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 진주고등학교 교사
김준식 진주고등학교 교사

2023학년도 졸업식이 끝났다. 마침내 고등학교 교육과정 1년이 완전히 끝난 것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고등학교 졸업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고등학교 졸업을 통해 획득된 연결망은 우리 사회에서 상당기간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고등학교는 대학 진학을 위해 거쳐야 할 중요한 과정 중 하나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 대학이 가지는 의미는 너무나 기괴하고 참담한 수준이다. 이렇게 표현하는 이유를 잘 알 것이다. 그 대학을 위해 12년을 불살랐거나 허비했거나 혹은 휘둘렸던 아이들이 오늘 학교를 떠났다.

대학 교육에 대해 말을 하자니 밑도 끝도 보이지 않아 몹시 의뭉한 의미를 가진 단어 ‘Adiaphora’를 차용한다. 아디아포라는 본래 그리스어로 '대수롭지 않은 것들, 무관심한 것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본래는 스토아학파에 의해서 형성된 개념으로, 선도, 악도 아니고, 명령 받지도 않고, 금지되지도 않은 것이라는 의미다. 오늘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에게 참 어울리는 단어가 아닌가! 교사로서 자괴감은 말 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 사실 대학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비록 우리나라에 대학의 숫자는 매우 많지만 (4년제 종합대학 2022년 기준 197개 대학) 대학이 직접적으로 사회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소비되는 비 정상적인 노력과 비용, 그것으로부터 기인되는 초, 중등 교육의 왜곡이 문제라면 문제다. 좀 더 범위를 좁히면 의치한수(의대, 치대, 한의대, 수의대-최근에 편입)를 위한 과잉 노력이 오늘날 우리 교육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우리나라의 역사 지리적 환경과 현재의 정치 경제 문화적 상황이 있고 또 그 밑으로는 천박한 자본주의가 있다. 내 아이가 잘 되는 일이라면 어지간한 불법도 탈법도 저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이 땅의 부모들이다. 이 나라 최고위층부터 최하위층까지 그런 태도는 아주 일관되게 나타난다. 아마도 나도 그런 상황이면 탈, 불법을 저지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사실 경쟁은 아주 오래된 인간 사회의 유물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경쟁은 있어왔고, 그 경쟁에서 살아남은 부류들이 새로운 시대나 역사를 창조한 것도 사실이다. 그 범위에서 본다면 우리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들 각자가 경쟁을 겪어내야 하고 그것이 인간 세상의 법칙이라면 어찌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다만 그 경쟁을 스스로 선택하게 하고, 경쟁의 규칙은 공정하며, 경쟁에서 지는 경우라도 경쟁을 위해 노력한 만큼의 성취는 인정되어야 하는데……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생각이 생기기도 전에 이미 엄청난 경쟁을 겪어내야 하고, 경쟁의 규칙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며, 경쟁에 지는 순간 모든 것이 제로가 되는 승자독식의 세상이 문제라면 문제인 것이다.

졸업하는 그 순간까지 학교는 가혹했다. 오로지 성적에 따라 소수의 인원이 상을 받고, 대부분의 졸업생들은 묵묵히 그 광경을 지켜보고 견디고 있다. 94년(우리학교 졸업횟수다) 동안 글자 한 자 바뀌지 않는 동일한 문구가 인쇄된 졸업장이 상을 받지 못한 대부분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졸업의 징표다. 이제 이런 졸업식은 바꿔야 되는데 교사인 내 말은 다만 허공의 메아리일 뿐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오히려 무감하다. 단상에서 뭔 일이 일어나는지 관심 없다. 가지고 온 휴대폰을 열심히 보다가 졸업식이 끝났다. 그리고 학교를 떠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몇 몇의 아이들에게 나는 오직 말 없이 악수만 했다. 참 대수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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