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 진주고등학교 교사
김준식 진주고등학교 교사

교사로 돌아온 지 2주를 넘기고 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갈수록 피폐(疲弊)해진다. 수업이 힘들어서도 적응이 어려워서도 업무가 힘들어서도 아니다. 교실에서 수업을 하며 바라보는 우리 아이들과 학교, 지방 교육 권력, 정부, 교육 관료들의 이상(理想)과 심각한 괴리에서 오는 피곤함 때문이다.

인문계 고등학교 2, 3학년 수업을 담당하는 나는, 날 것 그대로의 그들을 본다. 어떤 장식도 어떤 필터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본다. 4년 동안 교실을 떠나지 않았다고 자부했지만 중학교에서 했던 일주일 두 시간의 수업은 그저 장식 수준이었다는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2학년과 3학년 수업은 고교 학점제에 맞춘 선택 교과 수업이라 아이들이 이동수업을 한다. 여러 반에서 모인 아이들은 아침부터 졸리는 눈으로 견디다가 1교시 중간쯤에는 절반이 존다. 아이들은 피곤하다. 거의 100% 아이들이 밤 늦게까지 학원 수강을 한다. 밤늦게 학원을 마쳤으니 아침이 졸릴 수밖에 없다.

거기에 고교학점제라는 또 다른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정책의 기초와 원리, 그리고 그 실행방안까지 대부분 동의하지만 현장, 그리고 교실에서 보는 고교학점제는 완전히 다른 문제로 생각된다. 인문계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에게 학점제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 마디로 고교학점제를 표현하기는 곤란하지만 거의 ‘화사첨족(畵蛇添足)’ 수준에 가깝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중 3부터 작년까지 코로나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 온 지금 고 3들의 학업에 대한 견해는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고 3들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 그들은 원격 학습에 이미 익숙해져 있어서 교실 수업이 오히려 힘들게 느껴지기도 한다. 홀로 모니터와 교류하다가 20명 이상이 집단적으로 뭔가를 학습하는 것에 적응이 어렵다. 이 미묘한 문제를 제도와 정책이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면 어쩔 것인가?

교사들이 이 문제를 제기하는데도 몇 가지 난관이 있다. 일단 과목 특성이 다르고 동 교과 교사라 하더라도 각자의 교육적 소신이 다르다. 물론 기준을 정해 놓고 의견을 공유하면 되겠지만 교육 철학의 차이에서 오는 미세한 균열도 분명히 존재한다.

오늘 교실에 붙어있는 고교 학점제 안착을 위한 고등학생들의 의견 조사를 보며 정작 아이들이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앞선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육 권력들이 밀어붙이는 또 하나의 의제가 바로 미래 교육이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의제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미래 교육은 현재 교육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이다.

경남 교육청이 모든 아이들에게 이미 배부한 전자기기는 교실 이곳저곳에 돌아다닌다. 방치 수준이다. 아이들은 이미 그 기기를 능가하는 기기를 사용하고 있거나 아니면 사용해 본 경험이 있다. 그리고 교육과정 속에서 그 기기를 이용할 방법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특히 인문계 고교에서 수능이라는 전제를 둔 교실에서 이런 전자기기가 활용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아 보인다.

따라서 현재 교육권력들이 언제나 말하는 미래 교육은 허상이거나 개념 정립이 틀린 것이 분명하다. 이전에 썼던 나의 글이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https://brunch.co.kr/@brunchfzpe/1523) 교실에서 아이들과 수업을 통하지 않으면 도저히 느낄 수 없는 문제들이기 때문에 이미 연구사, 장학사, 연구관, 장학관, 교감, 교장 등은 이 문제를 알 길이 없다. 교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간접 경험하는 방식은 교육에서 매우 위험하다. 왜냐하면 본인이 가진 경험과 생각이 본질에 개입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방법이 뭔가? 나도 고민하고 있다. 내 눈에 보이는 이 복잡한 문제를 정책에 반영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뭔가 대안이 있을 것도 같은데 아직은 매우 모호하고 혼란스럽다. 한 달, 두 달, 반년, 일 년, 그리고 ……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시간이 별로 없다. 나는 분명히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얻어야 하는데 이미 내 교직 생활은 석양이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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