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순옥 재능교육 교사
성순옥 재능교육 교사

“추석 명절 업시모 조컸따.”

세상 여론이 없어지는 쪽으로 가는 것 같다. 가족이 가족 같지 않고 물질적으로 가진 것은 많은데 나눠 가지긴 싫고 서로 몸 부대끼기 싫고 궁핍한 사람들은 그들대로 명절이 두렵고 싫은 시대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오랜 시간 습관처럼 치러 왔는데 시대가 바뀌었다고 속마음까지 명절을 짐으로 여기게 될 줄은 몰랐다.

어머니 세대에 풍성한 음식과 가실 끝에 맞는 뭔지 모를 든든함, 타지에서 온 사촌들에 대한 호기심, 비좁지만 정겨운 이부자리, 고향에 온 작은 아버지들이 부르는 권주가, 말술이 익는 고방. 그런 풍경까지 그리워하지는 않지만 전 냄새 풀풀 나는 이웃집 수가 줄었다는 것이다. 요 몇 년 사이 탕국 냄새도 생선 찌는 냄새도 나지 않는 추석이 되어버렸다.

나라에서 정한 공휴일에 웬만한 사람들은 외국여행을 가고 자기 집이 아닌 더 근사한 펜션, 호텔에 모여 명절을 쇠는 분위기도 이제 이상할 게 없다. 음식도 헛제삿밥이나 반찬가게에서 맞추고 많이 편리해졌지만, 반갑지도 않은 시댁형제들 거둬 대접하는 일도 진심이 아니면 불편한 일. 그래서 올해 처음으로 우리도 추석을 없애보았다.

과연 편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명절 아니면 형제, 친인척간에 얼굴 보기도 힘든 세상이라 섭섭한 마음도 없지 않다. 고향 마당에 불을 지피고 솥뚜껑을 엎어 부침개를 부치고 몇 날 며칠 광목 제수복을 손질하던 어머니의 노동이 내가 할머니가 되어서야 끝이 나다니. 우리 며느리 대까지 이어지지 않아 참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상수도가 들어오기 전 명절이 되면 큰 물독에 물을 이다붓고 이불 홑청도 씻고 장농에 묵힌 옷도 꺼내 씻어 풀질하고 다듬이질해서 챙기고 타관에서 온 친지들이 최소 이틀씩 묵고 가야하니 양식은 또 얼마나 준비해야 했을까. 지금 생각하니 친정어머니는 일 년에 명절 두 번 쇠는데 엄청난 일을 해온 것이었다. 가마솥에 밥 짓는 일, 나물 삶아 해내는 일, 숙모들이 와서 부침개 부치고 같이 거들어도 내가 이십 년 넘게 시댁에서 부침개 부친 일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명절만 있었을까, 달마다 있는 제사는 또 어땠는지.

명절을 미풍양속이라고 말하는 민속학자들은 어머니들 고충을 제대로 알기는 했을까. 같이 도와주고 위로해 주며 치러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나쁜 며느리도 나쁜 시어머니도 나쁜 시누이나 동서도 없었을텐데. 사람일이 법칙대로 되는 일이 아니고 집집마다 풍속이 다르니 뭐라 말하기 힘들지만 시대에 맞게 처지에 맞게 명절을 쇠는 분위기는 맞는 듯하다.

옛날 못 먹던 시절에 명절날만이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 날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설레고 기다려지는 날 아니었을까. 유교적 의식을 떠나 명절은 그나마 사람답게 뭘 먹어보는 날이었다. 가족과 이웃들과 공들여 만든 음식을 나눠먹고 농한기에 걸리면 불콰하게 전주에 취해보기도 하고 마을 타작마당에서 춤도 춰보고 달맞이도 하고 그런 날이었다. 돌아보니 아이들과 남자들만 재미있는 날이긴 했다. 음식 장만하느라 부엌에서 나오지도 못한 누군가의 어머니, 숙모도 있었다.

편리한 세상으로 달려오는 동안 아무도 어머니와 며느리들에게 지운 가사노동에 대해 진심어린 위로를 해주지 못하고 막 달려왔다. 그 며느리 세대가 시어머니가 되고 보니 이제 새 며느리들이 여성에게만 일방적이라는 명절노동을 거부한다. 그래서 여기까지 와버렸다.

명절날 큰집에서 모이지 말고 각자 집에서 지내자는 의견에 섭섭함이 앞선다는 사람, 어머니 세대가 살아 계실 동안까지 예전대로 하자는 사람, 통신이 발달하고 생활 변화 속도가 사람의 온정보다 빠른 시대라 굳이 명절을 받들고 살 필요가 없다는 사람. 이유도 갖가지다.

어쩌다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어쩌면 명절 공휴일이 없어질 지도 모르겠다.

광목 바지에 저고리, 잘 다려진 두루마기를 입고 대청마루에 줄 지어 선 후손은 우리 아버지 대에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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