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가 지나, 이제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도 얼마 남지 않았다. 길고 긴 장마와 그 뜨겁던 무더위도 끝이 나 가는 느낌이다. 이제 아침, 저녁으로는 조금씩 서늘한 기운이 돌아, 듣기 편안한 피아노 소품집을 골랐다. 피아노 연주자는 정명훈.

피아니스트 정명훈은 요즘 거의 지휘자로 활동하지만, 사실은 대단한 피아니스트이다. 1974년 소련에서 열린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위를 하고 금의환향한 적도 있다. 지휘자로의 꿈을 키우고는 줄곧 앞만 보고 달려온 지휘자이지만 그의 근본은 피아노 연주였다.

1994년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 자리에서 내려올 당시 법정 투쟁 끝에 승소하고, 단원들과의 이별 자리에서 그가 쇼팽의 연습곡 “이별의 곡”을 연수하는 영상을 봤다. 가슴이 뭉클했다. 음반 소개 글에 이렇게 되어 있다.

“드디어 돌아와 피아노 앞에 앉은 이 거장의 손끝에 담은 것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다. 한사람의 아버지로서 또한 할아버지로서 가족들에게 선사하는 가장 아름다운 애정을 생애 첫 피아노 솔로 앨범에 그대로 담아내었다.”

정명훈의 음반은 대부분 그가 지휘자로 참여한 것이지만, 간혹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음반도 있다. 두 누나들과 정트리오로 연주하기도 했으며 음악 친구들과 실내악을 자주 연주하기도 했을 만큼, 그는 피아니스트로서의 길 또한 꾸준히 걸어왔다.

이 음반은 마니아층이 두터운 독일의 ECM이란 음반사에 그의 아들이 프로듀서로서 아버지에게 제의하면서 나오게 된 음반이다. 음반 소개 글에서처럼 수록곡들을 보면 듣기 편하고 쉬운 곡들 위주다.

곡을 살펴보면 첫 번째 수록곡은 드뷔시의 ‘달빛’이란 곡이고, 그 다음이 쇼팽의 ‘녹던(야상곡)’이다. 세 번째 곡은 전 세계인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 , 그 다음은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도 연주했다는 차이콥스키의 사계 중 10월 ‘가을의 노래’이다.

이어 슈만의 ‘트로이메라이(꿈)’를 연주하고는 슈만과 슈베르트, 쇼팽을 들려준다. 마지막으로 연주한 곡이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반짝 반짝 작은 별’로 알려져 있는 모차르트의 ‘아, 어머니께 말씀드릴게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다.

수많은 명연들 속에서도 이런 따뜻한 마음으로 연주한 음악을 듣는 것은 축복이 아닌가 싶다. 이제 선선한 바람이 나면 손자 손녀들 또는 어린 아이들과 이 음반을 들어보면 어떨까.

음반의 곡들을 연주한 영상(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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