하게 사용되던 술이 이제는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친구들과 어울릴 때, 문제 해결을 위한 만남이 필요할 때와 같이 유흥과 소통의 도구가 되었다. 술이 유대 강화, 협력관계 유지, 소통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두뇌 기능의 일부에 변화를 주기 때문이다.

소수의 수렵채집 사회가 다수의 정착 농경 사회로 옮겨가자 접촉 기회가 많아지고,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문화가 충돌하면서 개인과 개인 간, 집단과 집단 간에 긴장감이 상승하게 되었다. 이러한 긴장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계산 판단 등의 이성적 기능을 담당하는 전전두피질이다. 술은 계산 규율 등을 앞세워 감성적 소통을 방해하는 대뇌 전전두피질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억제한다. 이러한 상태에서 창의성이 증진되고, 스트레스가 해소되며, 협력이 강화되고, 유대가 형성된다.

<취함의 미학>의 저자 슬링거랜드에 의하면, 이러한 긍정적 효과는 인간 진화와 역사에 비추어볼 때 '발효주'를 이용한 공동체 음주일 때 가능하다고 한다. 과도한 증류주 탐닉, 혼술 등의 경우에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류 진화의 대부분은 발효주와 함께했으며 음주문화는 대부분 공동체 집단 문화였다고 한다. 우리는 아직 증류주에 적응하지는 못한듯하다. 그러므로 발효주를 음주문화의 통제하에 즐길 때에 좋은 결과를 나타낸다. 이때 좋은 결과란 위에서 언급한 창의성 증진, 스트레스 해소, 협력 강화, 유대 형성을 말한다.

인간의 음식은 생물학적 목숨 유지를 위한 본능적 대상만은 이니다. 단순히 칼로리와 영양 보충만을 위한 물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렵채집을 하든, 농사를 짓든 혼자로서는 불가능하다. 여럿이 힘을 모아야 가능하다. 집단을 만들고 힘을 조직화하기 위한 정치와 문화가 필요해진다. 음식물의 생산 분배 소비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탄생시켰다. 식재료를 구하고 요리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 과정을 통해 식구(食口) 즉 가족이 형성된다. 이렇게 음식은 영양과 칼로리를 공급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창조하고 공동체를 형성한다.

인류의 역사는 식량을 획득하고 음식을 나누는 투쟁과 분배와 공유의 역사이다. 그리고 식량의 획득, 분배 과정에서 생기는 긴장과 분쟁을 해결하고 공동체 유지를 위한 집단 음주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렇게 음식을 나누고 술을 함께 마시는 것은 친목을 도모하고 같은 공동체 소속임을 확인하고 그리하여 긴장을 해소하고 다툼을 막는 과정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고 멀어진듯하면 '밥 한 번 먹자'고 하고, 친목을 도모하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면 '술 한 잔 하자'고 한다.

주점에서 술과 안주는 술이 주된 것이고 안주는 술을 먹기 위한 보조적인 것이다. 식당에서도 술을 마실 수는 있지만 식당에서는 음식이 주된 것이고 술은 곁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술이 아니고 반주(飯酒)라고 한다. 그러나 실비집이나 다찌집에서는 술과 음식에 주(主)와 부(副)가 따로 없다. 술과 음식의 위상이 동등하다. 이렇게 실비집과 다찌집은 친목을 도모하고 같은 소속임을 확인하고 오해를 풀고 일을 도모하기 위한 '밥 한 번 먹자'와 '술 한 잔 하자'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효율적이고 유쾌한 음주음식문화 공간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