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마비의 계절, 아들의 책상 위엔 코 푼 휴지가 수북하게 쌓여간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조금 선선해졌다고 느끼는 찰나, 어김없이 치고 들어온 비염. 기상청의 슈퍼 컴퓨터보다 정확도가 높은 계절 알람이다. 가을만 되면 너는 코가 막히고, 지켜보는 나는 답답함에 속이 막히지. 웅얼웅얼 코맹맹이 소리로 너 지금 뭐라는 거니? 아휴. 본인은 오죽할까.비염과 함께 돌아온 중간고사. 시험이 코앞인데 방문 닫고 들어간 지 30분 동안 내 귀엔 코푸는 소리만 들려온다. 저게 뚫려야 집중이 될텐데. 부스럭대며 비염 약을 찾아 먹이고 생각날 때마다
“아버지. 이거 어때요?” 보름이가 숨을 몰아쉬며 올라와 조그만 종이상자를 내려놓는다. “예쁘네. 그게 뭐야?” “바로 이거예요.” 뚜껑을 열자 거기에 세 개의 병이 있고, 병마다 잡곡이 담겼는데 수수와 조, 팥이었다. 며칠 전부터 며느리는 저온창고에 보관중인 잡곡을 처리해야 한다는 말을 하곤 했었다.“추석에 팔 선물세트를 만들어 보았는데 어때요?” “좋다. 좋아.” 포장이 야무지고 예뻐서 눈에 확 들어왔다. 누가 받아도 기분좋아할 것 같은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였고 이내 걱정에 사로잡혔다.“이래가지고
아침부터 사나운 드릴 소리에 잠이 깼다. 벌써 사흘째 아파트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바로 위층은 아닌 것 같은데 대각선 방향인가? 옆 라인인가? 아파트 전체를 울려대는 진동에 소음발생 위치를 정확히 분간하기도 어려웠다. 콘크리트 깨는 소리에 잠이 깬 걸 생각하니 슬며시 화가 일기도 했지만 소음은 소음일 뿐, 소중한 내 일상에는 잔금 하나 낼 수 없다고 마음먹으며, 명랑하게 밥상을 차리려 노력했다. 잠시 후, 드릴은 망치로 교체되었다. 깡!깡!깡! 망치로 벽돌을 내려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화장실 타일을 하나씩 뜯어내는
“아저씨. 우리 스무고개 해요.” “스무고개? 좋지. 그런데 해보나마나 내가 이길걸?” “이번에는 자신 있어요.” 생글생글 웃으며 하연이가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앉는다. 하연이는 벌써 몇 년째 어머니를 따라 우리 집에 민박을 왔다. 코흘리개였던 아이가 벌써 초등5학년이 되었다. 젖먹이였던 동생은 내년이면 입학을 하는 나이가 되었으니 이 가족과 인연을 맺은 지도 어느새 5년쯤 되었다.하연이는 ‘잠자리’를 문제로 냈고, 나는 ‘화투’를 문제로 냈으니 승부는 보나마나였다. 일고여덟 번 물어보고 답에 접근할 무렵 하연이가 낸 문제는 하연 엄
너무 덥다. 기사를 보니 우리가 동남아를 제꼈단다. 동남아보다 더 뜨겁고 중동의 낮 기온과도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대한민국의 폭염. 그나마 중동은 기름이라도 나지. 대신 내 몸에선 연일 땀샘이 폭발하고 있다. 밤낮으로 에어컨에 의지해 사막을 건너던 중, 달력을 보니 겨우 8월이 시작되고 있다. 지나온 만큼 또 가야한다니. 에어컨 신이시여, 부디 오래오래 전기를 머금어 주소서. 발 아래 조용히 엎드리겠나이다.엊그제 아이들과 차를 타고 가던 중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찌는 날씨에 에어컨은 필수였다. 꼭 닫힌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아버지, 별일 없으면 여기 카페로 내려오세요.” 며칠 전 점심을 먹고 누웠는데 보름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왜? 뭔 일인데?” “엊그제 봤던 리바트싱크대와 한샘싱크대가 서로 조금 다른 옵션이 있어서 어떤 것을 할 지 결정하려구요.” “너그 어머니는?” “곁에 계셔요.” “내가 뭘 아냐. 그냥 너그 어머니와 상의해서 결정하면 되지.”오래 전부터 보름이는 우리 주방가구를 맘에 안 들어 했다. 싱크대와 상부장은 이사 올 때부터 이 집에 남아있는 유일한 가구였다. 족히 이십 년은 넘어 많이 낡았었는데 이사 와서 문짝만 바꿔달아 그대로 써
7월 21일 토요일엔 정신 없이 바빴다. 경상대에서 열리는 제8회 대학진학박람회에서 내가 맡은 역할이 만만치 않아서이다. 폭염주의보 속에 열린 이날 행사에 경남 도내 중고등학교에서 대략 2만여 명의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참여했다. 온 캠퍼스에 관광버스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아홉 시부터 총장님과 교육감님, 시장님 들의 공식 일정을 졸졸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땀이 흘렀고 배가 고팠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행사는 22일 일요일까지 이틀간 진행됐다.그러는 와중에도 오후 2시쯤에는 카메라를 접어넣고 길을 나서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었
덥다. 팥죽 같은 땀이 흘러 온몸을 적신다. 들깨밭 김매기는 오전8시에 시작해서 11시에 끝난다. 그렇게 사흘을 일해야 마무리된다. 양파와 감자를 캐낸 빈 밭에 들깨모종을 심었다. 지난해 가을부터 얼마 전까지 비닐멀칭이 되어 있었는데 어디서 어떻게 그 많은 풀씨가 날아들었는지 풀은 빈틈없이 자랐다. 아직은 어린 들깨모종을 피해가며 잡초를 뽑았다.그나마 얼마 되지 않는 밭에 김장채소 심을 면적만큼 남기고 들깨를 심었으니 잘해야 열댓 되 정도 수확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한 되에 일만 원, 잘해야 십오만 원어치 들깨를 거둘 수 있을 것이
TV 앞에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화면 속에서 정우성이 로힝야 난민을 말하고 있었다. 유엔친선대사로 난민캠프를 직접 방문했다고 했다. 근데 로힝야가 나라 이름인가? 아, 부족이라고 했지? 모르는 단어들이 많았지만 어차피 상관없었다.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기에. 영화 ‘비트’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던 그의 경이로운 얼굴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 역시 청춘의 터널을 빠져나오기 힘들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 바. 역시 잘생긴 남자는 나이 들어도 멋있구나. 태평양처럼 넓은 저 어깨로 난민을 말하는데 여부가 있나. 무조건
수박이 많이 달렸다. 축구공 만하게 큰 놈도 더러 있다. 참외도 주렁주렁 달려 노릇하게 익어가고 있다. 수박과 참외를 밭에 심어 따먹는 일은 농사일 중에서도 가장 폼 나는 일이었다. 우리가 먹기 위해 몇 포기밖에 심지 않지만 수박은 가장 공을 들여 가꾸는 작물이었다.밭을 빌려 농사를 처음 시작한 그해 수박모종을 심어놓고 아침 일 절반을 수박에 쏟았었다. 이웃으로부터 수박 가꾸기 강의를 들었고, 그에 따라 매일매일 한 뼘 넘게 자라는 곁순을 따주어야 했다. 수박 열 포기 심어 열 덩이의 수박을 따먹었던 그해, 수박을 쩌억 갈라 벌건
이웃집 유씨가 농약을 먹었다. 죽을 작정하고 농약을 마시기 벌써 세 번째다. 마실 때마다 살충제여서 그나마 목숨은 건져왔는데 이번엔 또 무슨 농약을 마셨는지 평상에 모인 이웃들은 혀를 찼다. 나보다 다섯 살 위인 유씨는 이웃집 평상에 모여 가끔 술판을 벌이는 멤버 중 한명이다.유씨는 읍내에서 청소부로 일하다 정년퇴직하고 대여섯 해 전에 고향마을로 돌아온 터였다. 열댓 평짜리 조립식 집을 지어 후처와 농사일을 하며 살았다. 그래도 연금을 꽤 많이 받아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살지는 않았다. 청소부로 일을 한 탓에 읍내에 지인이 많았고,
“어머이, 자요.”핼쓱한 얼굴로 병상에 누워 잠든 어머니 어깨를 살짝 흔들었다. 살이 많이 빠졌다. 눈자위도 뀅하게 음푹 들어갔다. ‘아, 이제 머지않았구나.’고 생각하는데 어머니께서 눈을 번쩍 뜨셨다.“깊이도 자네.”“오, 왔냐. 보고 싶더니만.”“그래 내 왔소. 점심 언제 먹었다고 뭔 잠을 그리도 자는가.”벽시계는 오후 한시를 조금 지나고 있었다. 나는 들고 온 바나나맛 우유와 요구르트와 바나나를 꺼내 병실을 돌며 다른 요양환자들께 나누어드렸다. 바나나를 하나 벗겨 손에 쥐어드렸다.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허겁지겁 드
와, 진짜, 개오진다. 공약 하나도 안 지켰다!저녁 식탁에서 아들이 밥알을 튀기며 흥분하고 있었다. 전교 임원단이 학기 초 선거 때 내세운 공약을 지금까지 하나도 지키지 않고 있다고 했다. 전교 임원 선거에도 공약이 있었나? 우리 때는 공부 잘하고 잘 사는 집 애들이 하는 자리였는데. 얼마 전 신문에서 본 부산 대변초등학교의 전설이 떠올랐다. 전교 부회장이 응가스러운 교명을 바꾸겠다는 공약을 실천해서 화제가 됐었지. 시대가 변하긴 변했구나. 과연 아들의 학교에선 어떤 공약이 판세를 흔들었을까? 첫 번째 공
가뭄이 심하다. 밭으로 가는 개울엔 제법 커다란 사방댐이 하나 있는데 며칠 전부터 물이 말라들어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물이 보이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물이 있던 자리는 축축한 물기만 남았고, 올챙이들만 바글바글 죽어가고 있었다. 저 앞 지리산에서부터 적란운이 다가와 한줄기 소나기라도 내릴 듯한 날씨는 후두둑 셀 수 있을 만큼 몇 방울 뿌리고 지나가버렸다.밭에 나가면 애처롭기 그지없다. 모든 잎채소는 시들시들 축 늘어져 겨우겨우 버티고 있고, 감자와 고추마저 잎이 흐느적거렸다. 지난해도 감자꽃이 필 이맘때 지독한 가뭄이었는데 올해도
“올해는 양파와 감자가 좀 팔리려나?” 들창이 훤하게 밝아올 쯤 눈을 떴다. 겨울엔 한밤중일 시각인데 요즘은 일하기 좋은 시각이다. “뭐, 감자 양파는 많이 주문 안 하던데...” 이불을 뒤집어쓴 채 아내가 말을 받았다. 올해는 양파도 감자도 작년보다 두 배는 더 심었다. 작황도 좋아 감자순은 무릎까지 자랐고, 양파 대궁도 굵기가 보통이 넘었다.요 며칠 새벽녘 눈을 떠 엎치락뒤치락 거리면서 양파와 감자 팔 궁리에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감자 값이 비싸 감자탕에 감자 찾아보기 어렵다고 하지만 감자 수확철에 들어서면 감자 값이 폭삭 떨
퇴근 무렵, 아들의 전화가 왔다. “엄마, 나 PC방 가면 안돼요?” 그날은 주말도 아니고 시험을 마친 것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목요일이었다. 잠시 침묵. 수화기 너머로 아들과의 짧은 대치가 이어졌다. 아마도 녀석은 학원수업을 마치고 PC방 앞에서 전화를 걸고 있을 것이다. 옆에서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들도 저렇게 웃고 있겠지. 화상통화가 아님에도 모든 것이 보인다. 혼자였다면 당장 안 된다고 했겠지만 친구들과 같이 있다는 게 걸렸다. 우루루 몰려가는 맛도 있을텐데 우리 아들만 소외되면 어쩌나. 일단 후퇴. “몇 시까지
그날따라 일기장이 너무 넓었다. 만주벌판처럼 광활한 일기장의 여백이 나를 옥죄었다. (지금 상황과도 비슷하다.) 겨우 한 줄을 썼을 뿐인데 연필이 더 나아가질 않았다. 워워. 가쁜 숨을 몰아쉬는 연필을 잠시 쉬게 하고 나는 머리를 굴렸다. 부담스러운 여백 같으니. 차라리 시를 써보자. 세로로 길게 쓰면 빈칸이 금방 채워질 거야. 궁하면 통하는 법. 제목은 ‘토마토’라고 붙였다. 술 취한 할아버지의 얼굴을 빨간 토마토에 빗대서 일기장 한 바닥을 무사히 채웠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기장을 선생님 책상에 펼쳐놓았다. 그땐 선생님이
아랫집 뒤 구석진 곳에서 꽃분이가 드러누운 채 힘겹게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눈은 반쯤 감겼고,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다리가 뻣뻣하게 굳어져가고 있었다. 아들놈이 차를 가져오고, 황급히 읍내 동물병원을 향했다. 꽃분이는 열흘 쯤 전에 지난해처럼 또 다섯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동물병원에 도착하자 원장이 때마침 자리에 있었다. 꽃분이의 증상이 처음 나타났을 때 동물병원에 전화를 했는데 마을 방역 나가서 오후 2시는 되어야 돌아온다고 했었다. 그래서 증상이 심해보이는 데도 속절없이 기다려야 했었다. 꽃분이는 심한 헛구역질을 했고,
중학교 성적표는 서서 보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뒤로 넘어가기 때문에 반드시 방에 앉아서 열어봐야 된다고. 실제로 아들의 1학년 첫 중간고사 성적표가 나왔을 때, 나는 소파에 앉아있었는데도 뒤통수가 얼얼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지난 6년 동안 받아본 초등학교 성적표는 일종의 신경안정제였음을. 빼곡히 적혀있던 우쭈쭈의 말들은 ‘우리 아들이 집에서는 다소 빈틈이 있어도 나가서는 제 몫을 다하고 있구나’ 부모의 마음을 안심시키는 작용을 했다. 하지만 중학교 성적표는 냉정했다. 입에 발린 칭찬 한마디가 없었다. 인정머리 없는 수치들은 그
요즘은 산두릅을 따는 계절이다. 일진이 좋아 숲속에서 넓은 두릅군락지를 발견하면 금세 한 배낭을 따게 되는데 이게 제법 비싸게 팔려서 용돈벌이로는 이만큼 짭짤한 것도 없다. 돈 될 것 없는 춘궁기에 나에게 산두릅은 보배로운 것이었다.산두릅을 발견하고 가지를 휘어잡는데 또 전화가 왔다. 지방선거전화였다. 곧 시작될 경선에 신경을 써달라는 전화였다. 조금 전에도 전화를 받았었다. 몇 백리는 떨어져 있는 지역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연고자를 찾는다면서 도와달라고 했다. 그 도시, 그 지역구에 그 후보와 정치관이 비슷한 지인이 있을 리 없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