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 진주고등학교 교사
김준식 진주고등학교 교사

현장 교사들에게 2월은 이래저래 마음이 번잡한 달이다. 3월부터 시작하는 신학기에 자신이 담당해야 할 수업의 시간 수와 업무, 그리고 기타 관계의 설정이 2월에 거의 결정이 된다. 공립학교의 경우 학교 이동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일들도 2월에 거의 이루어진다. 요즘 들어서는 학교의 업무를 조정하는 과정이 예전과 조금 달라지기는 했지만 해방 이후 학교 업무의 연못은 배수구가 없거나 막혀 있어 해마다 업무는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업무를 분장한다는 말은 사실 매우 건조하다. 한자 分은 나눈다는 뜻인데 글자 속에 칼도刀가 들어있으니 평균적인 의미가 강하다. 장掌은 손바닥을 뜻하는데 관할이나 감독이라는 속뜻이 스며있다. 엄정하게 나눈 일을 담당하는 것이 분장의 의미다. 어떤 조직이든지 하나의 업무가 완전히 독립적일 수는 없다. 수익을 내야 하는 기업의 경우에는 모든 업무의 핵심은 이익창출에 맞춰져 있으므로 분장이 있다 하더라도 특별한 경우에는 분장에 관계없이 하나의 일에 모든 사람이 집중할 때도 있다.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조직이 이러한데, 하물며 국민의 세금을 집행하는 공적 기관에서는 업무 분장의 대원칙은 국민의 이익이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학교는 ‘교육’이라는 중차대한 사명을 위해 조직된 기관이므로 그 업무의 초점은 당연히 학생이어야 한다. 그러나 업무를 분장하다 보면 거기에는 또 다른, 심지어 기이하고 놀라운 힘들이 작용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바로 이 지점, 즉 총론은 모두 다 동의하지만 각론으로 넘어오는 순간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지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해마다 업무 분장을 통해 주어지는 일을 해온 지 벌써 40년에 가까워지고 있다. 40대에는 좀 과하다고 느낄 만큼 많은 일을 처리한 적도 있고 업무인지 직책인지 아니면 계급인지 알 수 없는 교장의 업무도 4년을 해보면서 학교 업무에 대한 비교적 넓은 이해를 가지게 되었다.

학교 업무 분장의 목적을 거시적으로 말하자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교육이라는 대 전제에 부합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이 세분화되는 과정에서 이것이 정말 교육이라는 대전제와 얼마나 관계가 있을까 싶은 업무들도 생기게 된다. 이를테면 순전히 학교라는 기관의 운영이나 교육과는 거의 무관한 외부와의 교섭에 해당하는 업무 등은 학교 업무의 담당자인 교사들을 곤혹스럽게 하기도 한다.

이런 성격의 업무가 어떤 조직에도 존재하는 회피업무다. 조금 다르게 정의하면 조직이나 기관의 운영에 반드시 필요하기는 하지만 누군가의 희생이나 헌신이 따라야 하는 일이 바로 회피업무다. 회피업무가 가지는 속성은 그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여도 성과를 남기기 어려울 뿐 아니라 오히려 비난이나 책임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는 업무다. 정말 잘해야 아무 말 없이 넘어가는 업무다. 이런 업무들은 아무도 담당하기 싫어하지만 조직의 건강한 운영을 위해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인데 해마다 업무 분장이 있을 때면 이 회피업무를 누가 담당하는가가 사실은 업무 분장 과정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나 그렇지만 사람들은 성과를 낼 수 있고 또 성과가 잘 보이는 일은 서로 담당하려고 한다. 하지만 회피업무는 당연히 그렇지 않기 때문에 흔히 ‘폭탄 돌리기’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 과정을 요즘은 ‘포스트잇’으로 대변되는 매끈한 민주적 의사 결정 방법(교사 주도를 열리는)을 통해 처리하기도 한다. 매우 세련되고 문제를 최소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문제를 수면 밑으로 가라앉게 만들거나 이 또한 학교 내의 세력균형을 왜곡하는 일이라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여기에는 교사들 상호관계망이 아주 복잡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동시에 교장, 교감은 그 관계망을 주도하려 하거나 혹은 결절점(Nodule)에 위치하는 교사들을 장악하여 자신들의 의중을 관철시키기도 한다.

또 하나, 학교 업무 분장에서 늘 대두되는 문제는 학교 행정업무와 교무업무의 충돌이다. 교장 시절을 돌이켜보면 이 문제의 해결에는 교장의 분명하고 간결한 입장 정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테면 교무업무가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행정실에 분명하게 선언해야 한다. 대부분의 학교 구조상 교장실과 행정실이 근접해 있거나 어떤 경우에는 교장실이 행정실을 경유하게끔 설계되어 있다.

이것은 교장과 행정실이 자칫 유착(癒着)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유착은 서로 달라붙어 분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의미인데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하다. 교장의 학교 업무 처리에 있어 행정실의 상황을 교무실의 상황보다 우선에 놓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교장인 시절, 행정실에서 교무실과 마찰이 생겼을 때 교무실 상황을 더 우선하여 고려해야 한다는 나의 지론 탓에 행정실과 냉랭한 관계를 오래 지속한 경험도 있다.

결국 모든 문제는 다시 ‘교육=학생(아이들)’로 이어진다. 표면적으로 이 표현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더러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 문제를 외면하기도 한다. 외면하는 것을 엄폐, 은폐하기 위해 지나치게 이 표현을 강조하기도 한다. 학교 교단을 10년 이상씩 떠나 있었던 교장이나 도교육청의 장학관들이 자주 이 표현을 사용하는데 그들에게 이 표현은 마치 고급 장교들이 정복을 입으면 명찰 위에 달고 있는 약장처럼 화려하지만 분명하게 알 수 없는 수사修辭로 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일어나는 교육적 문제는 교실에서 듣고 감지하지 않는 이상 전혀(이 말을 쓰지 않으려 했지만) 알 수 없다.

교육부와 도교육청 중요 직책에 있는 고급 공무원들의 생각 속에 ‘교육=학생(아이들)’이라는 표현이 없으니 교육과 무관한 업무를 창조해내고 그것을 학교 현장에 공문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어쩌면 교육부와 도교육청 중요 직책에 있는 고급 공무원들은 자신이야말로 ‘교육=학생(아이들)’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착각하며 공문을 낼 수도 있는데 안타깝게도 교실을 떠나는 순간, 그리고 교실에 단 한 번도 서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도저히 감지할 수 없는 표현이다.

올해도 각 단위 학교에서는 부담되는 업무를 떠넘기기 위해, 여러 행사들이 계속될 것인데….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