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순옥 재능교육 교사
성순옥 재능교육 교사

한 아버지가 자식 둘을 살해했다.

아이들과 동반자살을 하려다 실패했다 한다.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고등학생 딸과 중학생 아들이 영문도 모른 채 아버지 트럭 안에서 화를 당했다. 아버지는 자살하려고 했지만 미수에 그쳤다. 그는 지금 감옥에 있고 피 끓는 청춘은 한 순간에 생이 멈춰버렸다. 스무 명 남짓한 반 친구들은 하루 아침에 그들 시야에서 사라진 친구의 안부를 영원히 물을 수 없게 되었다.

"선생님 ㅇㅇ도 선생님 학생이었어요?“

"아니. 얼굴 보면 알 수도 있어. 그런데 왜?“

"그 친구가 주말에 아버지랑 누나랑 캠핑간다고 갔는데 아버지가 약을 먹여 잠재워서 가스를 틀어.....“

학생 이야기를 듣고 말문이 막혔다.

".......“

"반 친구들에게 선물 사올게 하면서 갔는데....."

뉴스를 검색했다. 정말이구나. 작은 학교에서 엄청난 일이 일어났구나, 그리고 한동안 그 먹먹함을 잊고 있었다.

두어 달 지났을까 14년 전에 썼던 공책 한 권을 뒤적이다 글 속에 있는 두 아기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다. 글 속에 죽은 학생 남매 이름이 있었던 것이다.

사연은 이랬다. 2009년 전후 ㅇㅇ군에서 이주여성한국정착수기 공모글을 모집했는데 당시 몽골 여성 한 명, 베트남 여성 한 명 글을 손봐 준 적이 있었다. 두 여성이 쓴 글을 문맥에 맞게 수정해 준다고 공책에 옮겨놓았는데 그 중 한 명, 베트남 엄마 수기 원고에 누나와 동생이름이 있었다. 나와 아무 인연이 없었던 학생인 줄 알았는데 어린 이주여성의 아이들이었다니.

얼굴도 모르는 베트남 여성 글을 읽으며 잘 살고 있겠지,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겠지 생각하고 있었다. 글을 부탁한 학부형께도 가끔 안부를 묻곤 했다. 세월이 지났고 벌써 중고생이 되었다는 것도 모른 채 잊고 지냈는데, 공책에서 본 이름과 내 학생이 말해 준 이름을 듣는 순간 전율이 돋았다.

"지난 8월은 정말 행복한 여름이었습니다. 둘째 ㅇㅇ가 태어났고 베트남에 계신 친정어머니랑 ㅇㅇ군에서 실시하는 한글여름캠프에 참가했거든요. 머나먼 한국까지 시집간 딸 자식을 보기 위해 오신 어머니,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외손자를 무더위도 잊고 안고 얼러주신 어머니, 지금은 곁에 안 계시지만 아직도 옆에 계신 것 같아요. 휴가철이라 바쁘게 일하는 딸을 지켜보기가 힘드셨는지 손수 손자들을 봐주시며 묵고 가셨습니다. "

애들 엄마 이름은 판ㅇㅇ한이었다. 그녀 글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봄에는 녹차를 하고 여름에는 펜션을 하고 겨울에는 곶감을 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고, 문장마다 팔딱거리는 생의 힘이 넘쳐났다.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이주여성으로 한글 습득능력이 뛰어났음을 글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2005년 1월 한국에 와서 산골마을에서 생활한 이야기부터 시댁 가족들과 적응해가는 과정과 아이 키우는 재미를 행복하게 써 왔다. 그녀의 수기가 입상을 했는지 확인은 못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첫째 ㅇㅇ가 태어났을 때 시어머니가 옆에서 잘 보살펴주었노라 해서 여느 가정 못지않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뒤에 일은 잘 모른다.

판ㅇㅇ한은 이혼했고 아이들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었다. 아이들은 엄마와 떨어져 아버지, 할머니랑 살았나보았다. 그 아이들이 이 세상에 있었다는 글을 읽지 않았다면 난 그저 단순한 존속살인사건, 가족동반자살사건으로 기억만 할 뻔했다. 엄마와 아이 이름을 다시 기억하며 명복을 빌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14년이라는 세월과 함께 그들과 나는 터미널에서 길거리에서 수없이 마주쳤을 것이다. 친구들과 하교하는 길이거나 학원가는 길이거나 편의점 같은 곳에서도. 남의 가정사에 오지랖을 펴며 의문을 캘 수도 없는 죽음에, 못난 아비의 행동을 비난만 할 수 없는 사고에, 그저 명복을 빌어주는 일밖에 할 도리가 없었다.

ㅇ서, ㅇ서야. 생이 윤회할 일이 생기면 부디 다시는 억울하게 죽지 말거라.

진심으로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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