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촌에서 키운 작물로 물물교환하는 일의 묘미

“올해는 양파와 감자가 좀 팔리려나?” 들창이 훤하게 밝아올 쯤 눈을 떴다. 겨울엔 한밤중일 시각인데 요즘은 일하기 좋은 시각이다. “뭐, 감자 양파는 많이 주문 안 하던데...” 이불을 뒤집어쓴 채 아내가 말을 받았다. 올해는 양파도 감자도 작년보다 두 배는 더 심었다. 작황도 좋아 감자순은 무릎까지 자랐고, 양파 대궁도 굵기가 보통이 넘었다.

요 며칠 새벽녘 눈을 떠 엎치락뒤치락 거리면서 양파와 감자 팔 궁리에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감자 값이 비싸 감자탕에 감자 찾아보기 어렵다고 하지만 감자 수확철에 들어서면 감자 값이 폭삭 떨어질 것은 보나마나한 거고, 양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해마다 그래왔으니까.

“올해는 무슨 감자를 그리 많이 심는가 모르겠네?” 감자를 심던 날 아내가 구시렁거렸었다. “해마다 먹을 감자가 모자라더만. 잔챙이만 남고...” 사실 그랬다. 조금 심은 감자 굵은 놈 가려 팔고, 여기저기 나누어 주다보면 달걀보다 작은 놈들만 남았었다. 그 작은 감자를 손질해 반찬을 만드는 아내가 애처롭고 안쓰러워 올해는 기필코 주먹덩이만큼 굵은 감자를 내년 봄 햇감자 나올 때까지 먹을 만큼 남기리라 마음먹었었다.

농부가 시장에 가서 굵은 감자를 사는 일이란 얼마나 쪽팔리는가. 그래서 올해는 닥치는 대로 씨감자를 구했고, 씨감자를 한 바가지 남길 정도로 많이도 심었다. 양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가족은 특히 양파를 좋아하고, 많이 먹어 해마다 봄이면 일찍도 나오는 하우스햇양파를 사 나르기 일쑤였다. 그래서 지난해 가을 작정하고 양파를 심었고, 다섯 번씩이나 물을 주었더니 뿌리가 잘 내려 겨우내 얼어 죽은 것도 별로 나타나지 않았다.

▲ 김석봉 농부

밭에 나갈 때면 울창한 양파밭과 감자밭을 바라보는 흐뭇함에 전율을 느끼기도 한다. 양파와 감자의 속살이 차오르는 시기에 비가 적당히 내려주기도 해서 대풍을 예감하는데 가슴 한쪽엔 또 근심이 똬리를 틀고 앉았다. 양파는 못해도 1톤은 수확할 것 같고, 감자도 양파 못지않게 캘 것 같은데 이걸 다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고민이 드는 것이다.

“거기 양말 하나 꺼내 주소.” 이른 아침 밭일을 나가려는 참이었다. 아내가 양말을 한 켤레 휙 던져주는데 늘 신고 다니는 같은 종류의 양말이었다. 우리집 양말통 절반을 이런 모양의 양말이 차지하고 있다. 다섯 해 쯤 전에 고구마를 엄청 많이 캤었고, 그때 그 고구마로 물물교환을 했는데 안산의 한 페친께서 양말을 어마어마하게 보내주었었다. 나는 달랑 고구마 세 상자를 춘천에 계시는 그 페친의 할머니께 보내드렸던 기억이다.

그때 나는 고구마 물물교환으로 기적을 만들었었다. 화장품 안 사기로 유명한 아내의 화장품도 받았고, 치약과 비누는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아직도 민박손님용으로 그 비누 치약을 쓰고 있다. 작업복으로 쓸 재활용 옷가지도 왔고, 심지어는 건어물도 받았고, 귀하다던 더치커피도 받았고, 내가 좋아하는 독한 술도 왔고, 샴푸며 세제까지 온갖 생필품을 한가득 장만할 수 있었다.

“이 양말 아직 많이 남았나.” 나는 어느새 그 고구마혁명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니, 이제 다 떨어져가요.” 하긴 그럴 만도 하겠다. 우리 이웃들은 요즘도 종종 우리가 그때 나누어준 양말을 신고 다니신다. 그때 많은 양말을 받은 우리는 이웃집마다 양말을 한 봉지씩 나누어드렸었다.

“우리 올해 저 감자 양파 물물교환 할까? 그때 고구마처럼...” 양말을 신다 말고 방으로 들어와 아내와 마주앉았다. “그때는 그때고... 요즘 그런 사람이 있을라고.” “암만해도 감자 양파 다 팔아먹기는 글렀고, 그렇게라도 해봐야지 안 되겠나.” “감자 양파는 고구마하고는 달라요. 사람들이 그리 많이 찾지 않으니...” 아내는 해봤자 잘 안 될 거라는 표정이었다. 나도 잠시 생각해보니 그렇겠다 싶었다.

고작 1천여 평 밭농사를 하는데 거기서 수확하는 것조차도 이토록 처분이 어려울까. 꼭 팔아서 처분하지 않는다하더라도 여기저기 나누고 싶기도 한데 이게 누구에게 얼마나 필요할지 알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것도 거저 얻어먹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서 함부로 여기저기 보낼 수도 없는 일이다.

가끔 이런 상황을 잘 아는 지인은 꾸러미사업이라도 해보라고 권했다. 작년엔 하루아침에 스무 개가 넘는 가지와 오이를 따고, 파도 한 아름이나 수확하면서 꾸러미사업계획을 세워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다른 농산물은 우리가 먹고 남기는 것이 기껏 대여섯 집이나 나눌 수 있을까 말까한 양이어서 그것도 할 일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즐거운 마음으로 밭으로 간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오이 호박덩굴이나 속이 차오르는 봄배추포기를 바라보면 환장할 듯한 아름다움에 겨워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애지중지 가꾼 저것들을 버리면서 얼마나 괴로워해야할지를 생각해 본다. 막상 거저 주려고해도 받을 이가 흔치 않은 이 세상의 비정함을 생각해 본다.

올해는 고구마 심는 면적을 많이 줄여 채소류 면적이 더 늘었다. 고추종류만 해도 일반고추 500주에 청양고추, 오이고추, 당조고추, 보라고추, 엄지고추, 꽈리고추, 피망, 노랑 주황 빨강파프리카까지 심었다. 오이도 가시오이, 노각오이, 자외까지 골고루 심었다. 파도 지난해 세배는 더 심었고, 처음으로 안 심던 산마까지 몇 고랑 심었다. 이러니 올해도 예년처럼 수확한 농산물 앞에서 막막해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어떻게 할까. 먼저 생활비를 위해서 적당량은 팔게 될 것이다. 생면부지인 우리 가족에게 기초의약품을 정성껏 챙겨 보내주셨던 서울의 그 약국 주소를 상자 위에 또박또박 적을 것이다. 올해부턴 ‘달려라 밥묵차’에도 기분 좋게 기부할 생각이다. 혹여 꼭 필요한 곳을 알려 준다면 거기에도 미련 없이 보내줄 생각이다.

그때 그 고구마혁명 때처럼 안 쓰는 양말이나 장갑을 보내주는 이가 있으면 좋겠다. 여성용화장품이나 비누, 세제 따위를 보내주는 이가 있으면 좋겠다. 두돌 앞둔 우리 손녀 노리개를 보내주는 이가 있으면 좋겠다. 허리치수 32~33짜리 재활용 작업복 바지와 260짜리 신을 만한 헌 신발을 보내주는 이가 있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독한 술도 한 병 살짝 끼워넣어서 보내주는 이가 있으면 더욱 좋겠다.

앞마당 감나무 그늘 아래 햇감자 햇양파를 정성껏 담아놓고 즐거운 마음으로 택배기사를 불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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