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군수를 뽑는 것이 4년 풍년을 약속받은 것 아니겠나.

가뭄이 심하다. 밭으로 가는 개울엔 제법 커다란 사방댐이 하나 있는데 며칠 전부터 물이 말라들어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물이 보이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물이 있던 자리는 축축한 물기만 남았고, 올챙이들만 바글바글 죽어가고 있었다. 저 앞 지리산에서부터 적란운이 다가와 한줄기 소나기라도 내릴 듯한 날씨는 후두둑 셀 수 있을 만큼 몇 방울 뿌리고 지나가버렸다.

밭에 나가면 애처롭기 그지없다. 모든 잎채소는 시들시들 축 늘어져 겨우겨우 버티고 있고, 감자와 고추마저 잎이 흐느적거렸다. 지난해도 감자꽃이 필 이맘때 지독한 가뭄이었는데 올해도 그렇다. 지금은 감자 양파 속살이 차오를 시기, 봄배추 속이 노랗게 찰 시기, 여름무가 뿌리를 내릴 시기, 수박넝쿨이 뻗어나가고, 참외와 오이꽃이 만발하는데 하늘은 무심하게도 비를 내려주지 않는다.

본디 농사란 농부는 정성을 다할 뿐이고 하늘이 결실을 보내주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도 이런 가뭄 속에서 야속한 마음으로 하늘만 쳐다보며 속을 태우는 농부가 되어버렸다. 내일 비예보가 있지만 어느 정도 올 지도 모를 일이고, 주말부터 사나흘 비가 내린다니 아직 대여섯 날을 속 태우며 버텨야할 일이다.

▲ 김석봉 농부

‘유기농소농’이 시대의 희망이요 대안이라는 말을 들었고 내가 하는 농사가 유기농소농이지만 정작 나는 크게 자긍심을 가지지 못했다. 일을 할 때마다 소위 몸속 깊숙이 골병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는데 자긍심 자부심은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란 말인가.

하루도 밭에 나가지 않으면 일이 안 된다. 하룻밤 새 한 뼘씩이나 자라는 풀과의 전쟁은 그렇다하더라도 벌레와의 전쟁에서는 이길 재간이 없다. 불볕 날씨에 지독한 가뭄이 벌레를 더 잘 키운다. 지난해는 열무씨를 두 봉지나 부었는데 열무김치 한 통 제대로 담가보지 못했다. 봄배추는 잎이 넓적하게 펴지기도 전에 벌레들에 뜯겨 아예 그물처럼 변해버렸다.

해마다 봄이 오면 벌레가 먹지 않는 작물을 가꾸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우리가 먹을 채소는 직접 길러야 하기에 얼갈이배추, 봄배추와 봄무, 열무, 양배추와 브로콜리 등등 벌레가 좋아하는 채소를 심지 않을 수 없다. 올해는 케일까지 심었는데 벌레자국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배추흰나비가 날고 며칠 지나면 잎에 바늘구멍 같은 것이 생기기 시작하고, 사나흘이 지나면 득시글거리는 벌레가 배추밭 열무밭을 점령해버린다.

“어쩜 이렇게 농사를 잘 짓는지 몰라...” 대형마트 신선야채코너 유기농산물 판매대에 놓인 열무단을 만지며 아내를 돌아보았다. “그러게. 말금하네?” 열무잎은 바늘구멍 하나 없이 윤이 날 정도로 깨끗했다. “하우스에서 지어서 그런가?” 고개를 갸우뚱거려보지만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비닐하우스라고 나비가 들어가지 않을 리 없고, 벌레가 생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었다.

생협이 어마어마한 매출을 자랑하는 거대기업으로 성장 발전했다는 소식을 몇 년 전부터 들어왔다. 어쩌다 가끔 생협매장을 가보기도 했는데 유기농으로 어찌 이 많은 양의 채소를 생산해 공급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농부 10년의 경험에 의하면 신이 내린 기술 없이는 대량생산이 어려운 게 무농약 채소재배일 것이라 믿었다.

마을 위쪽에 ‘정토회 수련원’이 있는데 그곳 텃밭에서 본 방충그물이 문득 생각났다. 밭이랑을 만들고 씨앗을 뿌리고 조밀한 그물망을 밭이랑마다 씌워두었었다. 그물망 속 열무나 양배추가 과연 벌레자국 하나 없이 말끔하게 자라고 있었다. ‘아, 저런 방법도 있구나. 그래, 바로 저거야. 내년엔 저것을 설치해야겠어.’ 그 밭이랑에 서서 마음을 먹었지만 막상 봄이 되고 밭일이 시작되자 그런 것 따위를 설치할 겨를도 없고, 뭘 얼마나 많이 가꾼다고 그런 고급스런 농자재까지 사 쓰면서 농사를 해야 하냐는 생각에 포기해버렸었다.

며칠 전 싱싱하고 부드러운 열무를 한 아름이나 뽑았다. 이웃집에도 열무를 한 단씩 돌렸다. 열무농사는 너무너무 잘 되었다. 역시 내 판단이 맞았다. 배추흰나비가 깨어나기 전에 빨리 키워버려야 한다는 전략을 세웠었다. 3월 감자밭을 장만하면서 잎채소밭을 함께 장만하였고, 특히 많은 퇴비를 뿌려두었다. 너무 일찍 열무씨를 뿌리면 열무꽃대궁이 함께 올라온다는 충고를 들은 기억이 있어 적당한 날짜를 기다렸다.

올해는 예년보다 열무씨를 열흘 이상 일찍 뿌렸다. 막 벌레가 생길 무렵 열무는 알맞게 자랐다. 저 벌레들이 커서 다시 번데기가 될 무렵 다시 퇴비 듬뿍 넣고 밭이랑 장만해서 두벌 열무씨를 또 뿌리면 벌레 피해 입지 않고 여름에도 열무김치를 담글 수 있겠다싶었다. 때를 잘 맞추는 것이 농사의 기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마다 4월말에 고추모종을 심었고, 8월 말에 탄저병이 들었으니 4월 중순에 고추모종을 심으면 탄저병 들기 전에 한번은 더 딸 수 있을 것 아닌가. 꾀가 느는 것인지 기술을 터득하는 것인지 나날이 내 농법은 진화되어간다. 세상에 이 날씨에 벌레자국 하나 없는 케일잎을 한 바구니 따서 케일김치 담가 먹는 농부가 또 있겠는가.

농사일에 뿌듯해하다가도, 가뭄에 속을 태우다가도 더 큰 걱정을 한다. 우리네 생활을 바꾸는 선거가 열흘도 안 남았다. 좋은 군수 뽑는 것이 4년 풍년 약속받는 것 아니겠나싶어 선거운동 하러 나가려는데 발걸음이 어줍잖아지고 가슴이 마구 떨린다.

‘군수가 내리 4명이나 감옥에 간 정당 후보를 또 찍어서야 되겠습니까. 이제부터는 좀 바꿔야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당에서도 군수도 하고 군의원도 해보도록 한번은 뽑아줘야지 않겠습니까. 기호2번은 절대로 찍어서는 안 됩니다.’ 입안엣소리로 연습을 해보는데 하아, 어쩌나. 목구멍에 가시가 박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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