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 지수중학교 교장
김준식 지수중학교 교장

중학교 아이들과 철학수업을 하면서 겪게 되는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어려운 철학 용어의 개념을 이해시키는 일이다. 대부분의 철학용어들이 외래어인 데다가 그나마도 한자로 만들어진 단어들이 한글로 표기되어 있어 중학교 수준의 어휘능력으로 한계가 있다.

하지만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알게 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있는 터라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개념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처음 써본 방법은 철학수업 시간만 휴대폰을 허락하여 어려운 용어를 스스로 찾아보게 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용어를 찾아 종이에 옮겼다. 처음에는 약간의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은 휴대폰을 통해 찾은 어려운 개념의 설명이 더 어려운 말로 되어있는 경우가 허다했고 더 큰 문제는 그 개념을 설명하는 인터넷상의 글은 중학생 수준에 맞게 친절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한 냉정하고 매끈한 답변들이었다.

아이들은 살짝 좌절했고 나 또한 이 방법은 효과적이 아닐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철학적 흥미조차 뺏어갈 수 있는 위험한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이윽고 철학수업 시간에는 휴대폰으로 찾아보는 방법이 의미 없음을 아이들이 인정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휴대폰에 의지한 개념 찾기가 어렵다는 것을 파악한 아이들과 나는, 개념 이해를 위한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가장 많이 사용한 방법은 그룹토론이었다. 그룹토론의 조건은 교사인 내가 개념을 최대한 쪼개는 것이었다. 분절된 개념을 이어 붙이는 작업도 어렵지만 애당초 여러 개념이 응축된 덩어리를 아이들이 이해하기는 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어떤 때는 하나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3~4주를 소비한 적도 있다. 중학교 철학 1에 등장하는 ‘욕망’, ‘욕구’, ‘요구’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한 달을 투자한 기억이 난다. 중학교 철학 2를 시작하며 등장한 ‘변증’ 또한 한 달 이상을 서로 토론하고 수정하고 다시 토론한 기억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이 그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지속적인 반복과 적용, 그리고 상호 토론을 통해 아주 어렴풋이 그 개념에 다가가는 것이다. 아이들은 철학 수업 시간에 지금도 끝없이 질문한다. 그 질문 하나하나에 매우 성실하게 답변하면서 철학적 개념에 다가가고자 한다.

그런데 세상은, 현실은, 지속적으로 디지털과 A.I교육을 강조한다. 요즘 학교로 내려오는 공문 중 많은 부분이 바로 ‘미래’, ‘디지털’, ‘A.I’와 관련 있는 내용이다. ‘메타버스’, ‘플랫폼’ 등의 용어들도 자주 보인다. 교사에게 연수를 안내하는 공문이 주류를 이룬다. 마치 이런 능력이 없는 교사들은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퇴행하는 느낌마저 준다. 물론 교사들이 이런 연수를 받아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아이들과 수업에서 이 신기술들이 활용된다면 걱정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다.

대한민국의 모든 교사들은 개인의 컴퓨터를 가지고 있고 업무의 대부분을 컴퓨터로 처리할 만큼 활용능력도 뛰어나다. 내 기억으로 교사가 승진하는데 컴퓨터 관련 자격증에 상당한 점수가 부여된다. 그만큼 컴퓨터 활용능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것을 수업에 활용하자는 것이 위에서 말한 ‘미래’, ‘디지털’, ‘A.I’ 연수일 것이다. 교사가 특별한 컴퓨터 능력으로 아이들에게 멋진 수업을 했다고 치자. 문제는 아이들이다. 그 멋진 기술이나 방법이 아이들에게 효과적으로 수업 내용을 전달만 하는 것이라면 이런 방법은 매우 성공적이라 할 만하지만 전달받은 아이들이 그 내용을 이해하는가와는 전혀 다른 문제다. 마치 철학수업 시간에 휴대폰을 통해 개념을 찾아 읽고, 쓰고, 고개를 끄덕인다면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니듯이 아이들은 현란한 기계적 활용에 따라 그 순간 고개를 끄덕였을 뿐 자신의 세계에 그 수업 내용을 이해하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무나 훌륭한 기술과 방법이 모든 것을 다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단 하나의 사실도 또, 단 하나의 문제도 반드시 고민해보아야 한다. 친구들과 이야기해보고 나아가 자신과도 진지한 대화를 해야만 한다. 그래야 그것이 자신의 삶 속에 분명한 개념을 만들고 그것이 자신의 지식이 된다. 이런 과정은 현란한 기계의 도움이 필요 없다. 어쩌면 기계들이 그 과정을 방해할 수 있다. 뇌 과학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교실에서 그리고 아이들과의 이야기 속에서 이런 사실들은 너무나 분명하게 다가온다.

다음 주에 아이들에게 지원청에서 주관하는 V.R, 메타버스 체험이 있다. 아이들은 분명 신기해할 것이다. 아이들이 그 체험을 통해 자신이 직접 V.R, 메타버스 세계를 독자적으로 이해하고 구축하려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뿐만 아니라 아이들은 V.R, 메타버스를 마치 이해하는 것처럼 스스로 착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그저 신기함에서 멈추고 말 것이다. 단지 스쳐가는 새로움이라면 그것은 교육이라 부르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다. 내가 너무 비관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상을 바라는 것 또한 과대망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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