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이후 조금 나은 세상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이젠 전쟁과 자연재해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가까운 일본에선 큰 지진이 일어나 희생자가 수백 명에 이르고 유럽에선 강추위, 또 다른 곳에서는 폭우가 난리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언제 전쟁이 끝날지 알 수 없다. 최근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예전부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영토 분쟁이 심각했다. 하지만 단기간에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갈 전쟁이 다시금 벌어질지 몰랐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전쟁은 없어야 한다.

오늘 소개하는 음반은 1990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베를린 필이 이스라엘 필과 진행한 역사적인 합동 연주회 실황을 담고 있다. 이스라엘은 독일 히틀러 나치 정권의 유대인 박해 문제로 그동안 독일 오케스트라의 방문이 허용되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음악에 정치가 개입하는 것을 반대하는 지휘자 주빈 메타는 평화를 위해 흔히들 ‘운명’이라고 부르는 베토벤의 제5번 교향곡을 꺼냈다. 이스라엘 필하모닉 단원들은 흰색 옷을,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들은 검은색 옷차림으로 연주했다. 약 160여명의 단원이 연주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화합의 상징이었다.

지휘자 주빈 메타는 이 음반의 메인 레파토리를 연주 하기 전 검은색 연미복 차림을 흰색 옷으로 갈아입었다. 3악장이 시작될 때 단원들의 자리도 교체했다고 한다. 독일과 이스라엘의 화합을 상징하는 자리였으니 그 의미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창단 연주회에서는 대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지휘봉을 잡았는데 그때 그 곡이 바로 이 ‘운명’이기도 했다.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는 나치 정권의 압제에 해직된 많은 유대인 단원들이 망명을 떠나기도 했는데, 그들 중 팔레스타인으로 간 사람들도 꽤 되었다.

마찬가지로 나치의 탄압을 피해 망명해야 했던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명 바이올리니스트 후베르만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연주자들을 모아 관현악단 하나를 결성했는데, 당시 '팔레스타인 교향악단' 으로 불리던 이 악단이 이스라엘 필의 직접적인 모체였다. 그만큼 독일의 악단과 함께 연주한다는 것은 평화와 화합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그리고 또 하나 1999년 아르헨티나 태생의 유대인인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팔레스타인 태생의 미국 영문학자 에드워드 사이드가 공동으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West-Eastern Divan Orchestra)를 창단했다. 이 오케스트라는 아랍 지역과 이스라엘의 분쟁을 평화롭게 해결하고 중동 지역의 젊고 뛰어 난 연주자들을 지원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정치하는 사람도 아닌 지휘자가 나서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온 셈이다.

그래서 이번 전쟁은 더 안타깝다. 올해는 바렌보임이 이끄는 서동시집 오케스트라가 내한공연도 한다고 하니 관심 있게 보는 것도 좋겠다. 문화와 예술계에선 평화와 화합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데 정치인들은 그렇지 않다. 하루빨리 전쟁이 없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 1990년 역사적인 공연의 전체 영상은 보이지 않아 음반에는 없지만 당시 연주한 샤론 캄의 협연 무대인 베버의 클라리넷 협주곡 영상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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