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앞두고 아이들과 이 말을 뜻을 토론해 보았다. 참으로 다양했지만 핵심을 살짝살짝 어긋나는 의견들이 많았다. 그래도 아이들의 생각은 사뭇 놀라운 구석이 있다. 2023년을 보내며 나의 개혁, 혁신, 혁명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본다.

김준식 진주고등학교 교사
김준식 진주고등학교 교사

#1

학기가 끝나 가고 있다. 한 해의 마무리와 새로운 학년을 위한 준비가 진행되는 학교 풍경은 언제나, 어느 곳이나 비슷해 보인다. 내년에는 뭔가 좀 더 새로운 시도를 해 보려는 의지와 기대, 그리고 지나온 한 해에 대한 희미한 반성과 회한의 공간이 지금 학교의 풍경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키워드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마도 ‘개혁’, ‘혁신’이라는 단어일 것인데 그 단어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너무 많이 사용되거나 적절하게 사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본래 의미가 희석되거나 심지어 오용되는 경우도 많다.

먼저 ‘개혁(改革)’은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는 전제가 반드시 따라붙는다. 이를테면 본질은 그냥 두고 특정한 부분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키자는 의미가 강하다. 정치적인 집단에서 이런 용어를 자주 쓰는데 정치 지형을 바꿀만한 거대 담론보다는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일부(사람 위주의)만 변화되는 경우를 가리킨다. 영어 ‘Reform’이 바로 개혁이다.

반면 ‘혁신’은 뜻이 조금 다르다. 표준국어사전(국립국어원)에 의하면 ‘혁신(革新)’은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으로 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영어 ‘Innovation’은 우리말 사전보다는 뜻이 부드러운 의미가 있다. "a novel change, experimental variation, new thing introduced in an established arrangement" (부드러운 변화, 실험적인 변화, 이미 있는 장치로부터 새로운 것을 만듦)

혁신 교육을 외쳐온 지(2009년 경기도 교육감 김상곤의 선거공약을 기준으로) 15년이 다 되어 간다. 당시 혁신 교육의 핵심은 ‘자기 주도 학습’이었다. 물론 이러한 ‘자기 주도 학습’의 배경은 입시위주의 치열한 경쟁체제가 아니라 선생님과 아이들이 수업을 통해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탐구하는 것이었다.

#2

그러면 ‘혁명’은 무엇인가? 어원적으로 이런 의미가 있다. 14세기 후반, ‘revolucioun’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였는데 본래 의미는 천체 속에서 '지구 궤도 회전', 또한 이를 위한 시간, 또한 '원형 경로에서의 움직임의 행위 또는 사실'이었다. 이는 13세기의 프랑스어 ‘revolucion’ '경로, 회전'에서 비롯되었거나 직접적으로 라틴어 ‘revolutionem’ (주격 revolutio) '회전하는'에서 파생된 명사다. 15세기 초부터 '주기적인 재발, 순환적인 변화 또는 사건'을 의미하기도 하며, '바퀴의 회전'을 뜻하기도 했다. 1660년대부터는 '물체나 사람이 한 점을 중심으로 회전하거나 움직이는 행위'를 직접적으로 의미했다. 오늘날 쓰이는 '사건에서의 큰 변화의 사례'라는 의미는 15세기 중반부터 기록되었는데 좀 더 정치적 의미인 '정치적이나 사회적 체제의 전복'은 17세기 초가 되면서 불현듯 유통되기 시작했다. (© 2001-2023 Douglas Harper, Online Etymology Dictionary 참조)

위의 사실로 '혁명'의 의미를 유추해 본다면 지구가 고정되어 있고 천체가 움직인다는 믿음에서 지구가 움직이고 심지어 궤도를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은 모든 가치관을 뒤엎어 버리는 완전히 새로운 사실이라는 의미에서 '회전'이 ‘혁명’이라는 단어로 발전했을 것이다.

한자 ‘혁(革)’은 죽은 짐승의 털을 뽑아 가죽을 만드는 모양을 본떠 만든 상형 글자다. 그런데 살아 있는 짐승의 털을 뽑을 수는 없으니 일단 짐승을 죽여야 한다. 즉 기존의 있던 모든 것을 죽이거나 없앤 뒤 새롭게 드러내는 것이 바로 ‘혁(革)’이다. 영어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뜻이 된다.

이렇게 놓고 보니 ‘개혁’이니 ‘혁신’이니 하는 말도 한자 중심으로 해석하면 뜻이 더 강해진다. 정치판에서 유행가처럼 흘러나오는 ‘개혁’과 ‘혁신’은 사실 그것이 뜻하는 바와는 전혀 다른 저들끼리의 이합집산을 매우 매끈하게 표현하는 것이고 교육에서 쓰이는 ‘혁신’이나 ‘개혁’도 본래 뜻과는 매우 거리가 먼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둘 다 세력 있는 누군가가 뭔가를 하기 위해 사용하는 상투적인 표현이라는 것에는 큰 차이가 없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다시 ‘개혁’을 하고 다시 ‘혁신’을 해야 하는데 그 상황을 매끈하게 표현하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진실로! 진실로! 교육은 혁명이 필요한데 혁명은 멀기만 하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혁명, 수업 현장에서 아이들과 교사가 이루는 혁명, 그 혁명의 불길이 학교를, 제도를 혁파하고 다시 거대한 불길로 세상을 밝힐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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