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차만별의 천시를 철폐하자“

1928년 형평사 제6회 정기대회 포스터에 쓰인 외침이다.

출생에서 죽음까지 전 생애에 걸쳐 차별을 받았던 백정들이 1923년 4월 25일 진주청년회관에서 형평사를 만들었고 양반, 백정, 사회운동가들이 "저울처럼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가고자 했다.

갑오억변(개혁)으로 백정을 비롯한 천민계급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자 했지만 같은 동리사람들은 물론 일제강점기에도 백정에 대한 천시 풍조는 여전하였다. 학교 입학 원서나 이력서에, 호적에 백정은 도한이나 적점을 표시하여 차별하였다.

이름자는 석(石), 돌(乭), 피(皮)를 사용하여 지었고 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일반인과 혼인도 못했고 신랑신부는 가마나 말을 탈 수도 없었다. 남자는 상투를 틀지 못했고 여자는 비녀를 꽂지 못했다.

명주옷 두루마기를 입을 수도 없고 갓 대신 패랭이를 썼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집을 화려하게 짓지 못했다. 장례를 치를 때도 상복을 입지 못했으며 일반인의 묘지와 떨어져 있어야 했다.

이런 차별을 다 없애라 했는데 법은 철폐를 하였으나 사람들의 오랜 뇌리와 습성은 남았다. 백정 위에 계급쯤 되는 농민, 어부, 노동자들도 "백정놈!" 하면서 멸시를 하였다.

올해는 형평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라 진주 형평운동기념사업회에서 학술대회, 강연회, 음악회, 형평운동 순례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다.

마침 소설 ‘백정’을 쓴 정동주 선생 강연이 있었고, 한국환경건축연구원UD복지연구실 책임연구위원 배융호의 강연이 있었다.

배 연구위원은 ‘형평 100년, 그래서 백정은 사라졌나?"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인식, 정책, 환경을 예시로 들며 강연했다. 이런 강연을 들어야할 사람들은 국회의원, 시의원들이어야 했다. 얼마 전 전장연 지하철 투쟁을 두고 어떤 자는 "비문명적, 야만적 행위"라고 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샤브샤브집을 가는 일, 시각 장애인이 야구장 가는 일, 청각 장애인이 콘서트장 가는 일, 휠체어를 타고 야구를 하는 일도 가능해야 하는 대한민국이어야 했다. 경제적 규모는 충분하다고 여긴다.

인류가 먹을 것을 뺏기 위해 싸움을 시작한 것이 전쟁의 시작이고, 전쟁으로 인해 계급이 생기고 계급 형성에 동조한 다양한 모습의 교육, 종교, 법 등은 평등보다 서열을 매기는 일에 가세했다. 서열 정하기는 인간을 편가르고 윽박지르는 일에 또 앞장섰다.

시대마다 저항이 있었다. 1923년 진주형평운동은 일제강점기임에도 불구하고 신분차별에 대한 저항운동에 불을 붙였다. 해방과 혼란한 시대, 산업발전시대, 자본주의 서열시대를 거쳐 오면서 이러한 형평운동을 기념하여 기억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백정은 망나니가 아닙니다“

신진균(진주형평운동기념사업회 이사) 선생님의 말과 이동순 선생님 시집 << 개밥풀>>에 실린 5편 연작시 중 2편에 적힌 내용을 옮겨본다.

 

♧검정버선♧

-진주 형평사 吉小介 노인의 말-

이동순 시

풀꽃에만 씨앗 있는 줄 알았더니

사람도 미리 정한 씨가 있다 하더라

나랏님 용씨 대감님 옥씨 세도양반 금싸락씨

이방님들 술씨 아전님네 돈씨 평지풍파 평민씨

대관절 우리네 검정버선은 무슨 씨앗고

수백년 고리고리 엮어내린 철고리가

얼매나 단단한지 풀리지 않는 고리씨앗

검은 머리 검은 얼굴 번뜩이는 두 눈 속에

죽지 못해 연명해 가는 가여워라 백정씨앗

그 씨앗들 하도 무거워 길바닥에 궁글다 보니

소갈 데 말갈 데에 멍에 쓰고 굴러왔네

누가 우리더러 씨가 나뿌다 하였더냐

사랑 없는 사랑방에 세도양반 심심하여

고리내림 더욱 이으려 심술로 만든 버릇

뭐라, 산소에 떼를 입혀선 안돼?

백정무덤에 풀 나면 죽은 망령 극락 못가?

누더기옷에 고름을 달면 악귀가 붙는다고?

검정버선만 신어야지 잡귀가 떨어진다?

에익, 천하 잡것들 우라질 놈은 나의 슬픔이라

배운 바 없고 힘도 없이 어깻죽지 축 늘인 채

속은 것 분한 데다 성도 없는 삼술이네

부를 성은 있어도 관향없는 박금돌네

이런저런 개흙 속에 꾸무럭거리는 노래기모냥

쓰다 달단 말도 없이 검정버선 신고 왔구나...... (1편 중에서)

어여쁘다 우리 백정 갑오년 동학군으로

선봉중에 가담해서 몸쓸 폐정을 꾸짖으니

칠반천인의 대우를 개선하고

백정머리에는 평양갓을 벗게하라

쫓기는 검정버선 토굴 속에 숨어들어가

두 눈으로 피눈물이 고리고리 떨어진다.....

(이하 중략)

 

성순옥 재능교육 교사
성순옥 재능교육 교사

백정은 사람에게 붙이는 말이 아니었다. 근대에도 현대에도 그랬다. 일경들이 조선독립군에게 붙였던 요시찰 명부처럼 적점을 찍어 분류되었던 직업.

에르메스, 루이비똥, 샤넬, 페라가모, 구찌 등 세계 유명 구두나 가방을 만드는 기술자를 두고 우린 백정이라 부르지 않는다. 조선사회는 그들을 갖바치라 하여 멸시했다.

관에서 쓰는 가죽, 남자들이 쓰는 갓, 혼례에 신는 꽃신도 그들이 만들었다. 백정의 아내나 딸은 꽃신을 신지 못했다. 황순원 소설 ‘일월’, 박경리 소설 ‘토지’, 조명희 소설 ‘낙동강’에서 백정에 대한 연민을 찾는 일보다 해방 이후 신교육을 받은 시대를 살아오기 수십년, 우리들이 갖고 있는 차별은 얼마나 많은가?

갖가지 것들을 나열하지 않아도 가진 자에게는 평등이 억압이고 인권유린이라 하니, 우리 사회가 풀어야할 인식의 차이부터 좁히는 교육이 또한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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