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순옥 재능교육 교사
성순옥 재능교육 교사

"역사란 지난 날 무한히 흘러간 시간 속에서 한가닥 흐르는 맥을 찾아 헤매는 작업입니다. 시간이란 끊임없이 흘러가는 것으로 과도기란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1987년 대학 3학년 2학기 전공 수업으로 한국문학역사를 들었다. 사범대학 려증동 교수 강의를 한 학기 들었는데 많이 혼란스러웠다. 학력고사 치르듯 일사분란하게 주입된 교육내용이 깡그리 무시당하는 수업이었다. 문학사를 가르는 연대와 용어도 달랐고 시각도 달랐다. 자기 글에 남의 문헌을 인용하여 주를 다는데 힘을 쏟는 학자들과는 달리 어려운 한자말 풀어쓰기 두음법칙 부정하기, ‘습니다’체 쓰기, 과감하게 왜놈이라는 말 쓰기, 벼슬아치 꾸중하는 말투까지 려증동 교수는 우리의 뇌 질서를 흔들어놓았다.

문학사를 공부하면서 우리를 전율케 한 것은 역사용어였다. 특히 일제침략시대 한국 역사용어였다. 듣도 보도 못한 경술국치, 을사늑약, 병자겁약, 갑신란동, 갑오망조, 갑오억변이었다.

"나라가 망했는데 국사선생이란 자가 1910년 한일합방이다, 외워라. 통곡을 하고 울분을 머금은 말로 역사를 가르쳐야할 선생이 할 소리냐?"며 얼굴에 노기를 띤 교수 얼굴이 기억난다.

1945년 을유년 광복 이후 78년 지금까지, 국권을 완전히 찾고 누렸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나라 안팎 사정이 다시 100여 년 전으로 돌아간 듯 자존감 무너지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제대로 다지지 못한 역사인식, 특히 역사용어를 돌아보았다.

나는 역사학자가 아니므로 스승이 연구하고 주장한 바를 공부해서 세 가지만 되새겨 밝힌다.

첫째, 병자겁약이다. 1875년 일본은 운요호를 끌고 강화도에 나타나 통상을 빌미로 조선을 침략했다. 조선군은 참패했고 일본은 피해를 물어 자기들 마음대로 조선 해안에 배를 대었다. 1876년 병자년 1월에 통상요구를 했고 2월에 조일수호조규에 도장을 찍게 했다. 7월에는 조선의 항구 세 곳을 겁탈하는 무역규칙을 정했다. 부산항구와 동래에서 일본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활동범위를 동서남북 각 직경 10리로 한다, 일본인들은 조선의 땅과 생산물을 사고 팔 수 있다. 여기에 무역규칙을 정했다. 외교문서는 모두 일본말로 쓸 것이며, 그것을 한문으로 번역하지 않는다. 일본정부의 배는 항구세를 내지 않는다는 일방적 규칙을 내놓았다. 이래서 병자겁약이라 했다. 겁탈조약이며 더 자세히 붙이면 병자년 세 항구 겁탈조약이라 했다. 일제침략시대 시작이었다.

둘째, 을사조약이라 가르친 을사늑약이다. "을사년 일본통감정치 늑약"을 줄인 말이다. 러일 전쟁에 승리하기 전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했고 1905년 을사년 9월에 이등박문은 "일본통감정치 실시 협박요구서"를 내놓았다. 이 또한 조약이라는 말로 우리의 힘을 뺐다. 늑약이다.

셋째, 경술국치 1910년이다. 1876년 병자겁약, 강화도조약이라고 유화표현한 그때부터 조선을 잠식침략하더니 경술년 8월 22일 우리나라 이름까지 없애는 만행을 저질렀다. 저들을 강도왜로(强盜倭虜)라고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은사금을 받고 나라를 판 완용(역적이나 폐주에게는 성을 붙이지 않는다 했다. 완용 하나에만 이름만 붙임), 리재곤, 조중응, 리병무, 고영희, 송병준, 임선준 경술7적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부왜자들은 이를 일한합방-한일합병이라 했다. 그래야 나라찾는 일을 잊고 멍청하게 살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국권을 찾기 위한 행동은 끊임없이 있었고 1945년 을유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았다. 이후 78년이라는 말을 또 뇌여본다. 이 햇수만큼 우린 잘 걸어왔는가.

대학 입시를 볼 때까지 국사 과목 지문에는 경술국치, 국망이라는 말은 없었다. ‘왜정시대’가 있어서 발전했다는 해괴한 미신을 퍼뜨린 세력과 한 하늘 아래서 살았고 그들이 잡은 권력과 부가 영원할 것처럼 다수를 핍박했다.

세세한 울분을 어찌 다 적으랴. 우리끼리도 마음이 통하지 않은 역사용어, 알고도 숨고, 모르면서 당당한 역사에 대한 태도, 특히 근현대사를 대하는 일은 가슴 속에 도끼날 두 개와 삶은 계란 열 개쯤 먹는 일과 같다.

40여 년 전부터 역사용어 바꾸기에 힘을 썼던 려증동 교수는 역사학 교수가 아니라 국어교육과 교수였다. 이 어른 덕분에 이제 병자겁약, 을사늑약, 경술국치라는 말을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세대가 해야 할 일은 우리 세대에서. 우리 후학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그들 몫이다. 그러나 부끄러운 역사를 반복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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